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없이 스스로 크는 돼지농장 가보니…
- 경북 봉화 친환경 자연양돈 농가 현장 르포
[리얼푸드(경북 봉화)=박준규 기자] 돼지고기는 ‘국민 먹거리’다.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 한해에 소비하는 돼지고기는 24㎏(농림축산식품부 통계, 지난해 기준) 정도로, 소고기와 닭고기 소비량을 웃돈다.
이처럼 양돈산업은 국내 축산업 가운데서도 가장 돋보이는 비즈니스로 꼽힌다. 업계의 주된 관심사는 ‘얼마나 빨리 돼지를 키워서 파느냐’다. 즉 생산성을 높이려는 고민이다.
하지만 동물복지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최근엔 동물이 쾌적함을 느끼는 환경에서 돼지나 닭, 소를 키우는 농가가 늘고 있다. 경기도가 최근 '가축 행복 농장'을 지정하겠다고 나선 것도 눈길을 끈다.
경북 봉화에 있는 유기농 자연양돈 농장의 돼지들이 풀을 먹고 있다. 이곳 돼지들은 왕고들빼기를 특히 좋아한다. |
가축이 쾌적함을 느끼는 농장, 어떤 모습일까. 지난 5일 찾아간 경북 봉화군의 한 자연양돈 농장에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이 농장은 ‘노 스트레스(No stress) 양돈농가’를 내세우는 곳이다. 봉화군청을 지나쳐 청량산 속을 굽이도는 도로를 따라 달려서 도착했다.
이곳 농장을 꾸리고 있는 임헌문 대표가 기자를 축사로 안내했다. 마침 농장 돼지들이 먹이를 먹고 있었다. 축사 안으로 명아주와 왕고들빼기를 넣어주니, 흩어져 있던 크고 작은 돼지들이 몰려들어 풀을 뜯었다.
이곳 농장을 운영하는 임헌문 농부가 축사 안에서 풀을 먹이고 있다. |
임 대표는 “우리 돼지들은 풀을 좋아한다. 특히 왕고들빼기가 인기 메뉴”라고 설명했다. 돼지들에게 먹이는 풀은 임대표가 산에서 직접 베어온다.
돼지들이 모여 사는 축사는 661㎡(약 200평) 넓이로, 철제 구조물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를 비닐 지붕으로 덮었다. 전체적으로 비닐하우스를 닮은 형태였다. 축사 바닥에서 지붕까지 높이는 3m는 족히 돼 보였다. 덕분에 바깥 자연광이 축사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왔고 바람도 사방으로 잘 통했다.
이곳에서 크는 돼지들은 한 마리당 3.3㎡ 정도의 공간을 차지한다. 돼지들이 좁은 공간에 부대끼며 생활하는 공장식 양돈농가보다 쾌적한 환경을 자랑한다. 임 대표는 “지붕을 덮은 축사에다가 돼지들이 뛰어 노는 ‘운동장’ 면적까지 합치면 전체 1000평이 넘는다”며 “우리 농장은 방목에 가까운 사육을 하고 있어서 돼지들이 느끼는 스트레스가 적다”고 설명했다.
돼지들은 풀 외에도 사과, 양파 등 농업 부산물을 섞어 만든 천연사료를 먹는다. |
▶냄새 안 나는 축사 = 돼지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넓은 환경은 유기농 농장의 중요한 조건이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소위 ‘공장식 축산’과 차이점을 만드는 부분들은 여럿이다.
눈여겨볼 부분은 축사의 ‘바닥’이다. 얼핏 보기엔 그냥 흙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각종 유기물이 깔려있다. 콩깍지, 왕겨, 볏짚 같은 농업 부산물들인데, 이걸 50㎝ 가량 두텁게 깔아놓았다.
이 위에서 돼지들이 먹고 잔다. 더불어 거리낌 없이(?) 배설도 한다. 이 부분이 중요한 포인트. 배설물은 돼지들이 밟고 뭉개면서 바닥에 깔린 유기물과 자연스럽게 뒤섞인다. 그러면서 ‘발효’가 이뤄진다.
임 대표는 “발효 과정에서 호기성 미생물이 생겨나는데, 이게 냄새를 없애고 축사 바닥을 자연정화하는 역할을 한다”며 “일반 돼지농장은 사람이 배설물을 걷어내는데 우리 농장에선 사람손이 들어가질 않는다”고 말했다.
이곳 농장의 돼지들은 한 마리당 3.3㎡의 공간을 차지한다. 밀집 사육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가 적다. |
▶돼지가 먹는 ‘비빔밥’ = 이곳에서 크는 돼지들은 아침에 천연사료를 먹고, 오후엔 풀로 배를 채운다. 새끼 돼지들은 태어나고 90일간 모돈의 젖도 먹는다.
사료는 임 대표가 손수 만든다. 상품가치가 떨어지는 사과와 양파를 비롯해 쌀겨, 염소고기 등 수십가지 농업 부산물을 한데 섞은 것이다. 이런 재료는 주변 농가나 정미소에서 받아온다. 이걸 ‘비빔밥’이라고 부른다.
통상 양돈농가에서는 돼지들에게 곡물 사료를 먹인다. 대개 외국에서 수입하는 것들로 GMO(유전자조작농산물) 옥수수가 들어간다. 곡물 사료를 먹은 돼지들은 빠르게 몸집을 불린다. 태어난 지 6개월이 지나면 중량이 100㎏를 넘어선다. 반면 천연사료를 먹은 임 대표의 돼지들은 1년쯤 지나서야 90㎏ 정도에 다다른다.
생산성 관점에서 보면 수입사료를 먹이는 게 확실히 유리해 보인다. 하지만 임 대표는 “그런 사료에는 GMO 옥수수는 물론이고 항생제, 호르몬제 같은 첨가제까지 들어간다”며 “천연사료를 먹인 돼지들은 불포화지방산이 더 많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몸집은 작아도 시장에서 팔리는 가격은 일반 돼지의 2배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nyan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