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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하객’마저 짠한 청년들 결혼 풍속도

토요일인 18일 오전, 부산에 있는 ‘모르는 사람’ 이아무개(38) 씨 결혼식에 갔다. 처음 보는 ‘직장 동료’ 넷과 함께였다. 만남 장소인 부산진역 건너편 결혼식장 아래 편의점에서 어색하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 ‘모르는 사람’ 결혼식에 참석한 경험이 없었다. 경험자에게 말을 건넸다.

“어색해서 어쩌죠?”
“편하게 해요. 친한 척 좀 하고. 어차피 결혼식 정신없잖아요. 우리 신경도 못 쓸 거예요.”

인생 중대사인 결혼식의 풍속도가 달라졌다. 20–30대는 하객이 많이 참석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정작 참석할 친구들은 없어 하객 알바가 성행한다.

우리는 8층에 있는 결혼식장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로비로 들어서자 어르신들만 가득했다. 이삼십대로 보이는 젊은이는 우리 다섯 사람과 결혼하는 선배가 전부였다. 어르신들께 인사하느라 정신없던 선배가 잠깐 한숨 돌릴 때를 기다렸다. 지금이다 하며 나를 포함한 다섯 후배는 선배에게 축하 인사를 하러 다가갔다.


축의금 넣는 곳은 그대로 지나쳐 선배에게 직행했다. 선배는 잠시 눈이 흔들리더니 이내 웃었다. “진짜 축하드려요.” “결혼 축하드립니다!” 우리는 웃으며 선배 손을 잡았다. 아니, 0.1초 정도 잡았으니 스쳤다고 해야 할까? “어, 고마워!” 선배는 우리를 스치며 말했다. 눈은 허공에 있었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해 식장 안쪽에서 앞 순서 결혼식을 잠깐 봤다. 식이 끝나 막 부부가 된 커플이 친구들과 사진 촬영을 했다. “○○아 사랑한다!” “오오–” “와–!!” 40명쯤 되는 젊은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식장 안을 가득 메웠다. 그들은 촬영이 끝나고 우르르 함께 웃고 떠들면서 식당으로 향했다.


‘선배도 저랬으면.’ 처음 보는 선배인데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선배 결혼식에는 젊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210여 명 하객 중 30명쯤을 빼고는 어르신들이었다. “다른 곳도 이래요?” 경험 많은 동료에게 물었다.

"보통 그랬던 것 같아요. 우리같이 젊은 사람들은 시간이 또 금이잖아요. 결혼식에 참석할 시간도 없고, 축의금도 부담되니까. 더군다나 모처럼 휴일인데 평소 못한 나들이라도 가야 하지 않겠어요?"
다른 동료가 말을 받았다.
“요즘은 타지에서 결혼하는 경우도 많으니 시간 없는 젊은 사람들이 안 오는 거 아닐까요?”
“그럼 어르신들은 어떻게 오죠?”
“어르신들은 버스 대절해서 오시죠 뭐.”

“멀어서 시간 뺏기고 교통비도 부담”

《중앙일보》가 4월 29일 보도한 「각자도생 2030 “결혼 계획 없어 남 결혼식 안 가”」 기사를 보면 20대 이하에서 60대 이상 서울 시민 74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 2030세대는 ‘시간을 빼앗기고 장소가 멀어서’ ‘경조사비와 교통비가 부담돼서’ 결혼식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반면 5060세대는 ‘모임에 참여하기 위해’ ‘자존심 때문에’ 평균 월 2.5회 참석한다고 했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이 늘어나고, 청년들 자신의 삶도 팍팍하니 남 결혼식을 갈 여유도 이유도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결혼식을 하면서 젊은 하객이 없어 친구들 자리를 메워줄 사람도 없고 사진 찍을 친구도 없어 하객 알바를 고용한다는 것이다.

결혼식장 하객석에는 대부분 어르신만 자리에 앉아 결혼식을 지켜본다. ⓒ 임세웅

다행히도 선배 결혼식은 짧게 끝났다. 12시에 시작된 식은 주례가 없어 시간이 덜 걸렸다. 선배 부부가 직접 결혼선언문을 낭독하고, 선배 아버님의 덕담을 들었다. 나와 동료들도 웃으며 결혼식장에서 같이 사진을 남겼다. 결혼식의 절정은 선배가 스스로 부른 축가였다. 선배는 남진, 장윤정의 듀엣곡 ‘당신이 좋아’를 불렀다. “아– 꿀맛 같은 그대 사랑에–” 결혼식장은 순간 무도회장으로 변했다. 어르신들은 연신 “얼쑤!” “잘한다”를 외치며 손뼉을 쳤다.

"사진 촬영 하겠습니다, 친지분들 앞으로 나와주세요!"

어디 있는지도 몰랐던 젊은 사람들이 하나둘 보였다. 선배 친지는 넷, 신부 친지는 둘이었다. 괜히 반갑고 찡했다. “친구분들 앞으로 나와주세요!” 이제 나와 동료들 차례다. 이제껏 여유로웠던 선배 얼굴에 긴장감이 묻어나는 듯했다. 입꼬리가 살짝 내려갔고 눈꼬리는 파르르 떨렸다.


선배의 친구들은 나와 동료들 5명을 포함해 총 8명뿐이었다. “자 여기 보실게요, 사랑한다 ’’아 크게 외치면서 신부 안고 일어서세요! 친구들은 환호도 좀 해주시고요!” 선배가 있는 힘껏 외쳤다. “사랑한다, ○○아!” “와–!” 나 혼자 너무 크게 외쳤다. 분위기가 더 어색해졌다. 민망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어색한 시간이 끝났다. 선배는 몇 없는 사람들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표했다. “진짜 고맙습니다! 잘 살게요.” 우리 동료들과도 일일이 악수했다. 이번에는 ‘스쳐 가지’ 않았다. 선배는 힘주어 악수했다. 눈도 마주쳤다. 이번에는 동료들이 선배 눈을 피했다. 나는 피하지 않았다, 축하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었으니까.

’처음 보는’ 직장 동료들과 ‘모르는 사람’ 결혼식에 참석해 인증샷을 찍었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나 자신이다. ⓒ 임세웅

오늘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선배는 식권을 권하지 않았고, 우리 역시 받을 생각이 없었다. 나와 동료들은 식장을 나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리끼리 모인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에 결혼식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우리 중 하나가 말했다. “고생하셨어요. 다들 좋은 주말 보내시길!” 엘리베이터가 1층에 닿자, 우리는 그렇게 흩어졌다. 시계를 보니 12시 52분이었다. 52분 만에, 한 커플이 부부가 됐고 내 역할은 끝났다.

‘하객 많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알바 불러

’25,000원을 받으세요!’ 다음날 카카오페이로 돈이 들어왔다. 신랑, 신부와 하객 알바를 연결해주는 하객 대행 전문 플랫폼 ‘달콤한 패밀리’가 하객 아르바이트 ‘인증샷’을 보고 나에게 지급한 알바비다. 쉽게 돈을 벌었다는 생각에 좋다가도 괜히 마음이 씁쓸해졌다.


비록 모르는 선배로 만나 축하를 해주고 왔지만 무언가 허전한 생각이 들어 선배에게 개인적으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선배님! 인생 선배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부를게요. 제가 다 찡했어요.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카카오톡 메시지 앞에 1이 사라졌다. 답장은 없었다.

나를 비롯한 하객 알바생들이 결혼식장 뒤쪽 자리를 채우고 앉아 있다. ⓒ 임세웅

‘모르는’ 선배는 왜 어색한 연기까지 해가며 알바로 하객을 채웠을까? 궁금해서 이리저리 생각을 해보았다. 식장에서 본 모습으로 짐작하건대, 친구가 적어서는 아닐 것 같았다. 그는 사회성이 좋았다. 긴장한 가운데서도 활발했고, 유머러스했으며, 어르신들에게 공손했다.


나를 고용했던 하객 대행 전문 플랫폼 ‘달콤한패밀리’는 “신랑, 신부님들이 결혼식을 타지에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 친구들이 결혼식에 참석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하객 대행을 찾는다”고 말했다. 직장이 친구들 많은 성장지가 아니거나 결혼식 장소가 멀면 친구들이 참석할 수 없어 하객 알바를 찾는다는 것이다.


지난 2일 한국갤럽에 따르면 지난달 23일부터 이틀간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신뢰수준 95%에 표본오차 ±3.1%포인트)한 결과, 2030세대는 5060세대보다 결혼식 하객이 많은 것을 선호했다. ‘결혼식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좋다’는 항목에 40대 이상은 19–26%만 그렇다고 답한 반면, 20–30대는 32–44%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2030세대는 5060세대보다 결혼식에 많은 하객을 부르는 것을 선호한다. ⓒ 한국갤럽

20–30세대는 ‘결혼식에 하객은 많이 초대하고 싶은데, 친구들은 결혼할 생각이 없고 축의금이 부담되고 시간이 없어 오지 않으니’ 하객 알바를 부른다는 것이다. 그 선배도 그런 사정으로 하객 알바를 고용했는지 궁금해서 연락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취업난, 주거난, 결혼난으로 힘든 청년들은 이제 하객도 채울 수 없어 알바를 부르는 것은 아닌지. 그 선배에게 물어보려고 했던 것이 미안해졌다.

필자 단비뉴스(임세웅 기자)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단비뉴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글로 먹고 살고 싶은 청년들이 만드는 대안매체. '벼랑에 선 사람들'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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