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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섬 디어리, You`re Hip

오직 하나뿐인 그대

그녀의 거절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끝나지 않은 것.

블로섬 디어리, You`re Hip
음악인으로서 전설이 되는 방법 또는 과정에는 무엇이 있을까. 성공적인 판매고와 많은 수상 경력, 매체와 평론가들로부터 얻는 극찬? 여기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 전설이 되어버린 음악인이 있다. 반세기의 활동시기를 통해 남긴 음반 여럿과 공연 영상을 제외하고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오직 하나뿐인 재즈싱어/작곡가/피아니스트인 블로섬 디어리의 이야기다. 아주 정중한 톤의, 물론 법적 대리인을 통해서였지만, 앨범의 국외 라이센스를 허락해줄 수 없고 본인의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감사하다던 내용의 답장을 받은 경험도 한 몫 했음을 밝힌다.
블로섬 디어리는 1924년생으로, 2009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대략 30여장의 음반을 남겼다. 스윙글싱어즈의 모체가 되는 보컬그룹 블루스타즈를 결성하고 솔로 활동을 병행한 파리 시절, 노먼그란츠와 공인 명반 등을 녹음한 뉴욕(버브레코드) 시절, 그리고 캐피탈 레코드를 거쳐 로니 스콧과 폰타나 레코드를 파트너로 4장의 앨범 발표와 공연을 병행한 런던 시절. 이렇게 3기 정도로 나눌 수 있는, 당대 메이저 레이블과 함께 한 활동과 레코딩들이 블로섬 디어리의 전성기 기록으로 알려져 있다. 50년대에 블루스타즈같은 보컬 그룹을 조직한 예나 외모에 적잖은 비중을 두었던 재즈보컬 계에서 직접 연주하며 노래하던 그녀의 존재는 매우 특별했을 것이다. 트위팝의 먼 원조격인 보컬 스타일은 차치하더라도.

스윙잉런던의 중심에 있던 60년대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들을 위한 애정을 아끼지 않았다. 조지 페임, 존 레논, 더스티 스프링필드를 위한 뮤지션 헌사 3부작이 이때 만들어진다. 뉴욕으로 다시 돌아온 블로섬 디어리는 자신의 레코드레이블(daffodil)을 설립한다. 블로섬 디어리의 중반기 대표작 <1975-from the Meticulous to the Sublime>을 발표한 것도, 마지막 싱글(2000년)을 발표한 레이블도 자신의 회사인 대포딜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디스코그라피에서 절반 이상이 대포딜 발매작이라는 사실은 황금기 재즈 명반 리스트를 꿰고 있는 애호가들조차도 잘 알지 못한다. 음악 애호가들을 위한 전지전능 사이트 디스코그스를 제외하고는 어떤 음반을 발매했는지 도통 알려지지 않은 레이블 오너 블로섬 디어리.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자신의 레이블을 설립하고 운영해왔는지 위에 언급한 메일 내용에 비추어보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블로섬 디어리, You`re Hip
대포딜 레코드 설립 후에도 블로섬 디어리는 레코딩과 공연을 쉬지 않는다. 역시나 사업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듯하다. 공연은 주로 조그만 재즈클럽이나 카바레에서 이뤄졌다. 위트가 넘치는 가사, 멘트와는 별개로 조금이라도 잡음(나이프질과 포크질!)을 내는 관객에겐 그녀로부터 직접 경고가 주어졌다. 신경질적인 뮤지션의 결벽이라기보단 자신의 룰을 강조하는 느낌이라는 건 유튜브 영상(Silk Cut Festival)에서 확인할 수 있다. 종종 그녀의 라이브를 언급할 때 사용되는 ‘카바레 나찌(Cabaret Nazi)’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광경이다. 그녀의 공연을 기억하는 팬들은 그조차 블로섬 디어리 공연의 일부라고 여긴 듯하다. 이후 그녀는 사반세기 이상의 시간을 자신의 레이블 대포딜과 함께 한다. 시그니쳐 송 'I'm Hip'을 만든 절친 밥 도로우, 데이빗 프라이쉬버그와의 교류와 협연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놀랍게도 그녀 특유의 또박 또박 연주하는 스타일과 트위 보컬은 생애 마지막 레코딩까지 유지된다.

‘중요한 재즈 뮤지션으로 기억은 되지만 자세한 디스코그래피는 파악이 되질 않는다. 활동 영역과 공간은 갈수록 (맨하탄) 축소됐으나 오히려 팬들은 늘어나기 시작했다.(2000년대 들어서 여러 편의 영화에 그녀의 노래가 쓰인다). 공연장에서는 나찌였으나 스쿨하우스락(70년대 교육 만화)을 보며 산수를 배우던 아이들에겐 천사였다. 평생 자신의 룰을 벗어나지 않고 살아온 ‘애티튜드의 재즈 뮤지션’ 블로섬 디어리는 이렇게 어디에도 없는 하나뿐인 존재다. 음악 없이 설명할 수 없는 삶이지만 그 외에는 딱히 알아낼 것이 없는 ‘미스테리어스한 전설’이다. 이미 한 번 실패했지만 그녀의 앨범들을 미치도록 발매하고 싶다는 욕망이 또아릴 튼다. 이 마음 또한 오직 블로섬 디어리의 음악을 들을 때뿐이다.

글. 이봉수(비트볼 레코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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