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환율 조작국 지정, 너무 걱정할 필요 없으니 정부를 믿자
현지 시각으로 8월 5일, 우리 시각으로 6일 새벽,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공식 지정했다. 지난 1988년 대만과 우리나라, 1992년 중국에 이어 역사상 네 번째로 중국이 다시 환율조작국에 지정된 것이다. 거의 30년 만에 시행된 미국 재무부의 환율조작국 지정으로 인해 시장에는 많은 혼란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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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번 환율조작국 지정은 미국이 새로이 제정되어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법률이 아닌, 과거의 거의 사문화된 법률을 끌어와 시행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면밀한 영향의 분석이 필요하다. 그럼 지금부터 간단히 알아보자.
무슨 근거로, 어떻게 지정된 것인가?
미국이 무역 상대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 수 있는 법률적 근거는 지난 1988년 제정된 ‘종합무역법’과 오바마 정부 시절이었던 지난 2015년 제정된 ‘교역촉진법’이 있다. 우리나라는 이 교역촉진법에 따라 지난 2016년부터 미국에 의해 환율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되어 온 바 있다.
교역촉진법에 따라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나라는 한국/중국/일본/독일/인도/멕시코 등이다. 거의 미국에 수출하는 모든 나라가 포함된다. 교역촉진법에 따른 환율조작국 지정 조건은 아래와 같다.
- 대미 무역흑자 200억 달러 이상
- GDP 대비 경상흑자 3% 이상
- GDP 대비 달러 매수 2% 이상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2016년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나라 중 단 1개 국가만 빼고 나머지 국가는 모두 셋 중 두 가지가 해당한다. 한 국가는 1번 하나만 해당되는데, 공교롭게도 이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은 대미 무역흑자가 연간 2,000–3,000천억 달러에 육박하지만 GDP 대비 경상흑자는 2018년 기준 0.4%에 불과하다. 그리고 중국은 달러를 매수하지만 매도도 많이 하는 나라라, 2016년에는 GDP 대비 5.1% 상당의 달러를 매도한 나라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떻게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을까?
이는 미국이 거의 사문화된 지난 1988년의 종합무역법 규정을 끌어왔기 때문이다. 종합무역법은 교역촉진법과는 달리 환율조작국 지정 기준이 매우 두루뭉술하다. 즉 미국이 보기에 경상 흑자가 많고 환율에 정부가 자주 개입하는 것처럼 보이면 바로 지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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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규정은 그 애매모호한 기준 때문에 미국이 앞장서서 자유무역 질서를 해친다는 비판을 받아 왔고, 때문에 오바마 정부 시절 그 요건을 구체화한 교역촉진법을 제정했다. 트럼프가 이를 무시했을 뿐이다. 일부 전문가는 작년부터 트럼프가 종합무역법을 끌고 올 수도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나?
이 시점에서 종합무역법이 애매한 점은, 미국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조차 제대로 정해 두지 않은 법률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교역촉진법상 환율조작국 지정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어쩔 수 없이 대중국 압박 수단으로 종합무역법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기본적으로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이후에는, 1년의 유예 기간을 갖고 IMF의 중재 또는 양자 간의 직접적인 환율 협의를 갖는다. 이후에도 미국이 만족스러울 정도의 시정 조치가 발동되지 않으면 제재가 시작된다.
문제는 종합무역법상 1년의 유예 기간 경과 후 구체적인 제재 조치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미국이 필요한 조치’를 어떻게든 취할 수 있다는 것인데, 트럼프 행정부는 우선 규정이 이미 마련돼 있는 교역촉진법상의 제재 규정을 준용해 중국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교역촉진법상의 환율조작국 제재 내용은 아래와 같다.
- 해당국에 투자하는 미국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 중단
- 해당국 기업의 미국 조달시장 진출 금지
- IMF를 통한 환율정책 시정 압박
- 무역정책 관련 시정조치 요구
미국의 기업들은 해외 투자 시 해외투자공사에서 자금 지원을 받는 경우가 다대하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중국의 많은 기업은 미국에 진출해 미국 시장에서 자본을 조달해서 미국의 기업을 인수하거나 투자하곤 한다. 이 양자 간의 흐름이 쌍방으로 모두 두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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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경우 중국 기업의 달러 조달 및 미국 기업의 위안화 조달 모두가 막히게 됨으로써 위안화 가치 절하가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는 문제가 추가적으로 발생한다. 물론 이는 자본 유출로 인한 절하이긴 하지만.
때문에 미국이 지금 당장 중국에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미중 무역 협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1년이 아니라 10년을 준들 환율 협상 테이블이 만들어질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세계 질서를 앞장서서 파괴하는 트럼프답게 또 하나의 불확실성을 일으킨 것이다. 이런 불확실성은 미국과 중국에 대한 교역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도 당연히 영향을 끼치게 된다.
우리나라에게는 위기도 되고 기회도 된다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무려 30년 전 시행됐던, 지금은 사문화된 규정을 끌어와서 억지춘향이스러운 일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 중국 이외 현재 관찰대상국의 추가 환율조작국 지정
- 위안화의 급격한 가치 절하로 인한 중국 증시 폭락 및 자본 손실
- 중국에서의 자본 유출로 인한 중국 기업 크레딧 문제의 부각
- 중국 기업의 미국 투자 둔화 및 그 반대 케이스
현재 우리나라의 아킬레스건인 글로벌 교역량 축소의 문제는 트럼프의 2차 관세 부과 이전까지는 약간의 시간이 있다는 점에서 다행으로 볼 수 있다. 1차 관세 부과와는 달리 이번 관세는 미국 내 인플레이션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소비재가 주로 포진해 있기 때문에 트럼프 역시 국내 사정에 따라 이전과 같이 관세 부과를 연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번의 경우가 우리가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인데 아직은 가능성이 작다고 본다. 문재인 정부의 통상교섭 역량을 여태껏 확인한 결과 대미 통상교섭은 성공적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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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최근 문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한 것 때문에 많은 분께서 실망하셨을 것으로 생각된다. 허나 이는 대북 메시지가 너무 급하게 돌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에서 쓴 글일 뿐 정부의 교섭역량에 대해 의심하는 바는 아니다.
이럴 때 우리는 여태껏 트럼프 정부를 상대해 왔던 통상교섭 역량을 최대한 활용해서 더욱 공격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바로 4번으로 인해 발생한 빈틈을 우리가 잘 공략하면 오히려 이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의 경제적 우호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할 수 있기도 하다.
나쁜 이벤트는 언제나 양날의 칼과 같다. 위기인 듯 보이지만 기회도 늘 제공한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경제적 문제든 안보적 문제든 우리가 미국의 확실한 우방임을 인식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한일 갈등의 중요한 구성요소 중 하나가 대미 관계라는 사실을 들여다봤을 때 미국과의 관계 구축은 한일 갈등을 우리에게 유리하게 풀어나갈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늘 대미 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우리는 여태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다. 대통령과 정부를 믿고 지켜보도록 하자.
필자 김현성 (페이스북)
직장인 5년차 주니어. 경제와 국제정세, 금융시장과 원자재에 관한 글을 주로 씁니다. 법률과 예술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