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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가장 가깝지만 가장 비밀스러운 나라 북한의 이야기

북한에서 넘어온 한 권의 소설

놀라운 책이 우리에게 도착했다. 무려 현재 북한에 살고 있는 작가가 직접 쓴 북한 체제 비판 소설이 출간된 것이다. 책의 제목은 『고발』, 지은이는 ‘반디’라는 필명을 쓰고 있다(출판사는 다산책방이다). 물론 처음은 아니다. 이 책은 이미 2014년 출판사 조갑제닷컴에서 출간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는 조용했던 이 책이 왜 갑자기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일까? 이유는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이 책을 펴냈던 출판사다. 『從北(종북) 백과사전』 『탄핵을 탄핵한다』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와 같은 극우 반북주의적인 책을 주로 펴내는 조갑제닷컴은 ‘양식 있는 독서인’이라면 믿고 거르는 출판사 중 하나다. 그런 곳에서 나온 책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뻔한 ‘반북 프로파간다’ 겠거니 하는 선입견이 작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책은 좋았는데 출판사가 안티였던 셈, 하지만 이번에 ‘다산책방’을 통해 새롭게 선보이면서 비교적 편견 없이 시장에 노출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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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니 신뢰를 갖기가…

『채식주의자』의 번역가가 『고발』을 선택한 이유

하지만 이 사실만으로 이토록 화제에 오르기란 불가능하다. 더 큰 이유가 있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번역해 맨부커상의 영예를 안긴 데버러 스미스가 번역한 영국판이 ‘영국 펜(PEN) 번역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이것이 독자들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흔들었다. 외신의 극찬도 잇달았다. 문학전문지 <더밀리언즈>는 이 책을 2017년 가장 기대되는 작품의 하나로 꼽기도 했다. 이 책은 영국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독일, 스웨덴 등 주요 20개국에서 출간되어 많은 독자들이 북한의 실상을 아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사실 북한 사회의 실상 폭로는 우리에게 더는 낯설지 않다. 뮤지컬 <요덕 스토리>, 영화 <크로싱>, <신이 보낸 사람>, TV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 등을 통해 북한의 ‘헬스러움’은 알려질 만큼 알려졌다. 탈북 과정을 담은 자전적 수기 등도 많이 출간되어 나름 풍부한 텍스트군을 자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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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헬조선이라면, 북조선은 그냥 지옥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위상은 독특하다. 일단 이 책이 ‘소설’이라는 점이 각별한 관심을 끈다. 소설가 ‘반디’는 1950년생으로 조선작가동맹 중앙위원회 소속 남성 현역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이미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책은 북한 문학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귀중한 자료다. 2004년 홍석중(『임꺽정』을 쓴 벽초 홍명희의 손자)이 쓴 『황진이』가 남한에 소개되면서 북한 소설의 일면을 들여다볼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건 일종의 역사소설이었다. 게다가 그 후 한국 문학사에서 북한 문학을 제대로 다루기란 불가능했다. 민간 차원의 교류가 위축되면서 북한 소설이 남한에 제대로 소개될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고발』은 오랜만에 우리 곁에 도착한 북한 소설이며 따라서 북한 현대 소설의 성격과 수준을 가늠하기 위한 – 충분하지는 않지만 – 하나의 척도가 된다. 여기 실린 소설이 모두 단편이라는 점도 눈길을 끈다. (이제까지 북한 문학 연구는 거의 장편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실제로 소개된 것도 장편 위주였다.)

출신성분 때문에 아이를 낙태하는 「탈북기」

북한에 대한 체제비판 소설이니만큼 수록된 단편들이 북한 정권이 내세우는 이데올로기의 허구성과 억압성, 폭력성과 모순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단지 피상적인 고발과 폭로에 치우치지 않고 나름 예술적 형상화를 도모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물론 그 형상화의 방법과 수준을 남한 현대 문학의 그것과 맞대어 비교할 수는 없다. 현대 소설에 친숙한 독자라면 어딘가 소박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에서 출간된 몇몇 ‘사회주의 리얼리즘’ 소설이나 ‘주체 문학’을 접했던 내가 보기에 이 소설이 이룬 성취는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가령 「탈북기」를 보자. 놀랍게도 이 작품은 최서해의 「탈출기」에 대한 패러디다. 남과 북이 민족문학의 같은 뿌리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새삼 놀랍거니와 패러디는 소위 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 기법이 아니던가? 이 소설집의 첫 작품부터 무척 흥미로웠다. 「탈출기」의 화자가 귤껍질을 먹는 아내를 의심하듯 이 작품의 화자 역시 피임약을 먹는 아내를 의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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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기」의 화자는 매우 명석하고 기술이 뛰어난 인재지만 나쁜 출신성분 탓에 사회로부터 배제당한 인물이다. 문제는 이러한 배제가 대물림된다는 것이다. 화자의 조카는 품행이 바르고 학습 태도가 좋아도 급장이 되지 못하며, 이 모습을 본 화자의 아내는 남편이 입당하여 낙인이 지워질 때까지는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한국에서 경제적 문제 때문에 출산을 포기한다면 여기서는 말 그대로 ‘신분 세습’의 문제 때문에 출산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는 아내의 일기장을 통해 저간의 사정을 알게 되고 마침내 “기만과 허위와 학정과 굴욕의 이 땅에서의 탈출”을 감행한다는 편지를 남긴다. 최서해의 「탈출기」에 대한 패러디가 이보다 더 적절한 형식과 내용적 울림을 가질 수 있을까?

북한 내 불안과 공포를 그린 「유령의 도시」

다음 작품인 「유령의 도시」 역시 수작이다. 이 작품에서 도드라지는 것은 “불안과 공포”에 대한 탁월한 심리 묘사다. 심리소설을 타락한 부르주아 문학으로 규정했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통에서 보자면 이 역시 나름의 ‘형식적 일탈’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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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절 행사를 하루 앞둔 평양. 주인공 한경희는 “불안과 공포의 그늘이 짙게 비껴 있”는 “병적인 시선”을 가진 아들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아이는 무섬증에 걸려 꿈에서 악몽에 시달린다. 흥미롭게도 그 무섬증을 안겨준 것은 마르크스와 김일성의 거대 초상화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프로이트가 말한 ‘언캐니(uncanny)’란 개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언캐니(uncanny)’란 무엇인가. 그것은 낯선 두려움이지만 또한 친숙하고 안전한 영역에서 떠오르는 감정이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돌연 낯선 대상으로 육박할 때 우리가 느끼는 ‘기이한 감정’이 ‘언캐니(uncanny)’다. 마르크스와 김일성의 초상화는 북한 사회의 대타자이자 일상에 편재하는 거대한 시선이며 그렇기에 익숙한 대상이 돌연 낯설게 느껴지는 ‘언캐니(uncanny)’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공산당 선언』의 첫 구절을 마르크스의 유령으로, 그리고 그 유령을 본 아이의 경기로 연결시키는 작가의 솜씨는 북한의 공식 이데올로기가 일상의 개인에게 섬뜩한 것으로 체감되는 순간을 적절하게 포착하고 있다.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이 외에도 책에 실린 「준마의 일생」이나 「무대」 같은 작품은 꼭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두 작품 모두 인물의 입을 통해 북한 체제의 허구성이 발설되지만 너무 직접적이어서 여운이 반감되는 통상의 고발 소설들과는 거리가 멀다. 다양한 이야기 장치를 주조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도식적이고 강압적일수록 그에 대한 고발과 저항 역시 그 통치의 방식을 닮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아직 반북 적대의식이 강고한 남한에서 자칫 ‘프로파간다’로 소비될 위험도 크다.

 

하지만 이 소설은 문학적 형상화와 미학적 고려를 잃지 않음으로써 북한 현실에 대한 탁월한 ‘문학적 비판’을 수행했다는 데 그 가치가 있으며, 이를 통해 ‘싸구려 프로파간다’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위상을 획득해낸다. 물론 이를 여전히 북한의 ‘헬스러움’을 입증하는 도구로만 사용하려는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겠으나 이 작품이 그런 ‘문학의 도구화’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은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북한 문학의 현재에 호기심이 생긴 모든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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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한량

한 씨 성을 가진 선량한 사람. 1년에 4번 정도 극장을 찾는 소시민.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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