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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하거나 의미 있거나! 올해를 대표하는 공연들

2015년 올해의 공연

2015년 한국 공연계는 참 다사다난했다. 검열 논란이 이어지는 한편 두 달여간 지속된 메르스 때문에 상당히 위축되었다. 다행히 하반기 들어 조금씩 원기를 회복하고 있지만, 올해는 전반적으로 재도약을 위해 움츠린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눈을 사로잡은 작품도 여럿 나왔다. 올해 공연계에서 작품성과 화제성, 흥행성 등을 모두 종합해 가장 기억에 남는 ‘베스트 5’ 공연을 꼽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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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데스노트'


성남아트센터 오페라 하우스 무대에 오른 <데스노트>(6.20~8.15)는 세계 35개국에서 발행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끈 일본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다. 이름을 쓰면 그 사람이 죽게 되는 사신死神의 노트를 고등학생 라이토가 우연히 주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일본 호리프로가 제작해 4월 도쿄에서 처음 올린 뒤 오사카와 나고야를 거쳐 6월 한국에서 아이돌 그룹 JYJ의 소속사로 유명한 씨제스가 라이선스를 획득해 무대에 올렸다. 한국 버전은 뮤지컬계 최고 티켓 파워를 지닌 김준수와 런던 웨스트엔드 <미스 사이공>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홍광호의 투톱 캐스팅으로 팬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다. 최근 한국 뮤지컬계에서 이례적으로 전 배역 원 캐스트였던 이 작품은 공연 내내 매진사례를 기록했으며, 당시 100만 원짜리 암표가 돌기도 했다.

 

이 작품은 창작 아니면 서양 뮤지컬이 대부분인 한국에 일본 뮤지컬이 본격적으로 도전장을 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뮤지컬 시장을 가지고 있지만, 완성도와 흥행 면에서 모두 성공한 창작 뮤지컬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런데 뮤지컬의 모범답안으로 생각했던 서양 스타일은 아니지만 높은 인기와 수익을 안겨주는 창작 뮤지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바로 만화나 애니메이션 원작의 ‘2.5차원 뮤지컬’이다. 서양 뮤지컬처럼 세련된 무대와 유려한 음악은 없지만 인기 있는 원작만화를 앞세워 충성도 높은 팬들을 거느리게 됐다.

 

2.5차원 뮤지컬의 붐은 2003년 시작돼 지금까지 공연 중인 <테니스의 왕자>가 일으켰다. 그리고 지난해 3월 일본의 공연·출판·애니메이션·방송·음악 분야의 관련 회사 50여 개가 참가한 일본2.5차원뮤지컬협회(이하 협회)가 발족해 일본 고유 장르를 넘어 해외시장도 개척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브로드웨이의 프랭크 와일드혼 사단과 일본의 유명 연출가 쿠리야마 타미야가 손을 잡은 이번 작품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었다. 캐릭터가 중심인 2.5차원 뮤지컬에 극적 전개가 장점인 브로드웨이 스타일을 입힌 이번 작품은 만듦새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다른 2.5차원 뮤지컬에 비해 완성도가 높은 편이다. 다만 화려한 무대와 빠른 전환을 좋아하는 한국 관객들에게는 심플한 무대가 다소 심심하게 느껴졌다는 의견이 나왔다.

성악계 어벤져스 출동한 예술의전당 오페라 <마술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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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마술피리'

모차르트의 <마술피리>(7.15~7.19)는 예술의전당이 지난 2009년 <피가로의 결혼> 이후 6년 만에 자체 제작한 오페라다. 예술의전당은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여름마다 토월극장에서 <마술피리>를 선보여 왔는데, 이번에는 규모를 키워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렸다.특히 공연영상화 사업인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의 일환으로 제작된 만큼 특별히 많은 공을 들였다.

 

이 작품은 ‘성악계의 어벤져스’로 불릴 만큼 스타 성악가들이 대거 출동해 공연 전부터 화제가 되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 런던 로열오페라, 밀라노 라 스칼라 등 세계 주요 오페라 하우스에서 활약해온 테너 김우경과 독일 정부의 궁정가수 작위(캄머쟁어Kammersaenger)를 받은 베이스 전승현을 비롯해 박현주, 공병우, 서활란 등이 A팀, 독일 만하임 국립극장 전속 솔리스트인 테너 이호철과 스위스 베른 오페라 극장 전속 솔리스트인 소프라노 이윤정을 비롯해 김대영, 이응광, 최윤정 등이 B팀으로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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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마술피리'

타미노 왕자가 파미나 공주를 구하러 가는 여정에 유쾌한 새잡이꾼 파파게노와 밤의 여왕, 지혜의 자라스트로가 등장하는 동화 같은 이야기인 <마술피리>는 원래 비밀결사 프리메이슨 단원이던 모차르트의 자유, 평등, 박애의 인본주의 사상과 관용의 정신이 녹아 있는 철학적인 오페라다. 이경재가 연출을 맡은 이번 작품은 ‘가족 오페라’를 지향한 만큼 환상적인 분위기, 독특한 개성을 가진 등장인물들, 다채로운 색깔의 음악을 무대에 구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특히 LED(발광다이오드) 램프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시도는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렇다고 해서 원작의 철학을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니다. 선과 악의 대립,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유지하게 하는 숫자 3의 철학과 삼각구도를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삼은 무대 세트 등은 작품의 무게중심을 잘 잡아줬다.

 

독일어로 노래하는 동시에 노래 중간중간 삽입되는 모든 대사를 한국어로 처리해 징슈필(연극처럼 중간에 대사가 들어 있는 독일어 노래극)의 묘미를 살린 이 작품은 음악적으로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A, B팀 출연진 대부분이 빼어난 가창을 보여줬지만 김우경은 특히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가장 자신 있는 역할 가운데 하나인 타미노 왕자를 연기한 김우경은 깊이 있고 빛나는 미성을 공연 내내 과시했다.

광주 아시아예술극장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당나라 승려>

광주의 옛 전남도청 자리에 건립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2005년부터 국책사업으로 추진해온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의 핵심이다. 연구, 교류, 창작, 공연, 전시, 교육 등의 활동이 이뤄지는 복합문화시설로 민주평화교류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아시아예술극장, 어린이문화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원래 올해 9월 개관이 예정이었지만 아시아예술극장을 제외한 나머지 네 곳은 콘텐츠 부족 때문에 11월로 개관이 연기됐다. 아시아 공연예술의 제작과 유통 플랫폼을 미션으로 삼은 아시아예술극장은 9월 4일부터 3주간 개관 페스티벌을 연 뒤 10~11월, 내년 3~5월 5개월간의 시즌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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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 '당나라 승려'

개관 페스티벌 개막작인 대만 출신 영화감독 차이밍량의 <당나라 승려>(9.4~9.6)는 아시아예술극장이 처한 현실과 이상의 간극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이 작품에서 관객들이 처음 맞닥뜨린 장면은 가로 8미터, 세로 4미터의 거대한 흰 종이 위에서 자고 있는 남자다. 혈혈단신으로 고비사막을 횡단하는 등 중국에서 인도까지 걸어서 경전을 가져온 삼장법사 현장이다. 19년에 걸친 그의 구법 여행은 절대적인 고독과 두려움으로 점철돼 있었다.

 

현장 역을 맡은 배우 리캉셩李康生이 잠을 자는 한 시간 동안 목탄 드로잉 전문 아티스트인 대만의 카오준혼이 검은 목탄으로 흰 종이 곳곳에 20여 마리의 거미를 그려나간다. 이후 몇몇 거미는 그렸다 지우기도 한다. 카오준혼은 흰 종이 전체를 검게 칠하더니 그 위에 다시 나무와 꽃을 그린다. 현장의 꿈속 풍경으로, 거미는 두려움과 불안을 상징한다. 그리고 나무와 꽃은 복잡한 마음을 겨우 진정시킨 그의 내면을 의미한다.

 

잠에서 깨어난 현장은 천천히 차를 마시고 복숭아를 먹었다. 그리고 머리 면도 후 경전을 한참 읊더니 검게 칠해진 종이 위를 느린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의 고독한 여행길을 묘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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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포먼스 '당나라 승려'

2시간 20분 동안 진행된 이 공연은 일종의 ‘묵언수행’이었다. 차이밍량이 2012년부터 ‘느림’을 소재로 만들고 있는 <걷는 사람> 연작의 일환인 이 작품은 속도에 목숨 거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그의 저항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빠른 속도에 익숙한 관객들은 보는 내내 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당나라 승려> 외에도 개관 페스티벌 작품들은 대부분 흥미로웠고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안겨줬다. 하지만 너무 실험적이다 보니 어려움을 호소하는 관객들도 있었다. 그래서 개관 페스티벌 동안 선보인 작품들의 공연 도중 관객들이 극장 문을 나서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새로운 창극의 탄생 <적벽가>

국립창극단은 50주년이던 2012년 김성녀 예술감독이 부임한 이후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물인 <장화홍련>, <배비장전>, <서편제>,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다른 춘향> 등 기존 창극과 다른 작품들은 발표될 때마다 공연계와 비평계의 뜨거운 화두가 됐다. 특히 2015/2016시즌의 첫 작품으로 국립오페라단 예술감독을 역임했던 이소영이 연출하는 <적벽가>(9.15~9.19)는 공연 전부터 화제였다. 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인, 여든의 송순섭 명창이 작창과 도창을 직접 맡았다는 것 외에도 ‘이소영표 오페라’ 브랜드를 구축할 정도로 뛰어난 연출력을 자랑했던 이소영이 2011년 7월 국립오페라단장 퇴임 이후 4년 만에 복귀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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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극 '적벽가'와 송순섭 명창


<적벽가>는 중국 역사에서 유명한 적벽대전을 소재로 한 것으로, 판소리 다섯 바탕에서도 가창의 난도가 가장 높다. 국립창극단의 50년 남짓한 역사 동안 <적벽가>를 창극으로 만든 것은 1985년, 2003년, 2009년 세 번뿐이다.

 

참신한 오페라 해석으로 정평이 난 이소영은 이번에 처음 연출한 창극에서도 명불허전의 연출력을 보여줬다. 그는 <적벽가>의 웅장한 소리를 고스란히 살리면서도 유비, 관우, 장비, 조조 등의 영웅보다 적벽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민초들의 삶을 조명함으로써 전쟁 같은 의미 없는 역사를 반복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를 위해 모든 등장인물을 적벽대전에서 스러져간 망자亡者로 놓고, 이 망자로부터 전쟁의 핏빛 역사를 듣는 무대로 만들었다. 접거나 펼쳐서 다양하게 활용하는 부챗살 모양의 세트, 파노라마 영상으로 펼쳐지는 수묵화 배경 그리고 적벽대전에서 수장된 난파선의 무덤으로 만든 오케스트라 피트 등 무대 활용 면에서 발군이었다. 마치 스펙터클한 영화를 한 편 본 것 같은 충만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다만 지나치게 스타일리시한 연출이 이야기의 핵심을 간과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쟁의 비극성을 강조하기 위해 조조가 도망가는 뒷부분을 ‘조조의 꿈’으로 설정해 전쟁 장면 앞으로 뺀 것을 비롯해 몇몇 장면의 순서를 바꾼 것은 참신한 시도였으나 장면이 끊기고 이야기가 연결되지 않는 결과를 낳았다. 게다가 원작인 중국의 「삼국지연의」와 달리 판소리 <적벽가>에서는 조선 서민의 색깔이 드러나는 편인 데 비해 이번 공연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도 아쉽다는 지적을 받았다.

발레리나 강수진의 은퇴작 <오네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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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오네긴'

강수진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입단한 지 30년째 되는 내년 7월 22일 현역에서 은퇴한다. 그는 은퇴작인 <오네긴>(11.6~11.8)으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한국 관객에게 먼저 작별 인사를 건넸다. 그의 마지막 무대를 보려는 팬들로 티켓은 일찌감치 매진됐으며 공연 직전 시야제한석까지 팔렸다.

 

<오네긴>은 방탕한 남자 오네긴과 순진한 여인 타티아나의 엇갈린 사랑을 담은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동명 운문소설을 안무가 존 크랑코가 발레로 만든 것이다. <카멜리아 레이디>, <로미오와 줄리엣>과 함께 강수진의 대표 레퍼토리로 꼽힌다.

 

강수진은 1997년 수석무용수로 승급하면서 오랫동안 고대해온 <오네긴>의 타티아나 역을 연기했다. “마르시아 하이데 이래 최고의 타티아나”라고 찬사를 받던 강수진의 <오네긴>은 2004년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내한공연을 통해 마침내 한국 관객들도 접할 수 있었다. 당시 강수진의 명품 연기는 관객에 깊은 인상을 남기며 두고두고 회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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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 '오네긴'

오네긴 역의 제이슨 레일리와 호흡을 맞춘 강수진은 이번 은퇴 공연에서 ‘명불허전’의 타티아나를 다시 보여줬다. 1막 사랑의 열병을 앓는 순진한 시골 처녀로부터 3막 첫사랑에 대한 애증으로 갈등하는 귀부인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타티아나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특히 1막 2장에서 타티아나가 꿈속에서 오네긴과 추는 ‘거울의 파드되’는 연인의 관능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반면 3막 2장에서 방랑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사랑을 갈구하는 오네긴과 그에게 끌리면서도 뿌리치는 타티아나를 그린 ‘회한의 파드되’는 격정과 고통이 가슴 시리게 표현됐다.

 

강수진은 정확한 테크닉과 섬세한 표현력,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시종일관 관객들의 감탄을 자아냈다. 내년이면 50세를 바라보는 나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관객들은 공연을 마친 강수진의 이름을 부르며 기립박수를 보냈다. 15분 넘게 이어진 환호에 강수진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마지막 날 리드 앤더슨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예술감독이 무대에 올라 축하를 건네자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쏟아내기도 했다.

 

발레리나 강수진은 그렇게 ‘한국 발레사의 전설’로서 깊은 발자취를 남기며 무대를 떠났다. 그러나 국립발레단장으로서 그의 삶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글 장지영 (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사진 씨제스, 광주 아시아예술극장, 국립극장, 크레디아인터내셔널

 

위 글은 월간 「예술의전당과 함께 Beautiful Life!」 2015년 12월호에서 전재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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