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아빠와 여행을 떠났냐고 묻는다면
왜 아빠와 여행을 떠났냐고 묻는다면 – 안드라 왓킨스 / indigo 출판 |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먼 존재, 이 기묘한 모순에 딱 어울리는 관계는 ‘가족’이다. 피로 맺어져 너무나 가깝지만 그렇게 가깝기에 한 번 멀어지면 한 없이 감정의 골이 벌어져 말 그대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 쉽다.
그렇게 서로에게 감정의 골이 패일대로 패인 40대의 딸과 80대의 아버지가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그 안에서 뿜어져 나올 다양한 시추에이션에 (그 당사자가 아닌 이상 이만한 구경거리, 혹은 읽을 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잔뜩 흥분되고 긴장하게 만든다.
이제 막 처녀작을 출간한 40대의 여성작가 안드라 왓킨스는 자신의 새 책을 홍보하고 기념할 만한 일을 찾던 중 미시시피주 나체즈에서 출발 테네시주의 내쉬빌에 이르는 714km의 나체즈 길을 걷기로 한다. 그 나체즈 길은 자신의 소설속 주인공이자 실제 인물인 메이웨더 루이스(개척시대의 탐험가로 루이스와 클라크 탐험대의 대장)를 기리기에 충분한 가치를 지닌 길이다.
그러나 그 긴 여행에 있어서 34일간 하루에 24km씩 걷는다는 계획을 정하고 매일 걷기를 마친 자신을 인근의 숙소로 바래다주고 또 다음날에는 다시 출발해야할 지점에 바래다 줄 조력자를 찾는 일은 쉬운일이 아니다. (40대의 그녀, 길을 걷는다는 일이 익숙치 않은 그녀에게 백패킹은 도저히 무리인 상황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리스트에서 가능한 도우미를 지워나가던 그녀는 제일 마지막에 남은 그 존재, 지독한 의견 충돌과 다툼으로 냉전을 넘어 서로에게 무의미한 존재로 남아있을 그 존재 ‘아버지’를 떠올린다.
그녀가 될대로 되라, 아니 어쩌면 안 되는것이 당연하다 싶은 심정으로 아버지를 찾아가 자신의 여행에 동참할 것을 권하는 장면과 그것을 승낙하기에 이르는 짧은 에피소드는 이 책의 앞으로의 이야기가 얼마나 천방지축으로 흘러갈지 알 수 있게 한다.
안드라 왓킨스와 그녀의 아버지 로이 |
아빠가 대답을 하느라 몸을 굽히자 뱃살이 허벅지까지 처졌고 세 겹으로 접힌 턱이 출렁거렸다.“5주 동안 여행을 가자고? 너하고 나랑 단 둘이? 나는 싫다. 안드라.”
“왜 싫으신데요?”
나는 1980년경에 재향군인회에서 나온 아빠의 보청기를 뚫고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크게 소리를 질렀다.
“그야.”
아빠는 팝콘을 한 움큼 씹었다.
“흠… 마감 칠을 다시 해야 하는 가구가 있거든.”
“갔다 와서 하면 되죠. 가구가 어디 도망가요?”
아빠는 의자 팔걸이에 손톱을 쑤셔넣었다.
“주일학교 수업을 그렇게 오래 빠지면 안 되지.”
“외동딸이랑 같이 지내려고 교회에 못 간다는데 하나님도 봐주시겠죠, 아빠.”
“글쎄, 어… 나는… 네 엄마에게 내가 필요할 수도 있지 않냐.”
엄마가 아이스크림을 담은 그릇을 들고 도도하게 걸어왔다. 그리고는 아빠의 손가락 사이에 숟가락을 끼워주며 미소를 지었다.
“당신은 집에 없어도 돼, 로이.”
이 만큼이나 비협조적인 사람이 그녀의 여행길 조력자로 마지막으로 남은 사람이란 것은 참으로 암담한 일이다. 결국 그녀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성격, 과시하기 좋아하는 성격을 건드리며 신나는 모험과 많은 낯선 이들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기위해 술집에서 기다릴거라는 허황된 믿음을 심어줘 그 마음을 돌리는데 성공한다.
“갈란다, 안드라. 하나님이 나를 3월까지 살게 해주신다면 너랑 같이 여행을 떠나마.”아빠는 나체즈 길에서 내 조력자가 될 터였다. 문단에서 스타반열에 오른 내 모습이 꿈에 젖은 내 눈에 아롱졌다. (중략)
결승점인 내쉬빌에 비틀거리며 비틀거리며 들어설 때 수많은 사람들의 환영을 받게 되리라.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나온 사람들. 내 책을 흔들며 사인해달라고 외치는 팬들.
한껏 부풀어 오른 상상의 나래는 의자에서 몸을 일으킨 아빠가 가랑이를 긁으며 방귀를 뀌는 순간 깨졌다.
“그래, 안드라. 진짜 재미있는 여행이 되겠구나.”
아, 내가 무슨짓을 한 거지?
이렇게 ‘이보다 더 나쁜 조합을 찾기 힘들’ 부녀는 나체즈길을 떠난다. 그 지독히도 먼 서로간의 관계는 쉽게 가까워지지 않는다. 비꼼과 책망, 무신경이 서로를 오가는 가운데 서로는 서로의 약한 모습을 보게 된다.
아버지는 그 말이 안될 정도로 무의미한 일에 매달리고 밤마다 앓아눕는 딸을 보며 자신의 유년을 더듬고 딸은 자신 몰래 소변과 대변을 바지에 실수한 아버지를 보며 어느덧 너무나 늙어버린 그 모습에 눈을 돌려야 할 지 고민한다.
그렇게 서로의 여행에 어머니를 비롯한 다양한 인물들이 끼어들면서 그 이야기는 보다 다양한 색채를 입게 된다. 결국 그 거리가 완전히 좁혀지지는 않았을지라도 이 책을 통해 작가는 소중한 사람을 붙들고 “그걸 못 한 게 한이 돼요.”라는 말을 “같이할 수 있어서 기뻤어요.”라는 말로 바꿀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결국 서로에게 최고의 아버지와 딸이 될 수 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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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성경을 팔았던 판매원 시절의 경험을 살려 딸이 걷는 동안 멀리 떨어진 동네부터 고속도로 휴게소, 모텔과 술집을 전전하며 딸의 책을 파는 아버지의 모습은 웃음 속에 진득한 무엇인가를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또한 ‘책을 팔려면 저자의 싸인이 들어가야 한다’며 트레일을 걸어 피곤한 딸에게 수십권의 책을 가져다놓고 일일히 싸인을 다 하라고 채근하는 모습은 그 일을 통해 딸에게 무엇인가를 해 줄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받으려는 ‘아버지’의 마지막 강인함과 가장의 존엄을 드러낸다. 그 사이에서 딸인 안드라는 고민한다. 결국 그 여행을 통해 그녀가,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서로에게 발견한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은 거대한 장거리 트레일을 걷는 이를 위한 지침서는 아니다. 또한 어떤 특정한 길(예를 들어 안드라 왓킨스가 걸은 나체즈길)에 대한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지도 않다. 오히려 그렇기에 이 책은 부담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여행, 길을 걷는다는 행위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 그리고 그저 지나치거나 생각하지도 않았던 순기능을 조명한다.
당신은 자신의 여정에 있어서 가장 함께하기 힘든 사람과의 여행을 꿈 꿔본 일이 있는가? 어쩌면 그것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경험이 될 지도 모른다. 더 나아가서는 잊을 수 없는 경험과 회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나체즈 길을 걷는 안드라 왓킨스 |
본 기사는 월간 로드프레스 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by 장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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