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족의 나라'
닿을 수 없는
25년 만에 오빠가 돌아왔다. 우리는 다시 헤어져야 한다.
<디어 평양>, <굿바이 평양> 등의 다큐멘터리로 국내에도 잘 알려져 있는 양영희 감독이 첫 장편극영화 <가족의 나라>를 선보인다. 이전의 작품들처럼 자신의 가족사를 토대로 이야기를 구상했고, 이우라 아라타, 안도 사쿠라, 양익준 등의 배우들이 작업에 참여했다.
재일동포 성호는 조총련의 중역을 맡고 있는 아버지의 권유로 귀국사업에 참가해 ‘조국’ 북한으로 건너갔다. 성호는 북한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았지만 헤어진 가족과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성호의 뇌에 악성 종양이 발견되어 치료를 위해 3개월 동안의 일본 체류가 허락된다. 25년만의 재회에 가족들은 기뻐하지만 성호의 곁에는 북한에서 온 감시관이 항상 뒤따르고 있다. 검사 결과 치료에 반 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진단과 함께 수술을 거절당한다. 가족들은 체류 연장을 통해 성호를 치료하려고 하지만, 북한에서 갑자기 귀국 명령이 내려온다. 예정된 이별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영화 '디어 평양' |
영화 '굿바이 평양' |
1959년부터 약 20년간 추진됐던 귀국사업으로 북한으로 떠난 재일동포의 숫자는 약 10만 여명이다. 실제로 세 명의 오빠를 북한으로 떠나 보내야 했던 재일동포 2세 양영희 감독은 이미 다큐멘터리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을 통해 자신의 가족사를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디어 평양>에서는 정치적 신념으로 ‘조국’ 북한에 세 명의 오빠들을 귀국시킨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고, <굿바이 평양>을 통해서는 아버지의 권유로 북한으로 귀국한 오빠의 딸, 조카 선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족의 나라>는 이 두 편의 작품의 연장선상에 놓인 극영화다. 양영희 감독은 자신의 가족사를 담담하게 풀어내며, 극영화 감독으로서도 훌륭한 성취를 이뤄냈다.
출연배우들의 앙상블도 뛰어난데, 특히 감정의 진폭이 가장 큰 동생 리에(양영희 감독의 분신으로 볼 수 있는) 역의 안도 사쿠라는 능수능란하게 드라마를 이끈다. 북한 감시관으로 출연한 양익준도 압도하는 존재감으로 극에 긴장을 불어넣는다. 일본에서는 이미 2012년에 개봉해 큰 주목을 받은 <가족의 나라>는 키네마준보가 선정한 2012년 최고의 일본영화, 아카데미시상식 외국어영화상 일본 출품작으로 선정이 되기도 했다. 국내에선 지난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첫 상영을 가져 객석을 울음바다로 만든 전력이 있는데, 이날 관객과의 대화에 참석한 양익준은 무대에 올라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성호와 가족에게 허락된 단 며칠간의 시간을 담은 <가족의 나라>는 다큐멘터리를 작업해 온 감독답게 담백한 시선으로 그들을 비춘다. 그들의 대화와 일상을 쫓다 보면, 카메라가 담고 있지 않은 세월의 상실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가슴이 메어진다. 닿아도 닿을 수 없는 가족의 나라, 과연 성호에게 그곳은 어디였을까? 양영희의 <가족의 나라>는 올해 가장 먹먹한 울림으로 기억될 것이다.
글. 김수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