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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영화’에 왜 청소년이 공감할까

2014년 개봉한 〈국제시장〉은 개봉하기 전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영화의 서사에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비판이었다. 영화평론가들과 진보지식인들의 비평은 박했다. 반면 ‘산업화 시대’를 잊지 못하는 언론과 정치인들은 잘 만들어진 ‘우파영화’로 취급하며 반겼다.

‘꼰대 영화’에 왜 청소년이 공감할까

이 영화는 1,000만 관객을 넘기며 흥행에 성공했다. 평론가들의 박한 비평과 달리 대다수는 이 영화를 꽤 재미있게 즐겼다는 이야기다. 영화 문법, 영상미, 서사 구조 등 만듦새를 꼼꼼히 따지는 평론가들인 만큼, 일반인과 시각차가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들의 비평이 정답은 아니다.

 

다양한 경험과 관점을 가진 1,000만 명이 넘는 이들이 봤다면 각자 받아들인 영화의 의미는 그 사람 수만큼 다양하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 〈국제시장〉은 수용자의 해석을 통해 ‘완성’되는 영화로 보아야 할 것이다. 수용미학적 관점에서 이 영화는 어떻게 수용되었을까?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

〈국제시장〉이 1,000만 관객을 넘긴 이유는 평소 영화관을 출입하지 않는 노년층의 효과가 작지 않을 것이다. 산업화 세대의 인생을 다룬 몇 안 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윤제균 감독이 직접 이야기했듯 그 시대를 살아낸 노년 세대에게 이 영화는 헌사 그 자체다. 작중 주인공인 윤덕수와 그의 아내 오영자는 감독의 실제 부모님 이름이기도 하다.

그래도 잘 살았지예? 진짜 힘들었습니더.

항구에서 생선 궤짝을 나르고, 독일에서 광부로 노동하며, 베트남 전쟁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지켜낸 가족에게도 꼰대 취급받는 덕수는 영화 끝부분에서 마침내 아버지에게 ‘그래도 잘 살지 않았느냐’는 인정을 구한다. 모두 잊어버린 듯했던 노년들의 기구했던 인생에 ‘잘 살았다’고 묵묵한 위로를 건네는 것이다.

‘꼰대 영화’에 왜 청소년이 공감할까

자식들조차 존중해주지 않는 인생의 의미를 어린 시절 생이별했던 아버지에게 구하며 눈물을 흘리는 덕수. ⓒ 영화 국제시장

덕수가 손녀 손을 잡고 ‘기억’을 설명하는 장면은 이 영화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드러낸다. 우리 시대 어른들은 역동의 현대사를 산 기억을 같은 세대 외에는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다.

 

영화에서 표현된 그들에게 〈국제시장〉은 “우리가 힘들게 나라를 일구었기에 너희가 편하게 살 수 있다”는 고루한 설교가 결코 거짓이 아니라는 증명이자 ‘우리의 삶에도 의미가 있었다’는 웅변이다. 감독은 노년 세대의 기억을 영화를 보는 모든 세대로 확장해 세대 간 소통을 이루려 한다.

그러나 여성은 소외됐다

물론 그러한 기억의 확장이 모두에게 유쾌하지는 않다. 이 영화를 관람한 오늘날의 여성들은 거북했던 장면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덕수의 아버지는 흥남철수 현장에서 덕수에게 가장 역할을 부여하고 그때부터 영화는 덕수의 삶에만 천착한다.

 

덕수 어머니는 이따금 재봉틀을 돌리며 ‘노동’하지만 덕수 동생 학비에, 여동생 결혼비용에 보탬이 됐다는 묘사는 없다. 덕수 여동생 끝순은 자기 결혼 비용을 위해 큰오빠가 베트남에 가기를 은근히 종용한다. 여성들은 덕수로 대표되는 그 시대 ‘남성’들이 이룬 가족의 성공에 철저히 기댄다.

‘꼰대 영화’에 왜 청소년이 공감할까

독일 광산기업 간부에게 현장에서 유일하게 독일어로 또박또박 항의할 수 있었던 재원 영자는 덕수와 결혼하고 전형적인 ‘아줌마’가 된다. ⓒ 영화 국제시장

덕수 아내 영자는 독일 간호학교에서 교육받아 전문적인 간호지식을 갖추고 독일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재원이다. 그런 그는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덕수 아내가 되어 고분고분 국제시장 잡화점 안주인으로 늙어간다. 그래도 “사랑하니까 결혼했다”고 눙치는 영자의 모습은 영화가 가부장 사회 속 여성의 한계를 긍정하는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비정치성의 정치성

비평가들이 가장 많이 지적하는 부분은 이 영화의 ‘정치성’이다. 윤제균 감독은 정치 논란을 벗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했다고 밝혔다. 예를 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해 파독노동자들을 위문한 일이나 부마민주항쟁 등의 민감한 소재를 일부러 뺐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정치성 논란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경제를 부흥하고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동맹국의 침략전쟁에 국민을 ‘수출’한 독재정권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우리가 영화에서 볼 수 있는 건, 그런 상부구조로 결정된 ‘하부구조’, 즉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덕수의 고단한 삶일 뿐이다. 산업화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에서 덕수로 대표되는 성공적인 ‘가장’에만 집중한 것은 국가의 폭력을 은폐하는 장치이고 다분히 정치적이라는 이야기다.

‘꼰대 영화’에 왜 청소년이 공감할까

지나치게 미화된 베트남 전쟁 묘사 또한 다분히 정치적이었다. ⓒ 영화 국제시장

특히 베트남 전쟁 묘사는 지나치게 미화했다.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영화는 오히려 베트콩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처한 베트남 민간인을 한국군이 구출하는 장면을 넣는다.

 

감독이 이야기하는 영화의 주제의식에 비추어 보면 구태여 이를 묘사하지 않은 것은 이해가 간다. 산업화 세대의 기억에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경향은 영화의 다른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국제시장〉은 세대 간 소통을 이뤘을까

영화평론가들의 어려운 비평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의할지는 모르겠다. 많은 사람은 이 영화를 보고 ‘가부장제’를 옹호하는 영화라거나 ‘국가의 폭력’을 은폐하는 영화라고 느끼지 않는다. “이만하면 잘 살았지요”라는 덕수의 물음은 노년 세대에게는 위로를, 젊은 세대에게는 안타까움을 선사한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 말고는 배운 적 없었고,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 세대에 대한 안타까움이다.

 

뜻밖에 10-20대는 〈국제시장〉을 높이 평가한다. 젊은 세대에게 이 영화는 노년 세대를 이해하게 해준다. 〈변호인〉에서 주인공이 왜 청년들을 그토록 열심히 변호할 수밖에 없었는지 물었던 것처럼 그들은 노년 세대에게 왜 보수정당만을 지지하는지, 왜 그렇게 말이 안 통하는지 묻는다.

 

어쩌면 지금 청년 세대는 그들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처지인지도 모른다. 산업화 시기부터 IMF 외환위기를 겪기 전까지 존재했던 호황기를 386 세대는 경험했다. 이들에 견주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건 그들이나 청년들이나 마찬가지다.

‘꼰대 영화’에 왜 청소년이 공감할까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파독광부에 지원한 덕수의 모습은 입사시험에 줄 서는 현세대 청년들을 떠올리게 한다. ⓒ 영화 국제시장

〈국제시장〉에 등장하는 옛 부산 산복도로 판자촌을 보면 지·옥·고로 지칭하며 지금 청년들이 사는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이 떠오른다. 먹고 살기 위해 독일과 베트남으로 떠났다가 불구가 되어 돌아온 산업화 세대는 공사현장에서 산업재해를 당하거나 공무원 시험에 실패해 자살하고 마는 청년들과 그렇게 다를까?

 

영화에서 덕수가 벌어 키운 아들딸들은 아버지를 무시하거나 비웃는다. 하지만 손녀 서연은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를 열창한다. 감독의 의도적인 연출은 아니겠지만 꼭 산업화세대와 그 손자세대의 소통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꼰대 영화’에 왜 청소년이 공감할까

가족들의 타박 속에서 ‘굳세어라 금순아’를 열창하는 덕수의 손녀. 그는 가족 중에서는 영자와 함께 유이하게 덕수와 정서적 교감을 나눈다. ⓒ 영화 국제시장

영화 〈국제시장〉 제작에는 실제로 정치적 입김이 존재했다고 손경식 전 CJ회장이 증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상관일까? 〈카사블랑카〉도 프로파간다로 기획된 작품이었지만 지금은 명작 대열에 올랐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원정도박이 결국 최순실 게이트로 이어진 것처럼 세상일은 원래 알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덕수와 영자가 부부싸움을 하다 국기에 경례를 하는 장면에서 ‘애국심’을 느꼈다고 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같은 장면에서 전혀 다른 의미를 느끼지 않았을까? 눈살을 찌푸리는 영자의 모습은 국가주의에 매몰되는 개인을 드러내는 장면이 틀림없다.

 

영화의 문맥에서 보자면 감독은 외압을 넣는 사람의 수준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이 풍자라는 것을 들키지 않을 정도로만 장치를 설정해 둔 게 아닐까? 〈국제시장〉에는 마음대로 해석하는 즐거움이 있다.

필자 단비뉴스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글로 먹고 살고 싶은 청년들이 만드는 대안매체. '벼랑에 선 사람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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