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 100조 펀드, 그리고 4차산업혁명 스타트업
올해 소프트뱅크가 100조원(정확히는 지금 환율로 대략 110조 원)짜리 비전펀드를 만든 것이 세계적인 화제가 됐다. 몇 조짜리 벤처펀드만 돼도 크다고 하는데 100조라니 전대미문의 규모이기 때문이다. 손정의 회장이 이 펀드를 만들고 어떤 회사에 투자하고 있는지 정확히 공개된 바가 없었다.
그런데 7월 21일 도쿄에서 가진 소프트뱅크월드 컨퍼런스 키노트발표에서 손 회장이 그의 투자 철학과 그가 투자한 10개 회사를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다. 그 내용을 메모삼아 소개한다. 동영상은 여기에서 볼 수 있다.
손 회장은 산업혁명 시대에 증기기관 등 혁신을 낳는데 밑거름이 된 영국 자본가를 젠트리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소프트뱅크가 이 시대의 젠트리역할을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산업혁명 시대는 신체 능력의 확장이 핵심이었다면 정보혁명 시대에는 지능의 확장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산업혁명 시대에 젠트리 자본가들이 최첨단기술의 스폰서 역할을 했듯이 소프트뱅크가 그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소프트뱅크의 놀라운 투자실력을 자랑했다. 18년간의 IRR이 44%. 매년 44%씩 수익을 냈다는 뜻인데 한두 푼도 아니고 대충 계산해서 11조를 투자해서 175조를 만든 투자자는 아마 손정의 회장밖에 없을 것 같다.
알리바바, 야후 재팬 외에도 스프린트나 수퍼셀에서 저렇게 높은 투자수익을 올렸다는 것은 몰랐던 사실이다.
그 덕분에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의 규모는 2016년 글로벌 VC 투자펀드 총액인 7조 엔보다 더 크다는 설명이다. (정말 그런지 조금 의심이 가지만 패스)
이 펀드에 돈을 댄 LP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애플, 퀄컴, 폭스콘 등이다. 이후 그는 주요 포트폴리오 회사를 소개하기 시작했다.
먼저 구글이 샀다가 소프트뱅크로 매각한 로봇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에 대해 소개했다 MIT로봇연구실에서 92년 독립한 회사로, 25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로봇 회사다. 갑자기 등장한 스타트업이 하루아침에 만든 기술이 아니었던 것이다. CEO인 마크 라이버트의 나이를 찾아보니 67세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약 6백여 개의 저궤도 위성을 띄워 전 세계에 값싸게 인터넷을 공급한다는 OneWeb의 그레그 와일러 CEO. 40대 후반으로 소프트뱅크에서 1조 원 이상 투자를 받았다. DC, 실리콘밸리, 플로리다 등에 사무실이 있는 미국회사이다.
가벼운 혈액 채취 생체테스트로 암을 조기진단한다는 Guardant health의 헬미 엘토우키 CEO가 발표. 그는 스탠포드 출신이다. 4천억 정도 투자받았다.
실리콘밸리의 실시간 데이터 분석 회사인 OSIsoft의 팻 케네디 CEO. 1980년에 설립되어 올해 37년 된 회사다. 데이터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되면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 큰 투자를 받은 것 같다.
자율주행 데이터를 분석하는 회사인 Nauto의 스테판 헥 CEO. 작은 장치를 차량에 설치하면 카메라를 통해 내·외부의 데이터를 수집하여 사고를 예방해준다고. 이 데이터를 통해 자율주행 기능까지 개발하려는 비전이다.
버티컬파밍 스타트업인 플렌티의 맷 바나드 CEO이다. 소프트뱅크가 2천억이 넘게 투자했다는 농업 스타트업이다.
청소 기계 등 각종 머신을 자동화시킬 수 있는 로봇 두뇌를 개발하는 회사 브레인 코프의 유진 이지케비치 CEO. 소프트뱅크가 1천2백억 원 정도를 투자한 회사이며, 샌디에이고에 위치해 있다.
클라우드마인즈의 빌 황. 내가 2015년말 베이징에서 실제로 만나봤던 분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차이나모바일 CTO까지 하셨던 분인데, 현재는 로봇 등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클라우드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소프트뱅크와 폭스콘에서 3백억 원 넘게 투자받았다. 중국의 스타트업이다.
마지막으로 ‘Spatial OS’라는 가상세계를 만드는 OS를 만든 스타트업 임프로버블의 CEO 허먼 나루라가 나왔다. 소프트뱅크가 5천억 원이 넘는 거액을 투자했다. 영국스타트업. 이번에 소개된 기업 CEO중 유일한 20대이다.
마지막으로 소프트뱅크가 지난해 약 35조 원을 주고 인수한 영국의 모바일반도체회사 ARM의 사이먼 시거스 CEO가 발표했다. 그는 IoT, 인공지능, 데이터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마무리하며
손정의 회장이 투자한 이 10명의 회사와 CEO를 보고 느낀 점을 정리해 본다.
- 대부분 미국회사.(7개) 그중에서도 상당수가 실리콘밸리를 본거지로 하고 있다. 임프로버블과 ARM은 영국회사. Cloudminds는 중국회사.
- 전원 창업자가 남성. 대부분 백인 남성. 아시안은 중국의 빌 황.
- 로봇, 위성인터넷, 인공지능 헬스, 데이터, 자율주행, 스마트팜, 로봇소프트웨어, 가상현실SW, IoT칩 등. 소위 4차산업 혁명 아이템들.
- 28세인 임프로버블의 CEO를 제외하고 대부분 40~50대의 중년 CEO들. 상당한 경험을 쌓고 대부분 박사까지 마친 이공계 인재들이 창업한 회사에 투자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
- 꼭 스타트업이라고 하기 민망한 회사도 많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25년, OSI소프트는 35년된 회사이며 그래서 CEO도 60~70대. 그동안 축적된 기술을 기반으로 이제 때를 만나서 큰 투자를 받고 성장하려는 모습.
소프트뱅크가 일본회사인데도 불구하고 일본 스타트업은 하나도 소개되지 않았다. 거의 전원 영어가 모국어이거나 모국어 수준으로 하는 창업자들이다. 영국회사는 있지만 유럽 본토 회사가 없다는 것도 특이하다.
이것을 보면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큰 투자를 받아 성장하는 소위 4차산업혁명 스타트업은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하는 게 아닌 것 같다. 나름 오랜 경험을 가진, 뛰어난 실력을 가진 검증된 이공계 인재가 창업해서 어느 정도 업계에서 인정받아야 큰 투자를 받으며 본격적인 성장을 시도해볼 수 있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최고 수준 공대의 세계적 명망을 가진 교수와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의 최고 수준 기술 임원들이 같이 이런 창업을 하면 소프트뱅크에게 투자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손정의 회장은 요즘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고 반문한다고 한다. 투자할 만한 회사를 찾으러 다니느라 전용기를 타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다. 손 회장이 거액을 투자하는 4차산업혁명 스타트업이 한국에서도 나와야 할 텐데.
PS. 손정의 회장은 발표에서 특별히 ‘4차산업혁명’, ‘4차산업혁명 스타트업’이라고 지칭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인공지능, IoT, 로봇, 데이터, 스마트파밍 등의 기업들이 한국에서는 4차산업혁명기업이라고 불리기에 이 글의 제목을 그렇게 달아봤다.
스타트업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미션을 가진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센터장. 기자로 사회생활을시작해 조선일보 경영기획실 IT팀장, 조선일보 일본어판을 만드는 조선일보JNS를 설립, 대표를 역임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에서는 대외협력본부장, Daum Knowledge Officer,글로벌센터장을 두루 거쳤으며, 2009년 3월부터 2012년 2월까지 미국 보스턴에서 라이코스를 이끌었다. 인터넷의 여명기인 1996년에서 1997년 사이 한국 IT업계를 취재한 인연으로 평생을 인터넷과 함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아이패드 혁명》(공저)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인사이드 애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