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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촌사람, 설악산 보고 울었어요” [부산대 화제의 외국인 산악부원]

독일인 팀 조린Timm Joleen

설악산 ‘4인의 우정길’  5피치 등반을 마친 팀 조린.

설악산 ‘4인의 우정길’ 5피치 등반을 마친 팀 조린.

“처음에는 한국어를 잘 못했어요.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대답을 못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산악부 활동이 끝나고 집에 가서 울면서 한국어를 공부했어요. 멤버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제 생각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서 답답하고 힘들었어요. 특히 등반할 때 언어 장벽 때문에 부원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걱정을 많이 했어요. 언어 장벽 외에도 심각한 고소공포증이 있었지만 매 주말 참여했어요. 산악부 멤버들은 언제나 따뜻하게 저를 맞아 주었고, 등반할 때마다 저를 응원해 주었거든요.”


독일 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자린 팀 조린(25)씨는 세상 밖으로 나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세계 여행을 하는 것이 꿈이었다. 꿈의 첫발로 고등학교를 졸업 후 지도에서 가장 먼 나라를 고른 게 한국이었다. 유학을 택한 그녀는 2021년 부산대학교 국제학부에 입학해, 대학산악부에서 열성적인 활동을 했다.  


한국어를 전혀 몰랐고, 아는 사람 한 명 없이 온 타지 생활, 게다가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을 해야 했다. 불안감과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매일 금정산을 올랐다. 일부러 지도를 사용하지 않고 매일 새로운 산길을 다니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당시 그에게 산은 “위로이자 고향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한국어를 배운 지 1년이 지나고 곧장 산악부에 가입했다. 


“산악부 첫 해였어요. 하계훈련으로 설악산에 간다고 해서 참가했는데, 순진하게도 ‘하계훈련’이 ‘하계여행’인 줄 알았어요. 여행이 아니란 걸 알고, 긴장한 탓에 부산에서 속초로 가는 6시간 동안 버스에서 잠을 거의 못 잤어요. 새벽 1시에 일어나서 공룡능선으로 향했어요. 15시간 동안 산행하면서 몽유병인 것 마냥 걸었어요. 비선대를 지나 해가 뜨기 시작할 때 처음 설악산을 봤어요. 다른 멤버들은 모르지만, 저는 그때 하계훈련 중 처음으로 울었어요. 너무 아름다워서 감동받아 눈물이 났어요. ‘어떻게 독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내가 여기까지 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순간 저는 이 동아리가 없었다면 설악산에 오는 방법을 몰랐을 거라는 사실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언어의 장벽, 태어나 처음 겪는 타지 생활의 불안감, 등반 중 쉽게 떨치기 어려운 고소공포까지. 그녀가 넘어야 할 산은 첩첩산중이었으나 4학년 졸업을 앞둔 지금, 대학산악부를 통해 걷고 걸어 멋진 산악인으로 성장했다. 그녀와의 일문일답을 싣는다. 

올해 하계훈련으로 설악산을 찾았다.

올해 하계훈련으로 설악산을 찾았다.

Q 대학산악부에서 기억에 남은 순간은?

“설악산 하계훈련 중 두 번째로 울었던 기억이에요. 전날 15시간 동안 산행 후, 다음날 ‘4인의 우정길’로 갔어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그때까지 항상 텐션을 받고 후등만 했어요. ‘4인의 우정길’ 세 번째 피치에서 도저히 오를 수 없는 곳과 마주하게 되었어요. 팔 힘도 없고, 기술도 부족해서 추락했어요. 떨어지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어요. 너무나 높은 곳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두려움에 질려서 ‘여기서 죽으면 독일로 내 시신을 운송하는 비용이 얼마나 비쌀까?’라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어요.


사실 최고 난이도 5.9급으로 그리 어렵지 않은 바윗길인데 제게는 그렇지 않았어요. 결국 OB 김지성 선배께서 발을 받쳐 주고, 다른 선배는 위에서 최대한 줄을 당겨줘서 겨우 올라갔어요. 제가 너무 오랜 시간을 쓰는 바람에 하강할 때는 이미 해가 지기 시작했어요. 등반할 때부터 다른 멤버들에게 미안했는데, 땅에 도착하자 더욱 죄송한 마음이 들었어요. 바로 그때 비가 내렸어요, 천둥까지 쳤거든요. 두 명의 선배가 아직 하강하지 않았는데, 번개를 볼 때마다 로프에 맞을까 봐, 저 때문에 다칠까봐 너무 걱정되었습니다. 다행히 우리는 무사히 캠핑장으로 돌아왔어요.


그 하계훈련에서 남은 등반에는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산악부에서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한편, 다시는 하네스를 착용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날 모든 선배들이 제가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도록 그렇게 열심히 도와주셨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그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Q 산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설악산 하계훈련을 세 번 다녀왔어요. 첫 실패 이후, 등반 실력과 한국어 실력을 향상시키려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진전이 무척 느렸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작년에 다시 설악산에 갔을 때, ‘4인의 우정길’을 등반했는데 너무 쉽게 느껴져서 놀랐어요. 하지만 가장 기뻤던 순간은 올해 여름이에요. ‘4인의 우정길’ 첫 번째 피치를 선등으로 올랐어요. 등반도 즐거웠지만, 그보다도 등반이 끝난 후 드디어 감사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더 설렜습니다. 등반을 마친 뒤 2년 전 저를 도와주신 선배들께 제가 선등하는 사진을 보냈어요. 말로만 감사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이뤄낸 모습으로 감사를 표현할 수 있었던 그 순간이 제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습니다.”

Q 가장 좋아하는 산은?

 “설악산과 금정산이에요. 설악산은 사람들과 함께했던 추억 때문에 특별해요. 작년에 부모님이 한국에 오셨을 때 설악산에 가서 함께 등산을 했어요. 그때는 중청대피소가 아직 문을 닫기 전이었어요. 대피소에서 고기를 구워 먹는 걸 자주 봤는데, 부모님은 한국 사람들이 준비한 음식의 양에 정말 놀랐어요. 주변 사람들이 계속 음식을 권해 주는 한국의 환대와 따뜻함을 온전히 경험하셨습니다. 그 경험이 어머니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최근 노르웨이에서 등산을 할 때 만난 한국 등산객들에게 독일 스낵을 나눠 주셨다고 해요.


금정산은 한국에서의 제 등산 여정을 시작하게 해준 산이에요. 부산에서 태어난 사람들보다 금정산을 더 많이 등산한 것 같아요. 갈 때마다 아름다움과 다채로움에 놀라고 있어요. 2022년 방학 동안 독일에 다녀와 금정산을 다시 갔을 때, 집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Q 좋아하는 등반이나 산행 스타일은?

“백패킹과 슬랩 등반을 좋아해요. 백패킹을 하면 스트레스가 많은 일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어요. 저는 세상의 문제들에 대해 많이 걱정하고 생각하는 타입인데, 오래 걸으면 아무 생각을 하지 않게 돼요. 걸음에만 집중하고, 하이킹 끝에 멋진 풍경이 펼쳐지는 보상을 즐깁니다.


팔과 손가락 힘이 부족한 탓에 슬랩 등반을 정말 좋아해요. 처음 리드 클라이밍을 했던 곳이 금정산 준행암에서의 슬랩 등반이었고, 가장 작은 홀드를 찾아 잡고 균형을 맞추며 올라가는 게 퍼즐을 푸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높이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면 인수봉 클라이밍을 더 즐길 수 있을 텐데, 2년 반 동안 클라이밍을 해왔지만 높이에 대한 두려움은 나아지는 것 같지 않아요. 20년 후에는 제 높이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져서 인수봉을 즐기면서 클라이밍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Q 본국 사람들과 한국 사람은 어떤 면이 다른가?

“내리사랑이라는 문화적 개념이 독일에는 없어요. 산악부에서 첫 학기를 보낼 때, OB선배들이 음식을 사주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서 부담을 느꼈어요. 그저 많이 행복하고 놀라운 경험을 받기만 하는 것 같았어요.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선배로서 열심히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후배들을 도울 때 행복함을 느꼈고, 선배들도 아마 같은 기분이었을 것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금 4학년 마지막 학기이고, 내년에 독일로 돌아가 석사 과정을 밟을 계획이지만, 산악부를 떠나지 않을 겁니다. 저는 늘 유럽 알프스에서 공식 OB활동을 하겠다고 농담을 하곤 했지만, 사실 진심입니다. 영남 알프스에서 가이드를 해주셨던 선배들처럼, 저도 유럽 알프스에서 가이드를 하며 선배님들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할 계획입니다.”

Q 부산대산악부는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가?

“어렸을 때 저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어요.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고, 어른이 되는 것이 두려웠어요. 유년 시절을 돌아보면 많은 부분이 어두운 기억이라 안타까워요. 하지만 지난 4년을 돌아보면, 여기서 보낸 시간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그중 가장 큰 부분이 바로 등산 동아리 덕분이에요. 물론 눈물도 있었고, 어려움도 있었고, 언어 장벽으로 좌절과 불안도 있었지만, 동아리 덕분에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었어요. 


동아리 덕분에 제 인생은 훨씬 더 다채로워졌어요. 많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많은 웃음을 나누었고, 정말 많은 맛있는 음식을 먹었어요. 4개 국어를 할 줄 알지만, 그 모든 언어를 사용해도 멤버들에게 얼마나 감사하고 사랑하는지 온전히 표현하기는 어렵습니다.” 


월간산 12월호 기사입니다. 


신준범 기자 jbsh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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