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부터 잎까지’ 온전히 활용한 점심밥
[리얼푸드=박준규 기자] “버려진 음식을 찾아내는 데 재미가 붙었지만 반대로 어마어마하게 식품이 낭비되고 있다는 걸 알게됐다. 굉장히 우울한 이야기다.”
캐나다의 그랜트 볼드윈 감독은 ‘먹을래? 먹을래!’라는 다큐멘터리에서 이런 얘길 했습니다. 그는 아내와 함께 반년간 ‘버려진 식품’만 먹고 사는 프로젝트에 도전했습니다. 부부는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약간의 상처가 났다는 ‘사소한’ 이유로 판매되지 못하는 채소, 과일, 가공식품만 찾아서 배를 채웠습니다. 그러면서 무수한 멀쩡한 음식들이 그냥 버려진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안전ㆍ위생ㆍ영양적으로 큰 문제가 없는 먹거리들이 지구 곳곳에서 버려진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숫자가 이런 상황을 보여줍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해마다 전세계에서 생산되는 음식물의 30%(약 13억t)이 버려진다고 추정합니다. 우리돈으로 1000조원에 달하는 양입니다.
다큐멘터리 '먹을래? 먹을래!' 속 장면.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음식물들이 가차없이 버려지는 현실을 꼬집는 작품이다. |
돈도 돈이지만, 음식 폐기물은 지구 환경에 부담을 줍니다. 토지, 물이 낭비되고 지구를 병들게 하는 메탄가스도 배출합니다. 환경 NGO, 시민 단체들은 각국 정부나 유통업체들이 버려지는 음식물을 줄이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소비자 개개인의 ‘각성’도 강조합니다. 각자의 가정과 주방에서 음식물을 덜 버리는 실천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서울시는 2018 서울 식문화 혁신 주간을 맞이해 은평구 서울혁신파크에서 ‘지구를 살리는 밥상’이란 제목으로 쿠킹 세미나를 열고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일회용 폐기물을 줄이는데 이바지하는 식단 5가지를 소개하는 행사입니다.
지난 6일에는 서울아이쿱생협이 ‘줄이는 즐거움, 뿌리부터 잎까지’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습니다. 이선임 서울아이쿱생협 이사장은 “농산물 껍찔 째 이용하고 현미처럼 도정하지 않은 것들을 먹으라고 권유하고 있는데 이게 버리는 음식물을 줄이면서도 건강에도 더 좋다는 걸 강조한다”며 “사람들은 각자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이야기에는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를 찾은 시민들은 ‘뿌리부터 잎까지’ 온전히 활용한 점심밥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현미밥과 한우 들깨 토란탕, 갈치 고구마줄기 조림, 고구마 맛탕, 사과겉절이 등인데 소박하지만 낭비없는 메뉴들입니다.
식사를 준비한 김선영 아이쿱생협 이사는 “백미 대신 현미를 사용하고 미나리도 손질할 필요가 없는 연한 것을 골라 썼다. 오늘 50인분의 식사를 만들었는 데 사과씨 정도를 제외하고는 조리 과정에서 나온 음식물이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육수 내는데 쓴 멸치와 무도 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조림 재료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이날 점심밥 콘셉트를 설명듣고 식사를 한 시민들은 깨끗하게 그릇을 비웠습니다. 시민 김명진(48) 씨는 “집에서든 식당에서든 재료를 손질하고 조리하고 먹는 과정 중에 버리는 부분이 꽤나 나오지 않느냐”며 “고구마나 사과의 껍질을 벗기지 않아도 맛있고 영양분도 많을텐데 사소한 노력이라도 실천해볼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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