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염으로 김치 담궈야 항암·항비만 효능 우수”…박건영 차의과학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
박건영 차의과학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 인터뷰
30년 이상 김치 연구에 집중한 ‘김치 박사’
“김치는 최고의 프로바이오틱 푸드” 과학적 입증
재료와 제조법에 따라 효능에 차이나
천일염으로 담궈야 항암ㆍ항비만 효과 우수
[리얼푸드=육성연 기자]김치의 위상이 지금처럼 높았던 적이 있었을까. 한국의 김치는 한류 열풍과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확산으로 면역력에 좋은 발효식품중 가장 핫한 식품이 됐다. 하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김치가 이렇게 ‘글로벌 스타’로 떠오를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국내에서는 소금이 많아 위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해외에서는 ‘김치 냄새’가 한국인 비하 용어로 사용된 경우도 있었다.
김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많던 그 시절부터 30년 넘게 김치 연구에만 매달려온 ‘김치 전도사’가 있다. 박건영 차의과학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이다. 박 교수는 “어떤 재료를 넣고, 어떻게 담그냐에 따라 김치 효능은 크게 달라진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적으로 김치에 대한 관심이 높은 지금, 자타 공인 ‘김치 박사’가 말하는 ‘최고의 웰빙 김치’ 조건을 들어봤다.
박건영 차의과학대 식품생명공학과 교수. 박 교수는 “김치는 최고의 프로바이오틱 푸드”라며 “김치의 재료와 제조법에 따라 효능이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
식품미생물학 및 발효식품을 전공한 박건영 교수는 미국 네브라스카 주립대 박사, 하버드대학교 영양학과 교환교수를 마친 후, 부산대 교수를 거쳐 현재 차의과학대학교 교수로 재직중이다. 2004년에는 ‘한국김치협회’를 설립했다. 경기도 성남시 차바이오컴플렉스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김치 인식이 부족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과거에는 소금 때문에 김치를 많이 먹으면 위암 위험이 높아진다는 오해가 있었어요. 정부의 저염 캠페인도 진행되면서 ‘김치를 하루에 한 끼만 먹자’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등 김치가 큰 타격을 받았죠. 당시 참담했던 제 심정은 김치를 더 올바르게 알려야겠다고 다짐하게 만들었죠.”
박 교수는 지난 1987년부터 김치를 연구한 결과, 김치의 항암 효과를 확인했다. 이후 국제학술지 ‘기능성 식품지(Journal of Medicinal Food, 2014)’를 통해 “김치는 프로바이오틱 푸드”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혔다. 짜서 ‘덜 먹어야 했던’ 김치를 암과 비만 예방을 위해 ‘먹어야 하는’ 김치로 바꾼 것이다. 그가 강조해 온 김치의 건강기능성은 해외에서도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2006년 미국의 건강전문지 헬스 매체는 ‘세계 5대 건강식품’에 김치를 꼽았다.
해당 매체가 김치를 선정한 이유는 십자화과채소인 배추와 김치의 ‘특별한’ 유산균 때문이다. 14년후 이 유산균은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전 세계의 관심 대상으로 떠올랐다. 박 교수가 사무실에서 가장 먼저 보여준 논문(2020) 역시 코로나 바이러스와 연관된 십자화과 채소와 유산균 연구였다. 프랑스 몽펠리에 대학 장 부스케(Jean Bousquet) 명예교수 연구진은 실험결과 브로콜리로 대표되는 십자화과채소의 항산화성분들이 코로나19 환자에게 종종 나타나는 ‘사이토카인 폭풍(면역세포가 과하게 활성화되어 염증반응을 일으키는 현상)’을 막아주는 효과를 보였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이 연구에서 브로콜리 추출물보다 더 높은 효과를 보인 것이 바로 ‘김치’였으며, 연구진은 김치 유산균이 면역 세포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했다”고 말했다. 이어 “면역력에 중요한 장 건강을 지키는 것은 유산균”이라며 “특히 김치 유산균은 다른 발효식품보다 월등히 우수한 특징을 가진다”고 했다.
“김치가 발효되면 g당 만 마리였던 유산균이 1억~10억 마리까지 늘어나요. 중요한 것은 여기에 ‘프로바이오틱스(유산균)’와 ‘프리바이오틱스(유산균의 먹이)’, 그리고 ‘포스트바이오틱스(유산균이 만들어낸 발효산물)’까지 모두 들어있다는 점이에요. 즉 김치는 배추가 가진 ‘십자화과채소의 항산화물질’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으며, 발효과정을 통해 ‘유산균’, 그리고 유산균이 또 만들어낸 ‘발효산물’까지 더해진다는 겁니다. 김치는 면역력강화 식품으로 굉장히 유리한 위치에 있어요. 문제는 소금이죠.”
다시 논점은 ‘소금’으로 돌아왔다. 김치의 소금은 실제로 악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세계보건기구(WHO)의 소금의 하루 권장섭취량은 5g 미만이다. 하지만 박 교수는 “7~ 14g까지 적절하다고 보는 연구진(O’Donnell M, JAMA 2011)의 논문도 나왔으며, 김치 속 칼륨과 유산균, 항산화물질, 식이섬유 등이 나트륨 흡수를 방해하므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과거에는 발효를 통해 곰팡이처럼 나쁜균이 생길 수 있다고 여겼으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특히 김치는 더욱 그러하죠. 배추를 소금에 절이는 첫 과정을 통해 나쁜 균이 없어지고 좋은 유산균만 남게 됩니다. 이후 두번 째 발효과정을 거치면서 이 좋은 균은 더욱 늘어나죠.”
‘소금’ 문제는 이렇게 해결된 듯 싶었으나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소금을 사용하느냐의 중요한 문제가 남은 것이다.
“가장 좋지 않은 것은 ‘정제 소금’, 가장 우수한 소금은 ‘죽염’ 입니다. 하지만 죽염은 가격이 높아 김치에는 ‘천일염’이 좋습니다. 그 중에서도 쥐실험결과, ‘간수(소금에서 나오는 쓰고 짠 물)를 빼지 않은 천일염’ 보다 ‘3년 숙성 천일염(자연적으로 간수를 뺀)’으로 담근 김치가 비만·항암 효과가 더 높게 나타났어요. 조상들은 염전이 생긴 후부터 숙성된 천일염으로 김치를 담궈왔는데, 이러한 원리는 선조들이 이미 알아냈던 것이며, 저는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3년간 소금의 간수가 빠지도록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다. 그는 “천일염을 숙성하지 않고 물에 씻어서 간수를 빠르게 제거한 천일염을 사용하면 쓴 맛이 사라져 김치 맛이 좋아지며, 효능은 더 우수해진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다”고 하면서 “놀라운 연구 결과였다”고 말했다.
천일염 외에도 김치의 재료, 제조법을 통해 항암 조건을 갖춘 기능성 ‘항암 김치’의 경우, 박 교수가 진행한 쥐 실험에서 탁월한 항암효과가 입증됐다. ‘일반 소금 김치’는 암세포를 14% 억제했으나 ‘항암 김치’는 49%를 억제한 것이다. 그는 ‘항암 김치’와 함께 ‘항 비만 김치’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웰빙 건강 김치를 담그기 위한 조건으로 “유기농 배추의 사용”, “공기 접촉을 막기 위해 마지막엔 배추 겉잎으로 둘러싸서 묶은 후 적당히 눌러주기”, “항아리 사용”, “베란다(15℃)에서 하룻밤 놔둔후 냉장고( 5℃)에 보관” 등을 소개했다.
수많은 연구를 발표해 왔지만 박 교수는 아직도 “김치 연구가 너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김치의 효능은 무엇인지, 어떻게 담궈야 할지를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최종목표는 수십 년간 김치를 연구해왔어도, 현재 김치가 뜨거운 조명을 받아도, 아직은 그대로 남겨져 있다고 했다. “조상의 지혜인 김치를 ‘K-푸드’로 올바르게 정착시키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의 목표는 한국인의 몫이기도 하다. 우리도 잘 모르는 김치를 ‘K-푸드’로 내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순서는 우리가 먼저 ‘제대로’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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