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를 쓰는데 이렇게까지
개 목줄에 묶여 하루를 보낸 다음, 폐지를 줍는 일로 또 다른 하루를 채우는 남형도 님의 직업은 기자입니다. 무더위나 한파가 오더라도,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어떤 체험도 마다하지 않지요.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세상의 가장자리에 반드시 전해져야 할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남형도 님이 찾은 마음 성장의 세 가지 단서
• 알려야겠다는 오지랖
취재 중에 만난 한 장애인의 이야기에 잠이 오지 않았어요. 알리려면 뭐든 다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기획한 것이 직접 누군가의 입장을 체험해 보는 ‘체헐리즘’ 시리즈의 시작이었어요.
• 무언가를 바꿔낸 경험
기자 생활에 회의감이 들어 그만두었던 적도 있어요. 그럼에도 마음을 다잡고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가진 ‘선한 영향력’으로 무언가를 바꿔낸 경험 때문이었어요.
• 인류애 충전
세상엔 나쁜 소식만 있진 않아요. 선한 마음으로 대가 없이 누군가를 돕는 사람들도 많죠. 그런 분들을 취재하다 보면 저도 충전이 돼요.
“장애인 문제는 기사를 써도 잘 읽히지 않더라고요.
뭐든 다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체헐리즘’을 시작했어요.”
도서관의 미화 여사님 때문에 기자가 되었어요
대학교에 와서 기자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우연히 학교 도서관에서 보게 된 광경이, 도서관을 깨끗하게 치워주시는 미화 여사님이 숨을 돌리고 쉬시는 곳이 가장 더러운 쓰레기통 위더라고요. 뭔가 부조리하다고 느꼈어요. 다른 사람도 제가 봤던 이런 광경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자연스럽게 언론인을 꿈꾸게 되었죠. 그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이 사연을 기자 페이지에 적어 두었어요.
기자는 오지랖을 부릴 수 있는 유일한 직업
기자는 오지랖을 부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업 같아요. 감시, 견제의 역할을 주로 하는 기자도 있을 것이고, 몰랐던 일을 폭로하는 기자도 있겠죠. 저는 관심이 닿지 못한 가장자리의 목소리를 알리는 확성기의 역할이 되고자 해요. 놓치기 쉽지만 꼭 알아야 하는 중요한 이야기를 취재하고 글로 잘 전달해서 사람들에게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알리는 거죠.
장애인 문제에 관심이 많은 편이어서 관련된 기획 기사를 여러 건 썼어요. 그런데 조회수도 잘 안 나오고, 댓글도 잘 달리지 않더라고요.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어요. 특히 한 지체장애인의 이야기가 기억에 계속 남았는데, 인터뷰 말미에 저한테 “차라리 저희 같은 장애인들은 존엄사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얘기하셨어요. 그만큼 장애인으로 사는 게 힘들다는 거죠. 이야기를 듣고 밤에 잠이 오지 않았어요. 그냥 기사를 쓰고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게 심각한 고민을 가지고 매일 우리 곁에서 살아가고 있는 분들이 있는데, 우리는 모르고 있는 거잖아요. 어떻게 알려야 될지 고민을 하다가 뭐든 다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체헐리즘’이라는 기획을 시작하게 됐죠.
“휠체어를 타고 바퀴를 굴리자마자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구나.’ 느꼈어요.”
휠체어를 타고 바라본 세상은 너무 달랐어요
사람들의 관심을 이끄는 방법을 고민하던 중 ‘체험’을 떠올렸고,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쳐서 ‘체헐리즘’을 만들었어요. 직접 체험해서 누군가의 입장이 되어보자는 취지였죠.
‘체헐리즘’의 첫 기사는 휠체어 체험이었어요. 상상 이상으로 너무너무 힘들었죠. 휠체어를 타고 바퀴를 굴리자마자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니구나.’ 느꼈어요. 바닥은 울퉁불퉁했고, 들어갈 수 없는 가게가 절반이 넘었죠. 그렇게 체험한 내용을 기사로 옮겼는데 다행히 많은 분이 봐주셨어요. 시사 랭킹 1, 2위에 있는 걸 보고 ‘대중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구나.’ 생각했어요. 포기하지 않고 방법을 찾았던 게 다행이다 싶었죠.
‘체헐리즘’을 하면서 제일 고민되는 점은 ‘내가 충분히 누군가를 대변해서 전달하고 있나?’ ‘혹여나 왜곡한 내용, 부족한 부분이 없나?’인 것 같아요. 어쨌든 체험이라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이걸 보완하기 위해서 관련된 당사자분들에게 보완 취재를 충분히 하려고 해요. 시각장애인 체험을 한 기사가 나간 다음, 한 시각장애인 분이 관련 매체에 칼럼을 실어주신 적이 있어요. ‘장애인의 날에 흔하게 나오는 기사인 줄 알았는데, 제대로 잘 담아줘서 감사했다.’ 이야기하시는 걸 보고 좀 안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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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기자를 그만두기도 했었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른 것 같았거든요.”
아직 살만한 세상이구나, 싶었던 순간
최근에 했던 취재 중 ‘행운이’라는 진돗개와 함께 사는 할아버지를 취재했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할아버지가 최근 심장 수술을 받으셨어요. ‘내가 잘못되면 행운이가 갈 곳이 없구나.’ 생각에 입양까지 고려하셨죠. 혹시 모를 상황에서 다른 사람과 지내도 괜찮을 수 있게 행운이의 사회화 트레이닝을 돕기로 했어요. 그런데 트레이닝을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나서 행운이가 눈에 띄게 비실비실해졌어요. 알고 보니 병에 걸려 있었던 거죠. 할아버지는 수술비를 충당할 돈이 없으셨고요. 고민 끝에 ‘모금을 해보자.’ 결정했어요. ‘이게 잘 될까?’ 고민이 있었는데 모금을 시작한지 30분만에 끝났어요. ‘아직 살만한 세상이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뿌듯한 마음이 들었죠.
한 때는 회의감에 기자를 그만둔 적도 있어요
체험, 취재를 하다 보면 회의감도 많이 들어요. 기자 초년생 때는 ‘기사를 쓰면 누군가가 바라봐주고, 세상이 바뀌겠지?’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제가 수습기자 때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취재했는데 아직도 제대로 된 결론이 나지 않았어요. ‘열심히 알렸던 게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해요. 고민 끝에 기자를 그만두기도 했었어요. 제가 생각했던 것과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다른 것 같았거든요.
그럼에도 계속한 이유는 ‘선한 영향력’으로 무언가를 바꿔낸 경험이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 선생님이 억울하게 해고당할 위기에 처해 있다는 제보를 받은 적이 있어요. 다행히 취재로 해고를 막아냈죠. 그만두니까 오히려 그런 일이 더 생각났고, 다시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죠. 지금도 회의감이 들 때가 많지만 비관에 빠지지 않고 나아가려고 해요. 할 수 있던 하나도 놓치게 될 수 있으니까요.
“세상에 나쁜 일들만 있진 않아요.
아무런 대가 없이 누군가를 돕는 사람도 있죠.”
‘인류애 박살’나는 세상에 필요한 소식의 균형
사실 살다 보면 세상에 회의감이 들고, ‘인류애’가 박살 나는 일이 많아요. 누가 누굴 죽였고, 누가 사기를 쳤다는 안 좋은 소식들이 들리죠. 그런 소식만 접하면서 걱정하고 불안해하면 마음이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제가 느끼기엔 세상에 그런 일들만 있진 않아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아무런 대가 없이 누군가를 돕는 사람도 있죠. 소식의 균형을 맞추고 싶다는 마음에서 ‘인류애 충전소’라는 기획을 만들었어요.
‘인류애 충전소’를 취재하면서 저도 충전이 되는 것 같아요. 이번에는 소방관 부부에 대한 취재를 다녀왔어요. 쉬는 날 북한산에 올라왔다가 다친 여성분을 발견하고 헬기가 올 수 있는 곳까지 업어서 올라갔다는 거예요. 이렇게 남을 돕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분들을 보면 ‘세상이 돈의 논리로만 돌아가지 않는구나.’라는 걸 다시 깨달아요. 저도 더 잘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고요.
‘대충 하라’는 아내의 말이 도움이 돼요
체험을 하는 건 누군가가 되어본다는 거니까 감정적인 소모가 커요. 감정 이입을 잘하는 편이어서 힘들 때가 있어요. ‘이렇게 모르고 살았구나.’ 미안함이 들어서 눈물이 나온 적도 있고요. 그래도 제가 취재를 해야 알릴 수 있는 거니까 마음을 잘 다잡으려고 해요.
지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몸을 많이 써요.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데, 뛰다 보면 잡생각이 좀 없어지고 개운하더라고요. 달리면서 감정도 쏟아내고, 뛰다가 뭔가 생각나서 울기도 해요. 그렇게 몸을 자꾸 쓰면 마음이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글을 쓰기도 하고요. 글쓰기가 생각보다 치유의 효과가 좋거든요. ‘우울하다’, ‘무기력하다’로 뭉쳐진, 내가 다룰 수 없던 감정을 글로 적다 보면 그 실체를 바라볼 수 있게 되고 다룰 수 있는 무언가가 되더라고요.
그리고 아내와의 대화도 큰 도움이 돼요. 저에게 ‘열심히 하지 말고 대충 해.’ 얘기해 주는데, 그 말이 정말 큰 지지가 되더라고요. ‘세상에 나한테 대충 하라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구나.’ 싶었죠. 저는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게 거창한 것들이 아니라 이런 작은 응원과 지지의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 덕분에 6년 가까이 ‘체헐리즘’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독자들의 반응이 가장 큰 원동력이에요
‘독자들 의견을 어디에서 들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기사에 댓글을 많이 남기시는 걸 떠올렸어요. 용기를 내서 제 기사에 댓글을 남겨봤죠. 제 댓글이 ‘베플’에 올라가는 걸 보고 ‘독자분들도 이런 소통에 많이 목말라 있었구나.’ 깨달았어요. 그 이후로 댓글로 꾸준히 소통하고 있고, DM으로 기사에 대한 의견을 받기도 해요. 저한테 많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제 기사를 어떻게 봤는지 알아야 메시지를 날카롭게 다듬을 수 있으니까요.
독자분들에게 정말 감사해요. 제 활동이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구독자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기자 페이지 구독자 수가 1위다.’ 이런 이야기도 숫자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그만큼 많은 분들이 응원을 보내고 있다는 걸로 생각하고 있어요. 기사를 잘 써야 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기사 댓글을 보면서 힘을 얻어요.
“말이 안 되는 것에는 말이 안 된다고
이야기를 계속 해야죠.”
계속 이야기해야만 세상도 바뀔 테니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그냥 상식적인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임산부에게 밤샘 근무를 시킨 상황을 고발하는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그런 행동의 기저에는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는 시선이 깔려 있다고 봐요. 누군가의 아내이기도 하고, 이제 곧 태어날 아기의 엄마이기도 하다는 걸 그대로 바라봐 주었다면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예요.
말이 안 되는 것에 대해서 ‘말이 안 된다.’라고 이야기를 계속해야만 바뀌는 세상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를 알리는 역할을 계속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무언가 더 많이 시도하고, 더 많이 실험하고, 계속 고민하는 것이 제 영구적인 목표입니다. 더 길을 넓혀야죠.
남형도 님의 ‘내 마음을 성장시켜 준 것들’
- 아내와의 대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함께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았고, 아닐 땐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해준 덕분에 성장할 수 있었어요.
- 죽음에 대한 생각
어렸을 때 길을 걷다가 하늘에서 큰 돌이 떨어졌어요.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구나’ 느꼈죠.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삶의 우선순위가 명확해졌어요. 제가 세상에 남기고 싶은 것은 물질이 아닌 메시지더라고요.
- 글쓰기
글은 꼭 잘 쓰는 사람이 써야 하는 게 아니에요. 대단한 게 아니어도 무엇이든 기록을 남기다 보면 몰랐던 내 마음이 보이고, 나날이 성장할 수 있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