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이 야구단을 인수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다
"소비보다 고객시간을 빼앗아라."
정용진 부회장이 2014년 내놓은 말이다. 더이상 대형마트는 싸고 좋은 품질만으로 승부를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마트의 경쟁자는 건너편 롯데마트가 아니라, 놀이공원과 야구장이라고 직접 말하기도 했다.
무슨 말이냐면, 전통적인 대형마트의 형태로는 성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더 큰 성장을 위해서는 대형마트로 장 보러 오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외의 영역에서도 고객을 유치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1. 전통적인 대형마트에서 신경 쓰지 못한 대상은?
A. 남성
장 보러 마트에 가는 것은 기혼 여성의 몫이었다. 적어도 전근대적 사회에서는 통용되는 개념이다. 문제는 맞벌이가 당연하고, 맞벌이 가정에서 자란 세대가 기혼가정을 꾸리고 사는 2010년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마트가 기혼 여성에만 포커싱을 둔다는 것은 마케팅 관점에서 대단히 틀려먹은 타게팅이었다.
따라서, 대형마트에 오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휴게실에 있던 남성을 적극적인 쇼퍼로 끌어내기 위해 일렉트로 마트를 꺼냈다. 아내가 장을 보는 동안 졸졸 따라다니다가 장보기를 마치자마자 집으로 잽싸게 가는 것이 아니라, 남편도 적극적으로 가족을 데리고 일렉트로마트에 체류하며 전자제품을 소비하게끔 유도하자는 발상이었다.
B. 애견인구
2010년대 접어들며 반려동물 인구는 더욱 가열차게 늘어났다. 이제는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마트를 못 가는 게 아니라, 강아지를 맡길 곳이 없어서 마트를 못 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래서 이마트는 반려동물의 생애주기에 맞춰 토탈 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몰리스펫샵’을 만들었다. 데려온 반려동물을 맡기고 장을 보러 다닐 수도 있고, 유치원처럼 강아지를 교육시키는 목적으로 데려올 수도 있다.
애견인이 재빠르게 장 보고 후딱 집에 가는 게 아니라, 강아지와 함께 재미있게 놀면서 쇼핑을 길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모두 매장에서의 체류 시간을 늘리는 획기적인 접근이다.
C. 초저가 상품
이커머스의 등장 이후 대형마트가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최저가 경쟁에서 한참 밀렸기 때문이다. 스마트폰 소비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커머스 앱을 켜고 최저가와 배송비, 배송 예정 시간을 검색하여 주문한다. 이마트에서 사는 게 제일 싸지도, 그렇다고 비싸지도 않은 애매한 포지션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노브랜드가 등장했다. 초저가, 브랜드 없이 오로지 자체 생산하는 제품으로 승부했다. 여러 중소기업의 훌륭한 제품을 알아보고 ‘노브랜드’라는 이마트 브랜드를 입혔다. 중소기업에게는 고객 노출 기회를, 이마트에게는 최저가 제품 제공의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사치재가 아닌 소모품은 노브랜드 상품을 써도 충분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이마트의 노브랜드 제품에 손을 뻗게 되었다.
2. 정답은 체류 시간에 있었다.
이마트는 단 하나에 집중했다. 바로 ‘체류 시간’이다. ‘몰링 전략’이라는 말이 있다.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체류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품 판매 접촉점이 늘어나 한 개라도 더 팔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숫자로도 뒷받침되는 법칙이다. (이 법칙은 온라인에서 대형 포털 서비스에서 수많은 무료 서비스를 푸는 방식으로 적용된다. 한 사이트에 최대한 오래 머물며 유료 결제를 유도하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정용진은 스타필드로 승부수를 띄웠다. 2016년 개장한 스타필드하남은 기존의 백화점이나 마트와 달리 쇼핑의 길목에서 식사·체험·스포츠·게임·영화·스파·휴식 등을 모두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매장은 더욱 커졌고, 깊은 개방감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 간 부딪침이 적고, 더 많이 돌아다녀야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꾸며졌다. 평균 체류 시간은 5.5시간으로, 기존 이마트 체류 시간에 비해 2배가 늘어났다. 정확히 체류 시간에 포커싱한 쇼핑몰이 탄생한 것이다.
이제는 스타필드가 입점한다는 소문이 돌면 주변 집값이 오를 정도로 지역 인프라 관점에서도 매우 각광받고 있다. 이는 스타필드가 단순 쇼핑 공간이 아니라 체험의 공간이 되었엄을 방증한다.
3. 주말 쇼핑 시간을 방해하는 최대의 적은 누구인가?
그러나 스타필드로는 부족했다. 주말, 한참 쇼핑해야 하는 시간에 사람들은 어디로 가 있는가? 놀이공원과 야구장에 있다. 영국 같으면 축구장, 미국이라면 농구장이겠지만 한국은 야구장이다.
2010년대 들어 변경된 규칙에 따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오후 1시부터 야구를 시작한다. 평균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며, 이동 시간까지 포함하면 사람들은 하루 반나절을 모두 야구라는 엔터테인먼트에 쏟아야 한다. 게다가 야구장에서 사 먹는 음식이나 주차료, 굿즈 구매 비용, 관람석 비용 등을 생각하면 십수 만원이 하루에 빠져나간다.
쇼핑센터 입장에서 야구장이 주말 최대의 적인 이유다. 가처분 소득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야구장에 써 버리는 돈이 있다면 그만큼 마트에 쓰는 돈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용진은 야구단을 인수하고, 추신수를 영입했다. 이제 모든 야구인들의 시선이 인천을 향할 것이다. 주말 내내 SSG, 이마트, 신세계, 랜더스라는 말이 입에서 돌고 눈에서 머물 것이다.
마찬가지로 에버랜드, 롯데월드 등 놀이공원에서 쓰는 시간 또한 크다. 놀이공원의 휴일 이용 수요 또한 주말에 장 보는 시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역시 이마트의 최대 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정용진은 화성국제테마파크를 통해 놀이공원에 쏟는 시간마저도 뺏어 오려고 노력 중이다. 작년 11월 화성국제테마파크 비전 선포식에서 다음과 같이 운영 의지를 밝힌 바 있다.
"단순히 상품만 팔아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 관광객들이 오랜 시간 머물며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테마파크를 만들겠다."
얼마나 야구장에서 놀게 만들지, 테마파크에서 시간을 보내게 만들지 기대가 되는 부분이다.
필자 글쓰는 워커비 (브런치)
금융회사에서 모바일서비스 기획, 브랜드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익숙한 대화법으로 딱딱하지 않게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