맨발로 뛰쳐 나온 아이…온 마을이 나서야 할 때
인-잇
<벽장 속의 아이>는 1987년에 출간한 프랑스의 심리학자이자 작가인 오틸리 바이가 쓴 소설이다. 주인공인 5살 '장'은 오줌을 쌌다는 이유로 친엄마 손에 끌려 벽장 속에 갇히게 된다. 이 소설이 더욱 충격적인 건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는 점이다. 실제로 1982년 프랑스의 다비드 비송(David Bisson)이라는 어린이는 4살부터 12살까지 무려 8년간 욕실과 벽장 등에 갇힌 채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으며 살았다.
그런데 <벽장 속의 아이>가 그저 소설 속 남의 나라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동학대 관련 뉴스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작년만 해도 화장실에서 숨진 4살 아이부터 시작해서 20대 부모가 5일간 방치해 세상을 떠난 7개월 아이, 의붓아버지 폭행으로 숨진 5살 아이가 있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가방 속에서 숨진 9살 아이와 가정폭력으로부터 도망쳐 편의점에서 구출된 9살 아이 등 비슷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사람들은 분노하고 눈물짓는다.
나는 아이를 키우기 전까지 '아동학대'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특별하지 않았다. 뉴스를 보면 분노했고 다시는 그런 끔찍한 일이 생기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이런 일들이 그저 몇 명의 아이들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았다. 특히 작년에 발생한 20대 부부의 영아 방치 사망사건은 이제 막 부모가 된 나에게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아내 또한 "7개월 된 아기가 며칠간 방치돼서 젖도 못 먹고 기저귀도 못 갈고 울부짖으며 엄마를 찾으며 죽어 갔을 걸 생각하니 너무 불쌍하고 끔찍해"라면서 몇 번이고 울었다. 숨진 아기가 당시 우리 아이와 개월 수가 비슷했던 터라 그 아기가 어떻게 울며 부모를 기다렸을지 선명하게 그려졌다. 제발 다시는 부모에 의해 죽는 아이가 없기를 기도하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았을 때, 또다시 '가방 속 아이'가 부모의 학대로 숨을 거뒀다.
2018, 보건복지부 |
2018년 한 해 동안 발생한 아동학대 사고는 24,604건에 달하며 학대로 인해 사망한 아동은 28명에 이른다. 한 달 평균 약 2,000명의 아이들이 학대를 당하고 2명 넘는 아이가 숨진다. 그 중에서도 아동을 사망에 이르게 한 가해자의 83.3%는 친부모다. 아동학대 대부분은 집 안에서 벌어지고 가해자가 부모라는 점에서 발견이 매우 어려운 것이 특징이다. 또 피해 아동 스스로가 신고하기 쉽지 않은 점에서 외부자의 신고가 유일한 탈출구가 되기도 한다. 이런 식으로 지금도 어딘가에선 아이들이 부모에게 맞거나 방치되어 죽어 가고 있다.
학대 당하는 아이들을 구해줄 수는 없을까?
매일같이 아이를 때리는 매를 멈추게 할 수는 없을까?
아동복지법에 의하면 '아동학대 신고 의무자'를 정하여 교사, 의사, 공무원 등 아동을 자주 접하는 직군에 있는 사람들이 아동학대를 발견하였을 때 '의무적'으로 신고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의무자 신고 비율이 낮은 데다 아이가 집 밖으로 나오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다행히 올해 10월부터 아동학대 사건을 각 지자체 공무원이 직접 조사해 관리를 강화하는 법안이 얼마 전 통과됐다. 반가운 일지만 이 또한 학대 발생 후 사후 조치에 머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여전히 아쉽기만 하다. 아동학대는 미리 예방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는 많은 부모들이 육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무겁고 약해진 몸으로 종일 아기를 돌보는 일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매우 힘들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1) 물론 아이를 때리는 것은 매우 잘못된 행동이다. 하지만 많은 엄마들이 산후우울증으로 고통받는 상황에서 대책없이 그저 개인만의 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일이 다 벌어진 후에야 '그럼 낳지를 말던가'라는 식의 비난과 가해 부모 처벌만으로는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또다른 아동학대 사건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자살 충동을 느낄 만큼 힘들어하며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을 했으면 좋겠다.
소설 <벽장 속의 아이>는 사회복지사가 아이의 건강을 확인하기 위해 가정을 방문하여 갇힌 아이를 발견하고 구출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나는 33년 전 프랑스에 가정 방문 복지사가 있다는 사실에 한 번 놀랐고 현재 대한민국에 아직 이런 복지 시스템이 없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아이를 2년 째 키우고 있지만 건강보험공단에서 날아오는 '영유아 건강검진 안내 고지서' 말고는 정부나 지역사회로부터 아이 양육이나 산모의 건강을 물어보는 전화 한 통 받아 본 적이 없다. 영유아 검진마저 줄을 서고 몇 달을 기다려 받는 실정인데 제 발로 찾아오는 복지 서비스는 너무나 먼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영국이나 미국, 호주에서는 보편적 영유아 가정 방문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작은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2013년 서울시가 시작한 '서울아기 건강첫걸음'이라는 사업이 좋은 예다. 임산부부터 출산 4주 이내의 부모를 대상으로 산모와 아기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모유 수유 및 양육법 등을 안내해주는 '찾아가는 복지' 서비스다. 직접 신청해야 하는 제도이고 출산 직후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제한이 아쉽긴 하지만 '찾아간다'는 점에서 매우 획기적이다. 육아로 인해 고립된 엄마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혹시 모를 아동학대 사례를 더 빨리 인지할 수도 있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한 아이가 온전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 혼자가 아니라 이웃과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다른 식구들과 마을 공동체가 있어 여러 사람이 육아를 도왔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부모가 유일한 식구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등을 돌리면 아이들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될 수밖에 없다.
더 이상은 부모로부터 맞는 아이들이 맨발로 도망쳐 나오기를 기다릴 수 없다. 가정에 먼저 다가가는 제도로 아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부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회적 손길이 닿길 바란다.
(1)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자료('17년)에 따르면 '기혼 여성 90%는 산후 우울감을 경험했고 34%는 산후우울증으로 자살 충동을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에 더해 응답자의 50%는 '산후우울증으로 아이를 거칠게 다루거나 때린 적이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