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열전]백영민 파크하얏트 서울 총주방장 “요리에 테크닉보다 ‘진심’을 담아야”
하얏트 계열 두 번째 한국인 총주방장 발탁
멘토 지아노 셰프 영향 “진심으로 고객 대해”
‘윤리적 식사’ 위한 지속가능 식재료 사용
내국인 고객에 ‘집중’…강점 발휘할 것
지난 4월 파크 하얏트 서울 총주방장으로 발탁된 백영민 셰프. [파크하얏트 서울 제공] |
[리얼푸드=신소연 기자]하얏트 그룹의 럭셔리 호텔 브랜드인 파크 하얏트 서울이 지난 4월 파격적인 인사를 하면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30대 후반의 젊은 한국인 요리사인 백영민 셰프(36)를 총주방장으로 발탁, 호텔 주방을 모두 맡긴 것이다.
그간 하얏트 계열 호텔에서 한국인 총주방장은 지난 2016년 하얏트 리젠시 제주의 주방을 잠시 맡았던 전관수 셰프가 유일했다. 파크 하얏트와 같은 상위 브랜드 호텔 중에는 아예 없었다. 해외 브랜드 호텔의 보수적인 분위기 탓에 한국 내 사업장이라 해도 내국인에게 주방을 맡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호텔 내부에서 마저도 이번 인사를 예상하지 못했다는 전언이다.
서울 대치동 소재 파크 하얏트 서울 2층에 있는 메인 레스토랑 '코너스톤' [파크 하얏트 제공] |
화제의 중심에 선 백 총주방장은 사실 어렸을 때부터 요리를 하려고 준비했던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며 식재료를 고르고, 요리를 도와드렸던 경험을 즐거운 추억으로 간직한 다정한 아들이었다. 이에 고교 진학도 다른 동료 셰프들처럼 외식학교나 조리학교가 아닌 부모님 뜻에 따라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사촌동생 덕분에 하게 된 특별한 경험으로 본격적인 요리를 시작하게 됐다. 당시 집에 놀러온 사촌 동생에게 어머니가 만들어 놓은 떡볶이를 전자레인지에 데워줬는데, 동생이 매우 맛있게 먹으면서 어떻게 만들었냐고 질문을 쏟아냈다. 그는 순간 희열과 뿌듯함을 느꼈다. 그는 “내가 해준 음식도 아닌데 상대방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니 남이 내 요리를 맛있게 먹으면 얼마나 더 보람되겠냐는 생각을 했다”며 “이후 요리로 꿈을 전향해 방과 후 요리학원에 다니며 셰프의 꿈을 키우게 됐다”고 말했다.
이후 백 총주방장의 요리 세계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해준 사람은 바로 마시밀라노 지아노 셰프다. 지아노 셰프는 지난 2014년 파크 하얏트 서울의 주방을 책임졌던 총주방장이었는데, 유난히 낯을 많이 가리는 그에게 미션을 줬다. 하루에 두 테이블 이상 손님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라는 숙제였다. 처음엔 어색하고 힘들었지만, 점차 익숙해지자 그가 먼저 손님들과 대화를 시작하며 요리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그는 “지아노 셰프는 요리는 현란한 조리 솜씨, 화려한 식재료가 아니라 고객에 대한 진심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소중한 가르침을 주신 분”이라며 “총주방장 진급 소식도 그에게 가장 먼저 알렸다”고 말했다.
ASC 전복 활용해 개발한 '더 테이스트 전복 디너' [파크하얏트 서울 제공] |
그에게 요리란 ‘다양한 식재료를 조화시켜 입으로 느끼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이에 요리할 때 훌륭한 식재료를 찾고, 그 재료의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재료의 특징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신선한 재료 선정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물론, 재료 자체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요리를 완성해 내지 못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백 총주방장은 “기본적이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보니 식재료를 파악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고 말했다.
백 총주방장이 최근 식재료 선정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식재료의 지속가능성이다. 환경을 고려한 식재료를 선택해 고객들에게 ‘윤리적인 식사’를 제공한다면 셰프로서 친환경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서다. 그는 친환경 식재료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위해 지난 2019년 팀원들과 함께 전남 완도 소재 전복 양식 어가를 방문하기도 했다. 그는 “ASC 인증(친환경 양식 국제인증) 전복을 양식하는 과정에 참여해보면서 전복 양식이 바다에 미치는 영향과 양식장 근로자들의 인권 등의 문제를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지론 덕분에 파크 하얏트 서울은 바라문디 생선, 연어, 새우, 전복 등 주로 ASC 인증을 받은 수산물을 사용한다.
파크 하얏트 서울 내 '더 팀버하우스'에 있는 완도 전복 요리. [파크하얏트 서울 제공] |
백 총주방장이 앞으로 만들어 낼 미식의 향연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까. 그는 ‘스토리텔링의 극대화’라고 힘주어 말했다. 파크 하얏트 브랜드 자체가 지역 고유의 문화를 존중하고 장인들의 영감을 받아 음식에 응용하는 등 스토리텔링을 강조하고 있고, 그 역시 음식에 이야기가 담겨야 고객의 머릿 속에 각인되기가 쉽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백 총 주방장은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친 고객들을 위한 힐링과 웰빙을 테마로 한 ‘보타닉 가든(Botanical Garden)’ 콘셉트의 메뉴를 지속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하얏트 그룹이 이례적으로 한국인 총주방장을 임명한 것은 국내 외식시장의 흐름을 빠르게 이해하는 내 능력을 인정한 것”이라며 “변화에 민감한 내국인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요리를 통해 국내 호텔 외식업계를 선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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