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는 대화법
자존감 상담을 신청하는 한○○ 씨(※ 실제 드라마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 출처: JTBC |
자존감 상담을 신청하는 분 중에는 본인이 아니라 본인의 자식을 상담해달라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지금까지 대여섯 번 그런 상담을 한 것 같은데, 그때 저는 내담자뿐 아니라 상담을 신청하신 부모님도 함께 오라고 요청을 드립니다. 사회 경험이 적은 아이의 경우 그 아이의 자존감이 낮다면 부모님의 영향이 거의 다이기 때문이죠.
상담은 주로 부모님이 신청하고 부모님과 함께 상담받는 분이 옵니다. 두 시간 중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은 내담자와 상담하고, 30분 정도는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부모 입장에서는 상담 후 자식이 어떤 상태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처럼 보이겠지만 저는 아이가 이러이러한 상태니 어떻게 해달라는 당부를 하는 시간으로 사용합니다.
오늘은 그렇게 부모님들께 당부했던 것과 관련해 여러분이 아이를 키울 때 중요한 내용을 전달해드립니다. 단순히 아이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야기니 천천히 읽어주세요!
1. 아이의 욕구나 감정에 관심이 없는 부모
아마도 부모님의 바람은 아이가 자기 할 일 열심히 하고, 자기 꿈을 찾아서, 자기 주도적으로 삶을 이끌어나가는 것일 겁니다. 역설적이게도 양육 태도는 이 바람과 역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을 먹느냐부터 입는 옷, 학원의 선택, 하는 공부, 어떤 대학 어떤 학과를 가는지 등을 부모님이 모두 결정해버립니다. 대략 다음과 같은 상황이 일반적이겠지요.
아이: 나 코트 입고 나갈래!
부모: 얘는,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니. 밖이 너무 추우니까 두꺼운 패딩 입고 나가!
아이: 알았어요…
“얘는 밖이 얼마나 추운데!”(※ 실제 드라마 대사와는 무관합니다) / 출처: JTBC |
아주 평범하고 별 의미 없는 일상적인 대화처럼 보입니다. 오늘도 한 다섯 번은 겪었을 그런 대화죠. 그런데 질문, 아이가 왜 코트를 입고 싶었을까요? 궁금하긴 하신가요? 만약 여러분의 아이가 자존감이 낮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와 같은 질문에 여러분은 답을 못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애초에 이와 관련한 궁금증이 별로 없으셨을 테니까요. 그리고 대다수 상황이 이 대화처럼 흘러갈 것이라 봅니다.
중요한 건 아이가 감기에 걸리지 않는 것이지, 코트를 입고 싶은지 패딩을 입고 싶은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것은 부모님이 궁금해하지 않으면 아이도 결국 궁금해하지 않게 된다는 점입니다. 아이가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내비쳐도 나를 가장 사랑해주고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 관심을 두지 않고 ‘존중’해주지 않으니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알아채는 법을, 알아내더라도 존중하는 법을 배우지 못합니다.
자존감의 의미는 ‘자아를 존중하는 감정’입니다. 여기서 자아를 개인의 욕구, 감정이라고 본다면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귀중하게 다루는 것이 자존감이 높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아주 많이 쌓이면 아이는 많은 결정을 부모나 남에게 위임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어차피 주장을 해봐야 들어주지 않고 부정적인 판단을 받는 경험을 하다 보니 의견을 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죠. 그래서 아이는 주체적인 삶이 아닌 우연에 의한, 주위의 평가나 판단에 의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삶의 사소한 선택부터 권한이 좌절된 아이들은 당연하게도 중요한 선택 역시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내가 이걸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어떤 결과가 올지 예상이 안 되니까요. 내가 생각해서 결정하면 부정적인 피드백이 온다는 건 확실했던 경험이 있기에, 늘 선택 앞에서 두려움에 떨기도 합니다. 이런 아이의 모습을 보고 부모님은 또다시 결정해주기를 반복하는 악순환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출처: JTBC |
2. 왜 그렇게 키우는 걸까?
일반적으로는 여러분도 그런 양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문제의식이 없다면, 보고 듣고 배운 것 그대로 행동하기 마련입니다. 아주 어렸을 적 두뇌가 리트머스지 같은 상태일 때 받은 양육 방식을 어른이 되었을 때 나의 자식에게도 활용하는 것이죠.
아이는 미숙한 존재고, 경험을 많이 한 내가 대신 판단하고 결정에 따르게 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전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양육 태도가 이와 같다는 생각이 들어 씁쓸합니다. 반대로 부모님의 관심을 받지 못한 것 때문에 반대급부로 아이에게 지나친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 아이는 부족함 없이 키울 거야!
이와 더불어 주위 부모들이 관리하고, 관리하고, 또 관리하며 열심히 노력해 아이의 성과가 나타나는 걸 보면 이 대신 결정의 유혹은 더 강화됩니다.
여러분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알았고, 많은 것을 해줘야 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이 글 역시 어떻게 보면 여러분의 불안과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이 될 수도 있겠지요. 과거 우리 부모님은 수많은 양육 서적, 방송, 유튜브 정보 등을 보고 키운 게 아님에도 우리들은 어찌어찌 자랐지만 지금은 그렇게 키울 수가 없습니다. 내가 가만히 있어도 정보가 내 눈에 들어오고 나는 늘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이렇게 해줘야 할 것들이 늘어난 상황에서 부모님은 죄책감을 느끼기가 쉽고, 더 많은 것을 ‘대신해주는 것’에 집중하게 됩니다. 여기서 철저히 소외되는 것은 아이들이죠. 아이는 그것을 선택한 적도, 원한 적도 없었는데 말이죠. 나중에 자식이 ‘왜 나한테 신경 안 써줬어’라며 원망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들지 모르나, 더 큰 원망은 왜 나를 주체적으로 살 수 없게 만들었냐는 원망이 아닐까요?
출처: JTBC |
3. 어떻게 대화할까?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여러분이 아이에게 관심이 없다거나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이를 키움에 있어 방향을 잘 잡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아이가 진정으로 자율성 있게 자라길 바란다면 말이죠. 판단은 아이가 먼저 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시행착오를 겪게 하도록 합시다.
아이가 시행착오를 겪지 않는다는 것은 이 아이가 면역력을 하나도 키우지 않고 세상에 나가도록 하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세상이 아무런 세균이 없는 곳이라면, 이렇게 시행착오를 겪지 않게 키워도 되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죠. 아이는 분명 좌절하고, 슬퍼하고, 힘들어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딛고 면역력을 키우고 살아나갈 것입니다.
불안하겠지만 여러분 역시 그렇게 자랐고, 그랬기에 멘탈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물론 너무 극심한 상처는 피하는 게 좋겠지만요. 기존의 대화를 이렇게 바꿔봅시다.
아이: 나 코트 입고 나갈래!
부모: (‘얘는,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그러니’ 하는 생각을 꾹 참고!) 코트 입고 나가고 싶구나? 왜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 오늘 뉴스 보니까 날씨가 그렇게 춥지 않대, 그리고 친구들도 비슷하게 입고 올 거라 나도 맞춰 입으려고.
부모: (여기서도 평가하지 않기) 아, 뉴스 보고 그렇게 생각했구나? 그렇게 비슷하게 입으면 친구들이랑 동질감도 느끼겠다. (공감&존중) 그래도 만약에 추우면 집에 들러서 패딩 입고 나가. 내가 거실에 꺼내 놓을게. (완충 역할)
아이 : 알았어요!
아이의 선택에 판단과 표현을 꾹 참기로 합시다. 그리고 아이의 선택에 질문을 합시다. ‘이유가 뭐니?’ 하고요. 그리고 아이 입장에서 납득해봅시다. 아이의 판단을 존중해봅시다.
들어보니 아이도 그렇게 선택을 한 이유가 있군요. 이 질문을 통해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명확히 했고(판단에 대한 존중, 친구들과 동질감을 느끼고 싶음), 부모는 아이의 욕구를 존중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기존에는 아이의 욕구도 드러나지 않았고, 그러니 존중도 불가능하며, 여기엔 오직 부모님의 판단과 결정만이 있었죠.
물론 아이의 판단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부모님의 역할은 판단과 결정이 아니고 틀림, 실패, 좌절에 대한 완충지대 역할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혹시나 추우면 다시 집에 들어와서 입도록 꺼내 놓겠다’고 대안을 제시하죠. 아이가 기어이 코트를 입고 나가서 감기가 걸렸다면, 다음에는 스스로가 판단할 것입니다. 이 날씨에는 곧 죽어도 패딩이구나 하고 말이죠.
그렇게 판단과 대신 결정을 참으면 부모님이 결정해주지 않아도 알아서 옳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부모님은 손을 뻗으면 잡아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입니다. 앞서 자기가 결정하고 손을 붙잡고 데려가는 게 아니고요.
출처: SBS |
좀 되긴 했지만 이상적인 부모님의 역할을 배울 수 있는 방송이 있습니다. 2015년 10월 28일 영재발굴단 ‘청각장애 부부의 보석 같은 아들 ‘화학 소년’ 신희웅 군’ 편입니다. 화학을 좋아하는 신희웅 군의 부모님에게는 청각장애가 있습니다. 희웅 군의 부모는 아들의 입 모양을 보며 의사소통을 합니다.
아이가 책을 읽으면 그 내용을 부모님께 설명하는데, 부모는 30분 동안이나 아이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집중합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제가 잘 안 들리기도 하지만 희웅이 말을 더 귀담아듣기 위해서고,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보니까 잘 들어주기라도 해줘야죠.”라고 답했습니다.
희웅 군의 영재성을 평가해보니 130점부터 최우수 영재 수준인데 138점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또 다른 시험에서는 부모의 양육 태도 점수도 살펴보았는데 엄마는 100점이 나오고 아빠는 95점이 나왔습니다. 이는 상위 0.1%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하더군요. 이 점수에 해당하는 사람은 아이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며 따뜻한 느낌을 준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할 수 있습니다. 아이를 존중하겠다는 태도와 인내심만 있다면요. 만약 여러분의 자존감이 낮아 아이에게도 영향을 준다는 판단이 든다면, 자존감에 대해 공부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스스로를 존중하는 사람이 주위 사람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멘탈경험디자인 MUX 대표. 서울대학교에서 심리학 전공. 팟캐스트 '심리학 X' 진행. 심리학에 관한 다양한 경험을 디자인해 제공합니다. 책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