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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르륵이 당신을 살린다’ 단식 열풍, 그 비밀은?

[리얼푸드=육성연 기자]“끼니 거르면 몸 망가진다”, “한국인은 밥심”처럼 당연하게 여겨왔던 말들도 최근에는 의구심이 든다. 단식 열풍이 불면서부터다.


하루 세 끼는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사실 1일 3식을 시작한 시기는 오래되지 않았다. 조선 시대만 해도 오후 간식만 있었을 뿐 식사는 하루에 두 끼였다. 하지만 산업혁명후 기업이 노동자에게 일정한 점심시간을 주면서 세 끼가 시작됐다. 한국의 경우엔 대략 50년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이제 현대인은 세 끼에 간식, 야식까지 먹는다. ‘영양과잉의 시대’로 넘어와서일까. 굶는 효과를 강조하는 간헐적 단식은 단순한 다이어트법을 넘어 장수, 각종 질환을 예방해주는 식이요법으로 소개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관련 논문도 수백건이다. 미국에서는 하나의 건강법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최근 단식 열풍이 일어난 한국도 ‘잘 먹어야 한다’와 ‘굶어야 한다’사이에서 고민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단식, 과연 건강을 지켜주는 혁신적 식이요법이 될 수 있는걸까. 

▶노화와 대사질환 예방ㆍ다이어트…공복력의 효과?=단식 효과를 강조하는 이들은 오토파지(autophagy) 개념을 먼저 설명한다. 우리 몸은 영양소 공급이 중단될 때 세포들이 생존을 위해서 방치된 단백질 쓰레기를 에너지로 재활용한다. 이 작용이 바로 오토파지다. 즉 간헐적 단식 또는 칼로리제한식(20~ 40%)를 할 때 오토파지가 진행되며, 그 결과 세포는 건강해지고 자연치유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지난 2016년 일본의 오스미 교수는 이와 관련된 유전자를 발견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월간 ‘채식물결’ 발행인 이광조 식품영양학박사는 “죽은 세포를 잡아먹는 대식세포는 영양이 과도할 때 작용을 잘 하지 않는다”며 “죽은 세포들이 방치되면 다양한 염증질환과 조직 기능이 약화돼 노화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오토파지가 대사질환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연구도 보고되고 있다. 심장근육세포에 포도당 공급이 제한되면 오토파지가 진행돼 심혈관질환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1991)가 있다. 미국 남캘리포니아대학 장수연구소의 발터 롱고 소장는 쥐 실험을 통해 “주로 세포 성장을 돕는 IGF-1(간에서 생산되는 호르몬)은 그 수치가 떨어지면 손상된 조직의 세포 개선을 돕는데, 단식이 IGF-1 수치를 낮춰준다”며 “이로 인해 당뇨나 암 위험이 줄어든다”고 설명한다.


노화와 관련된 연구도 활발하다. 일본 가나자와 의과대 고야 다이스케 교수팀은 쥐 실험결과, 매일 공복을 느끼면 장수 유전자로 알려진 시르투인이 활성화돼 노화가 늦춰진다고 결론을 내렸다. 공복이 뇌의 노화를 막아준다는 미국 국립노화연구소의 논문(2006), 단식이 알츠하이머 발병을 억제할 수 있다며 영국 가디언에 실렸던 논문(2012)도 있다. BMC 보완대체의학 저널에 발표된 논문은 절식(節食)으로 생체 리듬의 균형을 재조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단식이 몸을 재정비하는 ‘조정과정’이라는 설명이다. 

단식은 다이어트법으로도 유행을 끌고 있다. 탄수화물 제한과 칼로리 계산에 지친 이들은 ‘무엇을 먹느냐’보다 ‘언제 먹느냐’에 초점을 맞춘 간헐적 단식의 매력에 푹 빠져있다. 16시간 단식과 8시간 식사라는 16:8 법칙은 최근 가장 핫한 다이어트로 떠올랐다. 간헐적 단식이 다이어트에 효과적이라는 근거는 12시간 공복 상태부터 소진된 포도당 대신 지방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지방 대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대한지방흡입학회 상임이사이자 신촌 365mc병원 대표원장직을 맡고 있는 김정은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다이어트 효과가 있을 수 있다”라고 하면서도 “꼭 단식이 아니더라도 필요 에너지보다 훨씬 적게 섭취량을 유지하면 포도당 소진 후 체지방 연소라는 과정은 진행된다”고 전했다. 


▶단식, 내가 해도 괜찮을까?=간헐적 다이어트도 주의사항은 있다. 김정은 전문의는 “어떤 다이어트도 섭취칼로리를 줄이면 기초대사량이 떨어질 수 밖에 없으므로 이를 막기 위해서는 운동과 일상 활동량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단식으로 인한 보상심리로 폭식을 할 가능성이높아진다고 우려했다.


건강적인 측면에서 의학계 반응은 어떠할까. 관련 연구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장기간 효과를 장담할 수 있는 데이터가 아직 부족하기 때문에 속단하거나 맹신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양소 결핍에 대한 문제도 제기됐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장기간 단식으로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할 수 없어 빈혈, 탈모, 월경불순 등 영양결핍성 질환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결식으로 인한 불규칙적인 식사로 역류성 식도염, 위염 등의 소화기질환 위험도 언급됐다. 또한 성장기 어린이나 가임기 여성 및 임산부, 당뇨병환자, 노인층은 자제해야 한다. 

▶‘진짜 배고픔’ㆍ‘소식’의 가치=단식의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의견이 엇갈린다. 하지만 단식은 영양과잉의 현대인에게 음식 통제력을 전하는 시대적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 오토파지의 효과는 거꾸로 현대인의 영양과잉 상태가 세포내 쓰레기를 증가시켜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공복력을 강조하는 이들은 쉴새 없이 먹는 것을 중단하고, 배가 고플 때 먹으며 소식하는 것에 초첨을 맞추라고 말한다. 사실 허기는 배가 고플때만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의학전문가들에 따르면 혈당이 떨어지거나 과음 후, 스트레스 또는 우울과 공허감 등의 심리 요인에서도 배고픔이 느껴진다. 자극적인 음식이 당기고, 시간이 지나가면 사라지는 ‘가짜 배고픔’이다. 반면 ‘진짜 배고픔’은 꼬르륵 소리가 날 정도로 느껴지는 허기다.

먹기 바빴던 한국 사회에 불어닥친 단식 열풍, 적어도 ‘소식’과 ‘배고플 때 먹으라’는 건강법을 다시 일깨워주는 가치는 있다. 현재 한 달째 간헐적 단식중이라는 박모씨(여ㆍ41)는 단식후 먹는 한 끼는 확실히 이전과 다르다고 말한다. 박 씨는 “자극적인 음식만 좋아했는데 단식 후 배고파서 먹는 채소는 고유의 맛이 느껴져 맛있다”며 “아무거나 먹지 않고 배가 고팠을 때 먹는 습관도 갖게 됐다”고 전했다. 

gorgeous@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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