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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회장님 없으면 회사가 망할까?

2017년 1월 12일,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이야기가 나오던 시기. 삼성전자 주가는 190만 원을 돌파했다. 오너 구속설에 주가가 오르는 현상은 기이한 느낌을 준다. 삼성전자 사내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돌았다. 깨끗한 경영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외국인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대거 매입한다는 이야기였다.

 

2017년 2월 17일,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됐다. 언론은 곧 한국 경제가 무너질 것처럼 나팔을 불어댔다. 심지어 이재용 부회장을 스티브 잡스와 비교하는 기사도 있었다. 1985년 잡스가 쫓겨난 후 애플이 망조가 든 것처럼 삼성도 큰 타격을 입을 거라는 기사였다.

부회장님 없으면 회사가 망할까?

출처: 중앙일보

삼성전자 오너가 구속되면 삼성전자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기업 이미지가 좋아져서 주가가 오를까? 아니면 타격을 입고 주가가 내려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일 없다. 오너가 자리를 비운 것과 기업 가치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 왜 그런지 지금부터 설명해보겠다.

 

고대 어느 나라의 왕이 먼 해외로 여행을 떠나면서 아랫사람들에게 각각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의 금을 맡겼다. 왕이 떠나 있는 동안 5달란트 맡은 사람은 장사해서 5달란트를 더 벌었다. 2달란트 맡은 사람은 2달란트를 더 벌었다. 1달란트 맡은 사람은 두려워서 땅속에 묻어두었다.

 

왕이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달란트를 번 사람들은 큰 칭찬을 받았다. 1달란트를 땅속에 묻어둔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크게 야단을 맞고 가진 달란트를 모두 빼앗겼다. 빼앗긴 달란트는 5달란트를 번 사람에게 주어졌다.

 

성경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다. 본래는 천국을 비유하는 것으로 숨겨진 내용이 있지만, 이 글에서는 표면적인 이야기만 다루겠다. 달란트 비유는 유대왕 ‘헤롯 아켈라오’가 왕위를 인정받기 위해 로마로 떠나는 실제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생각해보라, 왕이 불가피하게 자리를 비울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겠는가? 왕국의 보물이 축나기를 바랄까? 그럴 리 없다. 자신이 자리를 비우는 동안 신하들이 재산을 잘 관리하기를 바랄 것이다. 잘 관리한다는 것은 현상 유지가 아니다. 평소처럼 재산이 증식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만일 왕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왕의 재산에 손해를 입힌 신하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재용 부회장도 마찬가지다. 그는 직접 보유한 주식 수는 적지만, 에버랜드와 삼성생명이 보유한 주식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다. 자리를 비운 동안 자신의 재산이 축나는 꼴을 과연 그가 용납할 수 있을까?

 

삼성전자 주식은 오히려 평소보다 더 특별한 관리를 받을 것이다. 기업가치의 척도는 주식이다. 기업의 실적에 있어서도 삼성전자는 더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어쩌면 임원들에게는 부회장이 자리를 비운 지금이 실력을 인정받을 기회일 수 있다. 그들은 서로 달란트를 더 남기기 위해 평소보다 훨씬 치열한 노력을 할 것이다.

 

아마도 이런 경우는 있을 수 있겠다. 삼성전자 실적이 좋지 못하면 그 탓을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때문이라고 정치 선전을 하는 경우 말이다. 그 경우 노리는 것은 당연히 부회장의 조속한 사면이다. 속지 않았으면 좋겠다.

리더가 자리를 비우는 것과 기업가치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

조금 벗어난 이야기지만 질 낮은 기사들 때문에 스티브 잡스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다. 이재용 구속과 1985년 스티브 잡스가 쫓겨난 것을 비교하는 것은 헛소리다. 잡스가 계속 있었어도 애플은 분명 내리막길을 걸었을 것이다.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나 세운 회사, 넥스트도 망했기 때문이다. 1996년 잡스가 복귀했을 때 애플을 살릴 수 있었던 비결은 오히려 쫓겨난 후 경험한 넥스트의 실패와 픽사의 성공에 있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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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도 망한 적이 있다 (…) 출처: FORTUNE

2009년 스티브 잡스가 간이식 수술을 받고 6개월 만에 컴백했을 때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애플 주가는 하락했다. 2011년 스티브 잡스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절망했다. 그러나 애플 주가는 상승했다. 사람들이 리더를 주목하고 리더의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리더가 자리를 비운 것과 기업의 가치는 큰 상관관계가 없다. 스티브 잡스가 무엇을 하냐가 중요한 것이지 자리를 비운 그 자체가 기업가치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결과를 본다. 리더가 이름값을 하는지를 본다. 리더가 기업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여갈 수 있을지를 본다. 아무리 스티브 잡스라도 실망스러운 모습을 거듭 보여준다면 사람들은 야유할 것이다. 애플의 가치는 앞으로 팀 쿡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팀 쿡이 자리를 비우는 것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다. 팀 쿡이 장시간 자리를 비운다면 사람들은 그를 대신하는 리더를 지켜볼 것이다. 팀 쿡이 떠난다면 다음 리더를 지켜볼 것이다. 단지 팀 쿡이 부재중이라는 이유로 사람들은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기업이 그렇게 허술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다.

부회장님 없으면 회사가 망할까?

출처: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스타트업이라면 모를까, 만일 리더가 자리를 비운 것으로 기업이 망한다면 그 기업은 뭔가 크게 잘못된 것이다. 기업 차원에서 리더를 육성시키지 못했다는 이야기니까.

 

사실 그것도 대안이 있다. 기업 내에 리더감이 없다면 이사회에서 외부의 좋은 리더를 영입해 세우면 된다. 그 옛날 GM이 듀퐁을 영입해 기사회생한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필자 여현준 (페이스북)

게임기획자로 4년, 스타트업 대표로 4년을 일했습니다. 지금은 작은 회사에서 마케팅 팀장을 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좋아하고 독서가 취미입니다. 경영 관련 에세이를 주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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