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시장은 200억 달러 규모인데, 커피 농부들 임금은...”
- 피터 케틀러 국제공정무역기구 커피 최고 책임자
- 기후변화·가격 하락으로 커피 산업 ‘지속가능성’ 위기
- “높은 질의 커피 인기인 만큼, 생산자들의 삶의 질도 고려해야”
[리얼푸드=고승희 기자] 커피를 단지 ‘기호식품’으로만 여기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커피’는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자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전 세계 커피 인구도 그만큼 늘었다. 국제커피기구(International Coffee Organization, ICO)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커피 소비는 연평균 2.1%씩 증가했다. 국제공정무역기구(Fairtrade International)는 매일 전 세계적으로 20억 잔의 커피가 소비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국인의 ‘커피 사랑’도 전 세계 어느 나라 못지 않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국내 20세 이상 인구의 연간 1인당 커피 소비량은 약 353잔. 세계 인구 연간 1인당 소비량 132잔의 3배에 달한다. 한국의 원두 소비량은 약 15만톤으로 세계 소비량의 2.2%, 세계 6위 규모다.
“전 세계적으로 ‘커피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가 마시는 이 커피 한 잔이 어떻게 생산되고 유통되는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커피 시장은 200억 달러를 넘어선 규모를 가지고 있는데, 생산자들의 임금은 아직도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피터 케틀러 국제공정무역기구 커피 최고 책임자. [Michael Hurt, HAE Creative 제공] |
최근 한국을 방문한 피터 케틀러(Peter Kettler) 국제공정무역기구(Fairtrade International) 독일 본부의 커피 최고 책임자는 현재의 커피 산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피터 케틀러 씨를 직접 만나 커피 생산자들이 처한 상황과 공정무역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공정무역 커피는 다국적 기업이나 중간 상인을 거치지 않고 제3세계 커피 농가에 합리적인 가격을 지불해 사들이는 커피를 말한다. 현재 32개국, 582개의 공정무역 인증 커피 생산조합 내 76만 명의 커피 농부가 활동하고 있다.
피터 케틀러 씨는 “공정무역 커피의 특징은 커피 생산자들의 최저임금을 마련해 그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지원하고, 공급망 전체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것은 물론 성평등 기준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각지의 생산자들에게 최소한의 생산을 지속하는 데에 필요한 임금을 보장하고 있지만, 이것이 적합한가에 대해서는 아직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지속가능한 작물의 생산뿐만 아니라, 생산자들의 가정도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각 나라마다 생활 수준을 측정해 더 나은 지원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현재 커피 산업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피터 케틀러 씨는 “기후변화와 가격 위기가 커피 농부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초 에티오피아 환경·기후변화 및 커피숲포럼(ECCCFF) 공동연구팀의 연구에선 기후변화로 인해 2038년이 되면 커피 생산량이 현재보다 40~50% 가량 줄어들게 될 것이며, 21년 뒤인 2040년이 되면 아라비카나 로부스타 커피종은 사실상 멸종하거나 거의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월드 커피 리서치 기관을 통해 커피 생산자들이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커피를 경작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어요. 가뭄에 견딜 수 있으면서도 높은 품질을 유지하고 있는 커피죠. 뿐만 아니라 수익 구조를 다양화해서 커피 의존도를 낮출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어요.”
최근 1년 사이 이어지고 있는 커피 가격의 위기도 생산자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국제공정무역기구에 따르면 가장 많이 팔리는 커피 품종인 아라비카와 로부스타 가격은 2017년부터 올해까지 40%가량 떨어졌다. 그로 인해 커피 농가의 생계도 위협받고 있다.
피터 케틀러 씨는 “앞으로 1년~1년 6개월의 기간 동안 커피 가격 위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며 “전 세계적으로 60% 이상의 커피 생산자들이 생산을 위한 기본적인 가격, 수익을 받지 못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커피 생두 가격은 유럽이나 북미 카페에서 판매되는 커피 음료 가격의 1~3% 수준이고, 슈퍼마켓에서 판매되는 로스팅한 원두 커피 가격의 2~6% 수준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국제공정무역기구에 따르면 올초 커피 가격은 1달러 미만으로 떨어지고, 커피 생산자들은 정당한 대가를 받아야 하지만 소규모 생산자들의 경우 커피를 생산 비용 미만으로 판매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공정무역기구가 하는 일은 안전망을 제공해서 최소한 생산자들이 생산을 지속할 수 있는 수익을 받아올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입니다. 공정무역은 구매자가 최소 금액을 지불해야 하는 유일한 인증 시스템으로, 생산자들의 노동에 대한 품위를 지켜주고, 경제적 안전성을 제공하고 있어요.”
최근엔 윤리적 소비에 대한 인식과 가치 소비 트렌드가 확산되며 ‘공정무역 커피’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피터 케틀러 씨도 “윤리적 구매에 대한 인식이 향상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소비자들이 내가 구매하는 음식이 어디에서 왔는지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런 트렌드 속에서 지속가능성이 유행처럼 인식돼 본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때문에 소비자들 스스로 구매하는 제품이 어떤 기준으로 인증받았는지, 생산자들이 인증 기준에 직접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이로 인해 어떤 혜택을 받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커피 시장에선 높은 질의 스페셜티 커피가 인기를 모으고 있어요. 중요한 것은 높은 질의 커피를 마시는 것만이 아니라 이를 생산하는 사람들의 삶의 질도 함께 고려돼야 한다는 점이에요.”
shee@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