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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라치와 사진의 폭력성

1997년 8월 30일 파리의 어느 지하도로에서 영국의 전(前) 왕세자비 다이애나 스펜서가 사망했다. 사인은 과속으로 인한 교통사고였다. 인근 병원으로 이송된 다이애나는 응급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숨을 거두었다. 그해 그녀의 나이는 겨우 서른일곱 살이었다.

파파라치와 사진의 폭력성

사고 현장의 끔찍함을 보여주는 차량의 상태

당시 다이애나와 그녀의 애인 이집트의 재벌 2세 모디 알 파에드는 황색언론의 집중조명을 받았다. 그날 저녁에도 어김없이 몰려드는 파파라치를 따돌리고자 다이애나를 태운 자동차는 파리 시내를 질주했고, 결국 터널 벽을 들이박는 참사로 이어졌다. 그녀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실질적인 용의자를 지목했다. 바로 파파라치들이었다.

 

사고 현장에 당도했을 때 파파라치들이 가장 먼저 했던 행동은 죽어가는 다이애나를 향해 플래시 세례를 퍼붓는 것이었다. 이러한 비윤리적인 행태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스마트폰으로 모두가 사진사가 된 시대, 공공성은 어디에

다이애나의 죽음은 윤리적 선을 넘은 사진 찍기의 해악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비단 파파라치만의 문제는 아니다. 아사 직전의 아프리카 소녀와 그녀가 죽기를 기다리는 독수리를 필름에 담은 카빈 카터는 1994년 퓰리처상의 영예를 안았으나 윤리적 비난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했다.

파파라치와 사진의 폭력성

‘찍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딜레마는 여전히 논란거리이다. 타인의 사생활, 얼굴이나 신체의 일부분을 촬영하다가 민·형사상 문제로 번지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더욱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일부 미디어 종사자에게 국한되었던 문제가 공공윤리의 차원으로 넘어왔다.

 

일찍이 수전 손택은 사진의 폭력성을 지적한 바 있다. 뷰파인더 너머로 대상을 바라보는 사진가는 이미지 사냥꾼에 가깝다. 피사체를 발견하고, 초점을 맞추며, 셔터를 누르는 일련의 과정은 사냥감을 저격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이미지 헌팅의 표적이 사람일 경우, 대상의 비인간화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손택은 시선의 욕망에 상응하는 윤리적 책임을 사진가에게 요구한다. 대상을 프레임 안에 가둔다는 점에서 모든 사진은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 다만 상대의 동의하에서 사진 찍기는 윤리적 책임을 면할 수 있을 뿐이다.

 

타인의 사생활에 거리낌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파파라치가 비난을 받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유명하다는 것이 곧 사회적 샌드백이 된다는 뜻은 아닌 까닭에, 유명인이라고 해서 사진적 폭력을 마땅히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김연아의 사진이 말하는 것

일전 한 온라인 연예지가 빙상스타 김연아의 열애설을 터뜨리며 이슈의 물살을 탔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톱스타의 사적인 비밀이었다. 그들은 ‘독자가 그것을 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밀착과 잠복행위를 정당화했다. 또한 자신들이 찍은 사진이 공공연한 장소에서 누구나 찍을 수 있을 법한 것들이라면서 사생활의 침해를 부인했다.

파파라치와 사진의 폭력성

그들이 어떠한 구실을 붙인다고 하더라도, 또 그것이 현실적으로 용인된다 하더라도, 엄연한 이미지의 폭력이다. 김연아와 그녀의 애인이 찍힌 사진을 들여다보면, 사진을 찍는 자와 찍히는 자 사이의 일방적인 관계를 읽을 수 있다. 노이즈가 서린, 촬영을 전혀 의식하지 못한 김연아와 남자 친구의 모습은 사진이 야심한 밤에 몰래 촬영한 것임을 알려준다. 안정적인 프레이밍은 촬영이 철저하게 계획된 이미지 헌팅이었음을 방증한다.

 

오히려 사진은 피사체보다 촬영자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 사진에 찍힌 것은 단지 대상의 겉모습이지만, 뷰 파인더 너머로 도사리고 있는 것은 타인을 먹잇감으로 삼는 미디어의 시선이다. 더욱이 그들이 김연아의 사적 영역을 얼마나 폭력적으로 다루었는지 생각해본다면, 기사에서 보여준 김연아를 향하던 다정다감한 어휘는 오히려 읽는 이로 하여금 소름끼치게 하는 것이었다.

필자 노진구 (블로그,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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