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멤버 리멤버: 2018년 세계를 바꾼 여성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양성평등 세계관이 21세기 이후 적극적으로 확산되면서 우리 세상의 변화를 주도한 많은 부분이 여성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역시나 FT답게 연말 특집으로 불평등과 부조리에 맞서 싸운 우리 시대의 여성들에 대한 시리즈를 기획했다. 이 사람들을 앞으로 잘 기억해두자. 이들은 누구이며, 과연 어떻게 세상을 바꾸려 노력하는가?
‘침묵의 댐을 무너트리자’ Xianzi
중국의 미투 운동은 그 뒤늦은 시작과 공산당의 철저한 검열에도 그 열기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에 불을 지핀 것은 익명의 여성 방송작가, 닉네임 Xianzi였다. 그는 지난 2014년 중국 CCTV의 인기 사회자 주쥔(Zhu Jun)에게 성추행을 당했음을 공개적으로 폭로한 바 있다. 당시 경찰은 ‘주쥔이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고려해 사건을 크게 만들지 말자’며 오히려 그를 회유하려 했다고 한다.
중국의 성범죄 현황은 심각하다. SBS 보도에 의하면 지난해 중국의 한 온라인 설문 조사에서 중국 대학생과 졸업생 중 성희롱을 경험했다는 여성은 70%에 달했으며, 400여 명의 여성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또 다른 조사에서는 84%가 직장 내에서 성희롱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중국은 성범죄 신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기소조차 힘들다고 한다. Xianzi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여기서 무릎을 꿇으면, 수많은 사람이 침묵 속에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
‘영원한 보디가드’ 킬리 호이스
BBC One에서 2018년부터 방영되기 시작한 드라마 ‘보디가드’ 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인공인 보디가드의 경호를 받는 냉혹한 정치인 역을 맡은 킬리 호이스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한다. 겉으로 냉철하고 추진력 있는 정치인이지만 결국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배역에 대한 이의 제기이다. 그는 자신 있게 이야기한다.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도 어떤 역할이든 맡아서 잘 연기할 수 있어요.
이는 방송에서 여성에 대한 젠더 페이갭 문제로도 이어진다고 호이스는 말한다. 당장 영국 드라마 ‘더 크라운’에서 주인공 엘리자베스 2세 역할을 맡은 클레어 포이는 조연급 남성 배우들보다 적은 개런티를 받았다는 사실을 공개한 바 있다. 우리나라 역시 금수저 30대 남성 본부장이 수동적 여성 주인공을 신데렐라로 만드는 데 온 힘을 쏟는 그런 구질구질한 스토리는 퇴출당해야 하지 않을까. 역할의 차별은 곧 소득의 차별을 만드는 법이다.
‘저는 특별하지 않아요’ 나디아 무라드
2014년 IS에 납치되어 성노예로 큰 고초를 받았던 유엔 친선대사 나디아 무라드는 자신의 고통이 그리 특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전근대적 세계의 여성들에게는 이는 그저 일상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특히 그가 IS가 인종 청소의 대상으로 삼았던 소수민족 야지디 여성이었던 점에서 그의 외침은 더욱 울림이 깊다. 특히 서구 강대국들의 문제 해결 방식에도 그는 의문을 품곤 한다.
미국은 IS의 점령 구역을 폭격하고 구호물자를 공수했지만, 이는 IS의 학살과 전쟁 범죄를 멈추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어요.
또한 일부 운동가들은 그녀의 탈출을 두고 비겁하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 중 야지디족의 참상을 알았던 사람은 매우 드물거나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에 대한 비난은 과도해 보인다. 아직도 중동의 내전 지역에는 3천 명이 넘는 야지디족 여성이 노예 상태에 놓여 있으며, 그는 야지디족 공동체 재건을 위해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는 권리가 있다’ 아일랜드의 여성들
2018년 세계를 뒤흔들었던 소식 중 하나는 아일랜드의 임신 중단 합법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아일랜드는 전통 있는 가톨릭 국가라는 점에서 그 파장은 더욱 컸다. 그 뒤 역시나 가톨릭의 영향력이 강한 남미 국가들이 뒤를 이었으나 성공한 국가도 있었고 실패한 국가도 있었다. 우리나라는 기독교 국가도 아니지만 아직도 멀어 보이는 길이기도 하다.
아일랜드 여성들의 행동이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결국 특정한 운동가나 정치 지도자의 힘에 문제 해결 방법을 의지하기보다는 여성 대중 스스로의 단결된 역량으로 문제를 돌파했다는 것에 있다. 동일한 의제가 많은 우리나라에서도 참고할 부분이며, 특히 혜화역 시위로 대표되는 현상에도 상당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주기도 한다.
‘프로 유리천장 파괴러’ 오비 펠텐
오비 펠텐 구글 엔지니어는 실리콘밸리에서 상당히 특이한 존재이다(물론 특이하기 때문에 또한 정상적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는 IT 공룡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의 계열사 ‘X’에서 신규 사업 인큐베이팅 팀을 이끈다. 이 회사는 구글이 가장 야심 차게 추진하는 미래 신사업을 상당수 이끈다. 특이점은 그가 그 바닥에서 아주 드문 여성 리더라는 점이다.
신경제를 선두에서 이끄는 플랫폼 산업이지만 사실 슬프게도 새로운 자본주의는 과거의 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여성들에게 그리 우호적이지는 않다.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 중 80%가 남성이며 기술직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 중 70%가 남성이다. 또한 여성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연간 미국에서 투자되는 VC의 총 투자액 중 고작 2%만을 점유한다(여성이 단순히 적어서 그렇다는 1차원적 이야기는 그만두자).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그의 문제 해결 방식이다. 그는 “세계의 절반을 그저 빌런으로, 남은 절반을 그저 피해자로 정의하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비난할 방법이겠으나 그는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활동적으로 재능 있는 여성 엔지니어를 찾는 인물이자 실리콘밸리 내 성범죄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필자 김현성 (페이스북)
직장인 5년차 주니어. 경제와 국제정세, 금융시장과 원자재에 관한 글을 주로 씁니다. 법률과 예술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