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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까지 줄곧 내리막 퇴근길처럼 설레는 길

6길 코스가이드

6길 만항재~순직산업전사위령탑 16.79km

오투전망대 전경. 겹겹이 늘어선 산그리메 사이에 파묻힌 태백시가 보인다.

오투전망대 전경. 겹겹이 늘어선 산그리메 사이에 파묻힌 태백시가 보인다.

지도를 펼치자마자 감이 왔다. 이 길은 뛰어 내려가야겠다고. 6길은 한국에서 차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인 만항재(1,330m)에서 출발해 태백 시내를 향해 줄곧 내리막이다. 오르내림을 거듭하며 광부의 애환을 살폈던 지난 3~5길과는 성격이 다르다. 


석탄을 실어 나르던 길이 끝나고 이제 탄광촌 마을로 돌아가는 길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광부들의 삶에 빗대자면 이건 퇴근길이라 할 수 있다. 삶에 지쳐 터덜터덜 걷지 않고, 사랑하는 이를 향해 달음박질하는, 그런 퇴근길이다.

만항재에서부터는 갓길을 달려야 한다. 지지리골로 들어서야 차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항재에서부터는 갓길을 달려야 한다. 지지리골로 들어서야 차도에서 벗어날 수 있다.

차도를 달려 태백으로!

길 초입에 서자 6길 출발지점을 굳이 유명한 만항재 대신 함백산소공원(카카오맵 기준. 네이버맵 기준으로는 바람길 정원)이라고 한 까닭이 이해가 갔다. 지도 상 만항재에는 주차공간이 협소하지만, 이곳의 주차공간은 넓고 쾌적했다. 걷는 이들의 차를 유도하기 위한 센스 있는 구간 계획이다.

여기서부터 지지리골 임도 입구까지는 차도를 따른다. 이 차도는 정선과 태백의 시도경계이자 함백산 등산로 입구가 있는 삼거리까지 1차선을 이루다가 여기서부턴 2차선으로 갈라진다. 그리고 또 지지리골 임도 입구까지 계속 차도를 따라 걸어야 한다.


사실 처음에 6길은 이 차도를 따르지 않았다. 운탄고도 1330 통합안내센터 최성범 센터장은 “원래 함백산소공원에서 창옥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를 따라 함백산 등산로 입구 삼거리까지 간 뒤, 태백선수촌에서 다시 또 남쪽 산길로 지지리골로 가는 구간을 계획했었다”며 “하지만 안전상의 문제로 길 조성이 난항을 겪어 숙고 끝에 지지리골 임도까지 차도 갓길을 따르도록 조성했다”고 비화를 밝혔다.

오투전망대에는 키 큰 정자가 있어 쉬어가기 좋다.

오투전망대에는 키 큰 정자가 있어 쉬어가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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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인 건 오고가는 차량 통행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 아무래도 태백에서 서울 방면으로 나갈 때면 만항재를 거치지 않고 북쪽 38번국도나 남쪽 31번국도를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비어 있는 도로는 달리기 쾌적하다. 신갈나무가 터널을 이루는 도로를 지나 태백선수촌에 닿으면 이제부터는 부드럽게 흘러가는 태백산 능선을 오른쪽에 끼고 달릴 수 있다. 길이 북쪽으로 한 번 굽이치고 나면 이제부터는 오투리조트 너머로 태백 시내가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낸다.


조망이 가장 장쾌해지는 지점에 전망대가 솟아 있다. 오투전망대다. 높은 정자가 들어선 이곳에선 겹겹이 늘어선 산그리메 사이에 회색빛으로 솟은 태백시의 스카이라인을 겹쳐 볼 수 있다.

지지리골 임도에 늘씬한 낙엽송이 우거져 있다. ‘러닝해영’ 조해영씨가 보호경을 쓰고 질주하고 있다.

지지리골 임도에 늘씬한 낙엽송이 우거져 있다. ‘러닝해영’ 조해영씨가 보호경을 쓰고 질주하고 있다.

지지리골 낙엽송과 자작나무 인상적

오투전망대를 지나 S자로 한 번 꺾고 나면 오른쪽으로 지지리골 임도 입구가 나온다. 힘차고 매끄럽게 치솟은 낙엽송이 임도 양쪽을 꽉꽉 채웠다. 지지리라는 지명은 왠지 옛날 가난했던 시절을 품고 태어난 것 같지만 원래 유래는 이 골짜기에서 사냥꾼들이 멧돼지를 잡아 해먹던 돌판 돼지구이 이름 ‘지지’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지금은 성난 멧돼지 대신 트레커들이 오간다. 낙엽송을 따라 완만한 임도를 따르다 가파른 골짜기로 뛰어 내린다. 길은 최근에 정비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래서 가파르지만 위험하지 않은 계단길이 이어진다.


얼마가지 않아 평상과 벤치가 설치된 작은 자작나무 숲이 나온다. 지지리골 자작나무 숲의 자자한 명성을 듣고 온 터라 아담한 규모에 고개가 갸우뚱한다. 

지지리골의 명품 자작나무숲. 6만 평 규모에 수천 그루의 자작나무가 자라고 있다.

지지리골의 명품 자작나무숲. 6만 평 규모에 수천 그루의 자작나무가 자라고 있다.

의문은 곧바로 풀린다. 지지리골 최상단으로 완전히 내려서자 마치 웨딩로드처럼 깔린 야자매트가 수천 그루 자작나무 숲 속으로 발길을 잡아끈다. 골짜기를 가득 채운 6만 평 자작나무숲의 향연이 매혹적이다. 자작나무 아래 군락을 이룬 짚신나물꽃도 명품 조연이다. 


이 숲은 광부의 마음은 물론 산업화를 위해 속을 게워 내어준 산을 어루만지기 위해 태어났다. 1993년 함태탄광이 폐광되면서 폐허로 방치되다가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폐탄광 산림훼손 복구사업으로 조성됐다. 20년이 흐른 현재 그 결실이 하얀 수피로 피어났다.


하얗게 핀 것은 또 있다. 폐광에서 유출된 갱내수가 계곡으로 흐른다. 물에 섞인 철, 알루미늄이 산소와 결합해 계곡 곳곳에 붉고 하얀 침전물을 만들어내고 있다. 오염된 물이니 식수가 떨어졌다고 해도 함부로 마시면 안 된다.

상장동 벽화마을. 옛 탄광촌 시절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상장동 벽화마을. 옛 탄광촌 시절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길 끝엔 4,000 광부의 넋

자작나무 숲의 끝은 임도로 연결된다. 정겨운 산골마을 특유의 분위기를 간직한 지지리골 민가를 몇 채 지난다. 임도는 마을길로 접속하고, 곧이어 이정표를 따라 산허리를 따라 도는 오솔길로 갈아탄다. 이 길이 태백에서 2019년 조성한 ‘탄탄대로’ 소도 구간이다. 석탄 이야기로 가득한 ‘탄탄炭炭’한 세상을 만나는 길이라는 의미로 소도동 일대와 철암동 일대의 폐탄광 체험 시설들을 각각 엮어 만든 걷기길이다.


탄탄대로는 걷는 이를 상장동으로 데려다 준다. 상장동 또한 3길 기점인 모운동과 마찬가지로 한때 광부가 4,000명 넘게 살던 광산 사택촌이었다. 그때의 영광은 마을의 벽이 그림으로 머금고 있다. 모운동은 마을 주민들이 서툴면 서툰 대로 그린 벽화라 정겨운 맛이 있다면, 상장동은 더 세밀하고 인상적으로 옛 탄광촌 시절의 소소한 생활상을 그려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더불어 한글 손 글씨로 된 문패, 골목골목마다 알록달록 칠해진 색감도 정겹다. 벽화는 아버지의 길, 어머니의 길, 만복이의 길, 곰배리 이야기 총 4개 테마다. 

자작나무숲에서부터 지지리골 입구까지 임도는 완만하고 장애물이 없어 달리기 편하다.

자작나무숲에서부터 지지리골 입구까지 임도는 완만하고 장애물이 없어 달리기 편하다.

황지천을 건너 상장초등학교 뒤로 오른다. 연화산둘레를 따라 만든 태백고원700산소길을 잠시 따르다가 연화2교 근방에서 황지천으로 뚝 떨어진다. 황지천을 따라 나무 데크와 오솔길이 번갈아 나타나는 평탄한 길이다.


대산하이츠빌을 앞두고 골목으로 들어오면 이제 여정의 끝이 다가온다. 황지교에서 오른쪽 통리 방면으로 100m쯤 오르면 순직산업전사위령탑으로 오르는 입구가 나온다. 위령탑에는 광복 이후 순직한 광산근로자 4,112명(2020년 기준)의 위패가 안치돼 있다.


운탄고도1330의 하이라이트 구간인 3~6길 구간의 끝이 위령탑이라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광부들이 수없이 다녔을 길 끝에 작게는 가족을 위해, 크게는 국가를 위해 칠흑 같은 어둠에 잠긴 땅속에서 희망을 긁어 모았던 광부들의 넋이 묻혀 있다.  

6길은 순직산업전사위령탑에서 끝난다.

6길은 순직산업전사위령탑에서 끝난다.

교통

만항재로 가는 대중교통편은 정선 고한에서만 출발한다. 고한사북공영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해 만항 정류장까지 가는 57, 57-4번 버스가 하루 5회(07:25, 09:35, 13:20, 15:15, 18:20) 운행한다. 만항 정류장에서 함백산소공원(바람길 정원)까지는 약 1.2km, 25분 정도 걸어야 한다.


종점인 순직산업전사위령탑에선 선택할 수 있는 대중교통 수단이 많다. 1.5km 거리에 태백시외버스터미널과 태백역이 붙어 있다.


만항재에 차를 두고 태백으로 내려섰다면 고한을 거쳐 되돌아가야 한다. 태백시외버스터미널에서 60, 60-1, 60-2번 버스(하루 9회, 07:35~19:30)를 타고 고한으로 간 뒤, 위에 소개한 57, 57-4번 버스를 타면 된다.

맛집(지역번호 033)

취재 기간 중 태백에선 태백닭갈비(553-8119)의 물닭갈비와 큰손콩나물국밥(552-7574)의 얼큰콩나물국밥을 먹었다. 모두 매콤하고 칼칼한 맛이 일품이다. 탄가루에 까슬까슬한 목구멍을 씻어내고자 했던 광부들의 애환을 생각하며 먹으면 풍미가 한층 깊게 다가온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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