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육아의 놀라운 결과
준이 아빠는 준이를 낳는 달부터 지방으로 발령을 받는 바람에 1년 반 동안 혼자 지방생활을 했다. 육아 파트너의 도움이 가장 절실한 초기 1년 반의 시간을 아이 아빠 없이 홀로 독박육아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보면 정말 아찔하다.
출산 전 나는 뭔가 알 수 없는 자신감에 차 준이 아빠가 지방발령을 받는다고 해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나름대로 육아서도 미리 읽었겠다, 나 혼자 아이를 잘 키우며 씩씩하게 버틸 수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책으로 육아를 다 배운 줄 착각하고 아이가 태어나기만 하면 영재, 천재로 키워낼 각오가 단단했다. 헌데 아이를 낳자마자 몰려드는 공포감, 불안한 그 느낌이란…
인형보다 더 작은 아이를 품에 안고, 눈도 못 떠서 질끈 감은 그 두 눈을 보며 드는 생각은 온통 ‘어떡하지?’뿐이었다. 처음에는 병원 분들이나 산후조리원분들이 도와주시니 괜찮겠지 싶었지만 조리원 퇴소 후 집에 핏덩이를 데리고 돌아온 순간, 어떻게 먹이고 어떻게 재우고 어떻게 씻기면 좋나에 대한 두려움은 공포 그 자체였다.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바로 아이를 혼자 씻기기! 애를 씻기다가 떨어뜨리거나 어딘가를 부러뜨리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고 불안한 애미의 마음이 아이에게까지 닿았는지, 그 시절 준이가 목욕하는 표정을 찍어 놓은 사진을 보면 지도 조마조마하고 있었다. 다행히 가까이 살았던 친정엄마가 퇴근 후 와주셔서 많이 도와주셔서 겨우겨우 헤쳐나갈 수 있었다.
허나 하필이면 준이가 태어나던 해부터 교무부장을 맡으시는 바람에 밤 10시 이전엔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친정엄마가 퇴근해서 우리 집에 와주신 후에야 아이를 씻길 수 있었기에 준이는 신생아 시절부터 늦게 잠들던 버릇이 들어버렸다. 때문에 8시 이전에는 재우라고 되어있던 육아서대로 키우지 못하고 11시에나 재울 수 있었다.
준이 아빠와 정상적인 3인 가족 체제를 시작한 것은 준이가 18개월 되던 때부터였다. 창원으로 직장을 새로 얻고 세 식구가 함께 살면서 주말부부 생활을 청산하고 규칙적인 출퇴근 생활을 누렸던 것이다. 이때부터 준이 아빠가 비로소 진짜 아빠가 될 수 있었다.
그전에는 아이를 어떻게 먹여야 될지, 어떻게 놀아줘야 될지, 어떻게 재워야 될지 아무것도 모르고 가끔 와서 아기 얼굴만 들여다보고 다시 나가는 ‘방문객’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야근 없이 매일매일 규칙적으로 칼퇴근을 할 수 있게 되자, 정말 육아에 많은 힘이 되어주었다.
1. 퇴근 후 놀아주기 전담
출처: 패밀리서울 |
사실 처음부터 준이 아빠가 준이와 잘 놀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준이도 아빠를 낯설어했다. 엄마에게만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녀석을 떼어내 아빠에게 데려다 놓는 것 자체가 무척 힘겨웠다. 때문에 준이 마음에 드는 아빠가 되기 위해서 아빠는 엄청나게 노력했다.
아빠를 좋아하게 만들고 싶은데 잘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말을 배우면서부터 ‘아빠는 싫어, 엄마만 좋아’라는 말을 툭툭 내뱉기까지 하니 아빠의 속은 타들어 갔다. 이때 정말 상처를 많이 받았다고 했다. 애 앞에서 애교부리기, 재롱떨기는 기본이요, 아이의 주의를 끌기 위해서 매일매일 신기한 장난감을 사서 안기고 점수를 따기 위해서 춤도 추는 등의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사실 이때 장난감 사주는 버릇을 잘못 들여서 지금까지 매우 고생 중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게 뭘까 항상 연구하고 고민한 끝에 서서히 아이의 취향에 맞춰나갈 수 있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아빠와 놀기 시작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 역할놀이, 동화책 읽어주기 등 닥치는 대로 아이를 연구하고 분석한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이제는 준이가 아빠가 퇴근하면 으레 당연하다는 듯이 아빠와만 딱 붙어서 논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이가 원하는 몸놀이에 부응해주지 못하는 정적인 엄마가 되어버렸고, 몸놀이나 역할놀이는 아빠가 담당하게 되었다. 아빠가 퇴근하면 달려가서 안기고 애니메이션 캐릭터 역할놀이를 진지하게 시작한다. 어느새 나는 밥 차리는 밥순이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렇게 아빠가 아빠 역할을 해주니 육아가 한결 쉽고 가벼워진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2. 밥 먹이기 스킬 업
출처: 맘스매거진 |
준이 아빠는 유독 아이 먹는 것에 엄청 신경을 쓰는 편이다. 골고루 먹이는 것뿐만 아니라, 많이 먹이는 것, 식재료의 유통기한, 구입처까지 꼼꼼하게 체크하려고 해서 나랑 싸우는 편이다. 나는 굳이 유기농이나 성분을 잘 따지지 않고 적당히 구매해서 적당히 조리해서 주는 편인데, 준이 아빠는 나와 성향이 많이 다르다.
처음에는 내가 하는 걸 가지고 옆에서 잔소리하던 수준이었는데, 점점 발전하더니 자기가 전담해서 아이를 먹이는 데까지 발전을 거듭했다. 식당에 가면 이제 나는 내 앞으로 나온 음식을 재빨리 허겁지겁 먹고 아이 것은 아빠가 떠먹이는 경지에 이르렀다. 내가 다 먹은 후에 배턴 터치해서 내가 아이를 케어하고 아빠가 자기 것을 먹기 시작한다.
최근에는 아이가 6살이 되더니 혼자 숟가락 잡고 밥은 떠먹어서 한결 편해졌다. 몇 살 때까지 떠먹여 줘야 되나 두고 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준이는 다행히 그 경계선이 6살이었던 것 같다.
3. 같이 놀다 재우기
출처: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
대다수의 엄마가 아이들을 재우고 싶은 시간을 정해두고 ‘제발 자라~ 자라’ 하는 마음으로 아이를 재우기에 급급하다면 준이 아빠는 조금 다르게 애를 재운다. 아이를 재울 마음이 없이 그냥 침대에 눕혀놓고 같이 논다. 그럼 아이가 졸려 하다가 혼자 스스륵 잠든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며 놀거나 책을 읽어주거나 구조대 놀이(로보카 폴리 역할놀이)를 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가 잔다고 한다. 정말 신박한 재우기 스킬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엄마인 내가 집에 없는 날만 아빠가 재우는 것이고, 내가 집에 있는 날은 아이가 무조건 내 옆에서만 자려고 한다.
난 준이를 재워본 적이 없어. 같이 놀아주다 보면 어느새 자던데?
라며 아이를 재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아직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1인이 바로 준이 아빠다. 덕분에 내가 서울에 가거나 집을 비울 때 걱정 없이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다.
4. 주말엔 교외로
창원 생활을 하게 된 후 겪게 된 가장 큰 변화 중의 하나가 바로 주말 기능의 회복이었다. 주말엔 산으로 들로 공원으로 교외로 나가 놀기 시작한 것이다. 나 혼자 준이를 키울 때는 꿈도 꾸지 못했다. 주말마다 방콕하며 아이를 돌봤던 신세에 비하면 황홀하기 그지없는 신분 상승의 나날이다.
그때는 준이가 워낙 어리기도 했던지라 어디를 데리고 갈만한 처지도 아니었고, 차에 오래 태워 어딘가로 간다는 것이 모험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준이도 나름 많이 자랐고, 주말마다 교외로 나들이를 가는 생활에 적응해 즐거워한다. 공룡 엑스포 공원, 각종 박물관, 체험시설, 동물원, 도서관 등 어디든 데리고 다녀도 잘 따라와주는 준이 덕분에 근처의 도시란 도시는 실컷 구경했다.
준이 아빠가 운전하고 내가 아이를 옆에서 돌볼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차 뒷좌석에서 아이와 놀아주기도 하고 옛날이야기를 해주기도 하고, 책도 읽어주는 등 자동차 여행 시 한 사람이 든든히 대비할 수 있어 육아 파트너의 존재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5. 아들과 아빠 둘만의 시간
때로는 아빠와 아들이 둘만의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엄마에겐 육아 월차와도 같은 날이다. 5살이 되고부터는 준이가 여탕에 따라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아들은 아빠와 함께 남탕으로 직행한다. (올레!) 준이는 욕조가 없는 집에 살다 보니 물에 충분히 담그는 경험을 하지 못해서 목욕탕에 가면 그렇게도 좋아한다. 한번 목욕탕에 놀러 가면 기본 2시간을 채우고 나올 정도다.
준이 아빠는 준이에게 점수를 많이 따기 위해 준이를 데리고 혼자 나가서 놀다 오는 것을 좋아한다. 태어나면서부터 18개월 동안 아빠의 공백이 워낙 컸기에 이를 만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 같다. 때로는 단둘이 동물원에 놀러 가기도 하고 쇼핑을 하다 오기도 한다.
아빠가 든든한 육아 파트너가 되어주니 큰 육아 스트레스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준이 아빠가 살림의 조력자는 되지 못하지만 육아 파트너로서는 훌륭한 편이다. 그렇기에 나도 억울한 마음 없이 아이를 돌볼 수 있고, 그런 평온한 마음이 온전히 아이에게 전해져서 구김살 없는 아이로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며
아무리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전업맘이 되었더라도 ‘육아’에는 아빠가 필요하다. 나 혼자 잘할 수 없어서, 손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살림도 혼자, 육아도 혼자 하는 이 땅의 수많은 전업맘이 계실 줄로 안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고 피곤하더라도 아빠들이 육아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겉으로 보기엔 잘 크는 것 같이 보이는 아이들일지라도 내적 행복감 측면에서 아빠 육아의 지원 없이 자란 아이들은 박탈감을 가지고 자라날 수 있다. 우리 세대들이 우리 아빠들에 대해 느끼고 있는 어색함과 낯설음, 그 감정들을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
아빠 육아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아이들에게 매우 큰 힘을 발휘한다. 가정,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서 여자 어른만 상대하고 자랄 우리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남성 중심 약육강식 세계에서 생존해야만 한다. 어려서부터 남자 어른 대처방법을 체화하지 못하면 적자생존 사회에 나가 남들보다 더 긴 적응 기간을 거칠 수밖에 없다. 바로 나 자신이 그랬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한다.
또한 아빠 육아는 남자들이 강점을 보이는 논리적, 인지적 사고력을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몸놀이를 통한 대근육 발달, 그로 인한 두뇌 발달은 두말하면 입 아플 정도일 것이다. 서울에서의 인간관계, 문화적 혜택을 포기한 대신 선택한 지방행에서 아빠 육아를 얻을 수 있었다.
덕분에 준이는 정서적으로 풍족한 유년시절의 추억을 갖게 될 것이다. 사춘기를 겪고 어른이 되어서 힘든 일이 닥칠 때 아빠를 의지하고, 아빠에게 방향을 물어볼 수 있는 아들이 되길 바란다. 어려서부터 쌓은 끈끈한 유대감은 절대 아빠와 아들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필자 스윗제니
삼성전자 마케터 출신 프로 전업맘. 아동심리 자격증을 비롯하여 총 8개의 아동심리 관련 자격증 취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