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종원의 골목식당, 화기애애한 거짓말만큼 무서운 건 없다
「백종원, ‘선’을 넘고 있다」라는 기사를 보았다. 이 글을 쓴 분이 어떤 분야에서든 뭔가를 정말 ‘치열하게’ 배워본 적이 없다는 데 한 표를 건다. 요리든 예술이든 학문이든 자신의 삶을 기투해야 하는 전문분야에서, 마치 사교계에 나선 신사라도 되는 양 폼 잡고 언어 다듬어가며 서로 누구든 다치지 않을 ‘좋은 말’로 교육해 필요한 만큼의 지도가 가능하게 된 사례를 나는 본 기억이 없다. 어느 분야든 좋다. 수련생 과정 딱 1년만 겪어보면 안다.
다들 자신의 인격을 가진 성인인데 왜 굳이 인격에 상처를 줘 가면서까지 이렇게 지도를 해야 하느냐? 다 성인이니까 말로 듣고 이해할 수 있게 합리적으로 설명하면 되지 않느냐는 건 실제 전문분야에서 교육이나 수련이라는 걸 해보지 않은 사람들의 상상이다.
원리를 가르치는 건 쉽다. “하루에 10마리씩 닭을 다듬어봐야 닭 다듬는 솜씨가 늘어요.” 이 말을 듣고 반박하거나 거부할 실습생은 없다. 하지만 저 말을 전적으로 받아들였다고 해서 모든 실습생이 다음날부터 닭을 10마리씩 다듬지는 않는다. 아니, 사실 저걸 실천에 옮기는 건 열 명 중 많아야 한 명 정도다. “정말로 10마리씩 꼭 하셔야 해요. 진짜로요.” 이렇게 친절하게 신신당부를 하면 한 1~2명쯤은 더 시도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여전히 대부분은 실천으로 옮기지 않는다.
원래 간단한 준칙일수록 실천은 어렵다. 전문직종에서의 교육은 준칙을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준칙을 실천으로 옮겨서 몸에 배게끔 만드는 데 목적을 둔다.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간단한 준칙을 반복하는 일은 힘들고 괴롭다.
누가 당신더러 하루에 고신문 10장씩 읽고 한자마다 독음 다 달아서 무슨 내용인지 정리하라고 시킨다고 해봐라. 하루는 누구든 한다. 일주일은 절반 정도는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한 달쯤 되면 대부분 도망간다. 그걸 몇 년을 해야 나오는 게 논문이다. 그런 문제다. 문제는 그 실천의 습관을 어떻게 몸에 배게 만드느냐다.
이성적으로 정제된 말, 그래서 상대방의 감정을 해치지 않는 말들로 타이르고 설득하면 된다? 말했지 않나, 그게 수련생 모두에게 먹히는 건 아니라고. 그게 먹힐 상황이었으면 이 홍탁집 사장님은 굳이 〈골목식당〉에 출연하지 않아도 되었다. 바로 옆에 훌륭한 30년 경력의 스승님이 있는데 뭐하러 생판 남에게 쌍소리까지 들어가면서 주방에 서야 하겠나. 그러나 엄마는 할 수 없고 ‘교관’이 해야 하는 일이니 백종원이 등장해서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거다.
사실 백종원이 이래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자기 사업이 있는 사람이고, 이 글을 쓴 사람이 지적하는 것과 같은 완장질(?)을 하고 싶다면 자기 회사에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홍탁집 사장에게 쓴소리를 하든 닭을 사비 털어 보내주든 일 잘하게 개조시켜서 대박 나게 해준다 한들 홍탁집 사장이 컨설팅 비용 한 푼이라도 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백종원이 돈을 썼다(…) |
‘방송이기 때문에’라고 말하려 해도 이미 백종원이 나오는 방송은 한둘이 아니요, 거기에서 맛있는 음식 먹으면서 감탄하는 일로만 일관해도 백종원 자식의 이득을 챙기는 데는 충분하다. 누군들 좋아서 쫓아다니면서 싫은 소리 하고 타박 주냐 싶다.
사실 같은 이유 때문에 요즘 대부분의 박사급 연구자들도 대학원생들에게 굳이 쓴소리 안 한다. 좋은 말 못 듣거든. 꼰대질한다는 말 들을 바에는 그냥 〈아침마당〉 방청자처럼 좋은 선배 좋은 선생님 연기하면서 그냥 나 할 공부나 하고 너는 너대로 알아서 하세요 하며 내버려 두는 게 요즘 추세다.
백종원도 그렇게 해야 이런 분들에게 이런 소리 안 듣겠지 싶다. 〈아침마당〉 방청자처럼 나와서 대충 일 시키는 시늉 하고 어머 많이 느셨네 그럼 내가 비법 알려줄게유 대박나세유 이러면 만족하려나 싶다. 화기애애한 거짓말, 그게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모르지?
필자 박성호
"예나 지금이나" 저자, 문학박사, 대학 연구교수로 근근히 벌어먹고 사는 가련한 30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