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리 씨의 결정: 걱정도 팔자다
방송인 사유리가 과학의 힘을 빌어 스스로 비혼모가 되기로 한 소식이 여러모로 신선하고 멋지다. 한 명의 자유인으로서 내린 결정을 응원하고 그의 2세에게도 축복을 기원한다.
물론, 당연히 비판적인 목소리도 들려온다. 자식을 갖고 싶다는 자신의 이기심으로 아이가 자라날 환경을 일방적으로 결정했다거나, 아이가 나중에 커서 생물학적 아버지를 궁금해하면 어쩌겠냐는 식이다. 말인즉 부모가 함께하는 가정이 주류인 현실을 감안할 때 아이가 성장하면서 부정적 심리를 갖게 된다면 어떻게 하느냐는 뜻이겠다.
존재로서의 자신을 궁금해하기도 하는 게 인간이고, 주변 대다수 사람과 다른 특징을 가진 경우 그로 인해 괴롭기도 한 게 사람이니까, 그런 우려는 있을 법도 하다. 아마 사유리의 2세에게도 보통 사람들이 상상 가능한 여러 고민 중 어느 하나쯤은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이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일어나는 일이다. 양친이 있어도 괴로운 아이는 있다. 종류만 달리할 뿐 이는 외부모 가정의 아이가 가진 고민의 무게보다 더 낫다고 단정할 순 없다. 가령 부모가 가난해서, 권력이 없어서, 특정 지역 출신이라, 인품이 훌륭하지 못해서 등등의 사유가 있는데, 자신이 처한 가정환경이 세상의 거의 전부인 아이에겐 그 모든 것들이 각기 절대적 무게로 다가올 것이다.
확장해 생각해보면 사유리더러 이기적이라는 말도 매한가지다. 그를 두고 이기심을 언급한다면, 넌 왜 그렇게 못생겼는데 아이를 낳으려 하냐는 질문도 당위를 갖는다. 이런 질문은 장애인에게, 가난한 이에게, 키 작은 이에게 출산의 표준화를 강제하는 폭력과 다를 바 없다. 그 폭력의 화살표 끝에는 동성결혼이나 비혼 출산에 대한 차별적 사고가 도사린다.
그래도 그게 우리가 사는 현실이니 함부로 결정할 일은 아니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아이가 자라면서 세상과 접촉하며 얻을 상처, 사유리가 홀로 아이를 키우며 입게 될 상처 등이 만만치 않다는 이유를 들면서. 사유리는 유명한 예능인이고 사회적 경제적 입지가 무르지 않으니 그나마 가능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어렵다는 말도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이런 지적의 해결은 아주 간단하다. 사회가 외부모 또는 비혼모 가정에게 그런 세상을 선사하지 않으면 된다. 어떤 사연과 이유가 있든, 그들의 가정이 사회의 한 일원으로서 삶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면 되는 일이다.
사유리의 출산에 대한 지적과 비판은 주류로부터 벗어나는 특징을 가진 소수에게 빈번한 현상이다. 그러나 아주 멀쩡해 보이는 사람 중 대부분은 주류와 다른 자신만의 남다름을 하나씩은 갖고 있다.
단지 남들과 달라서가 아니라 다르기도 한데 소수인 사람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라면, 사유리를 향한 오지랖을 부릴 이유가 없다. 그러니 걱정스럽다는 말로 포장한 차별을 중지하고 그 우려가 사라진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쏟으면 된다. 대개 옛말은 틀리지 않다. 걱정도 팔자다.
필자 김종현 (facebook)
생각한다. 실천한다. 반성한다.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