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자로 돌아가는 中 인터넷 비즈니스의 설계자
알리바바그룹 창업자로 중국 인터넷 비즈니스의 상징과 같았던 마윈(马云, Jack Ma) 알리바바그룹 회장이 오늘(10일) 경영 일선에서 공식 은퇴했다. 1998년 중국 항저우에서 직원 17명과 함께 사업을 시작한 지 꼭 20년째 되는 날이다. 마윈의 은퇴는 1년 전 예고됐었다.
마윈 회장은 원활한 경영승계를 위해 12개월 동안 회장직을 유지했으며, 2020년 알리바바 주주총회까지 알리바바 그룹의 이사회 이사로 활동 후 알리바바그룹에서의 공식 임기를 마친다. 알리바바그룹은 장융(张勇) 최고경영자(CEO)가 뒤를 이어 알리바바 그룹 이사회 의장을 맡는다. 장융은 지난 10여년 간 그룹 임원으로 알리바바그룹 성장에 기여한 인물이다.
10일은 마윈의 55번째 생일이자 중국 스승의 날(教师节)로, 향후 마윈의 행보와 연관이 있다. 마윈은 향후 교육 재단 설립 등 공익활동을 할 계획이다.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 ⓒ플래텀 |
“창업주가 회사를 떠나지 못하면 그 회사는 건강할 수 없다. 创始人如果离不开公司,公司就不可能健康发展”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
알리바바그룹은 지난 1999년 설립된 인터넷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어디에서든 비즈니스를 하기 쉽게 만든다”는 기업 비전 아래 파격적인 유통구조 개선 등으로 글로벌 IT기업으로 성장했다. 특히 중국을 ‘소비 경제를 움직이는 주체’로 견인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알리바바의 현 시가총액은 4천600억 달러, 한화로 약 549조원에 달한다. 이 알리바바그룹을 지금까지 이끈이가 바로 마윈 회장이다.
마윈은 중국 벤처기업인 중 순수 국내파로 분류되는 대표적인 인물이자 ‘황제’로 불리우는 기업인이다. 사업 초기 좌충우돌의 시기를 거친 마윈은 사업이 무르익기 시작한 뒤 중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서 주목받는 영향력있는 인물이 된다. 부도 따라왔다. 그는 2018년 중국 400대 부호 중 개인자산 39조로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성공에 마윈 자신은 크게 고무되지 않는 태도로 일관했다. 심지어 자신의 인생 최고의 실수를 “알리바바를 설립한 것”이라 말한 적도 있다. 2016년 러시아 상트페테르스부르그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 마윈은 “알리바바를 시작할 때 이렇게 큰 비즈니스가 될거라 예상하지 못 했다. 매일매일이 바쁘고, 사생활도 없다”고 말하며, “만약에 내게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할 기회가 생긴다면 결코 현재와 같은 일은 하지 않을거다. 두 번째 기회가 생긴다면 스스로의 인생을 즐길 것”이라 말한 바 있다. 마윈은 자신의 두 번째 인생을 교육자로 설정했다.
마윈은 사업 초기 여러 요인이 부족했다. 좋은 환경에서 명문대학을 졸업한 중국 재원들이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에서 고연봉을 꿈꿀 때, 대학 문턱을 간신히 넘은 마윈은 외국인 대상 여행 가이드와 평범한 영어 교사를 거쳐 간신히 창업자 대열에 섰다.
창업자로 처음 시작한 것은 기업 웹사이트 개발 서비스(차이나페이지)와 중국 전자상거래센터(EDI) 사업이었다. 하지만 둘 다 실패의 고배를 마신다. 이후 마윈은 향후 중국에서 발전할 인터넷 사업에서 자신의 역할 찾기에 골몰한다. 그는 자신의 경험에 근거해 ‘B2C 거래보다 B2B 거래 규모가 더 클 것이란 점에 주목하고, B2B 거래의 대상은 중국의 중소 제조기업이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수많은 중소 제조기업들이 중국 경제의 근간이자 희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율적이고 평등한 환경의 B2B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만든다면 중소 제조기업들이 대기업에서 벗어나 자율적으로 시장판로를 개척하며 비즈니스를 발전시킬거라고 확신했다. 결정을 한 뒤 그는 20여 명의 동료를 불러 모아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제안하였고, 1998년 말 동료 17명과 함께 고향 항저우로 돌아와 800 위안(한화 13만원) 밖에 안되는 월급으로 알리바바닷컴 개발에 몰두하였다. 알리바바그룹의 시작이다.
마윈은 1999년 3월 알리바바를 설립하고 같은해 4월 알리바바닷컴 웹사이트를 론칭한다. 이후 2003년 온라인 쇼핑 플랫폼 타오바오, 2004년 제3자 온라인 결제 플랫폼 알리페이, 2014년 뉴욕증권거래소 상장(IPO) 등 방점을 찍으며 성장일로를 걷는다. 알리바바그룹의 올해 1분기(2011년 4월 1일 ~ 6월 30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2% 증가한 1149억 위안(167억 달러), 이 기간 순이익은 309억5000만 위안으로 전년 대비 54% 증가했다. 핵심사업인 전자상거래 사업에서의 매출은 전년대비 44% 증가한 약 995억 위안을 기록했다. 중국 소매시장에서 연간 활성 소비자도 6억7400만 명에 달한다. 놀라운 건 꾸준히 증가추세라는 것이다.
항저우 아파트에서 회의 중인 마윈과 알리바바그룹 창업팀 ⓒ알리바바 |
알리바바그룹 초기 시절 ‘인터넷을 통해 중국 물건을 세계에 팔겠다’는, 당시로선 허무맹랑한 소리를 하는 마윈을 두고 사람들은 ‘미쳤다’고 평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광인(狂人)’. 이렇다할 성과를 못 보여준 마윈의 말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알리바바가 성공한 이유에 대해서 묻는다. 수많은 실패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지금은 없었을 것이다. 사업을 한다는 것은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 처럼 어려운 일이다. 전쟁에서 살아돌아온 사람은 성공한 것이다. 비지니스 역시 마찬가지다. 사업의 길을 걸을때 95퍼센트의 사람이 실패한다. 성공한다는 5퍼센트 안에 들고 싶다면 나와 타인의 실패 원인을 배워야 한다. 그런 실패를 똑같이 해서는 안되므로 규칙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고민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창업가는 타인의 실패를 통해 배운다.”
하지만 세간의 평가와는 별개로 여러 인재가 마윈의 이런 ‘미친’ 비전에 공감해 합류한다. 일례로, 알리바바 성장의 일등공신이라 평가받는 차이충신(蔡崇信) 부회장은 단돈 500위안(한화 약 10만원 수준)의 월급만 받고 합류했다. 차이충신은 엘리트 코스를 걷던 재원이었다. 미국 뉴욕에서 변호사이자 사모펀드 업무를 하던 그의 연봉은 당시 70만 달러(당시 한화 약 10억 원) 수준이었다.
가진 것 없이 사업을 시작한 마윈은 차이충신과 같은 인재를 영입해 자신에게 없는 것 세 가지를 성공요인으로 변화시킨다. 그는 사입초기 사업자금이 부족했고, 첨단기술에 대한 지식이 없었으며, 계획이 없었다. 이는 일반적으로 실패의 배경이었지만 마윈에게는 성공할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나는 사업자금이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한 푼이라도 아껴야 했기 때문이다. 성공은 돈이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니다. 돈이 있다고 성공한다면 아무리 멍청한 사람도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첨단기술을 몰랐기에 기술을 가진 엔지니어들과 협력해서 편리한 서비스를 만들 수 있었다. 또한 틀에 박힌 비즈니스 플랜에 얽매이기 보다 끊임없이 변화를 도모했다. 그것이 나의 유일한 계획이었다.”
“사업 초창기 지금처럼 성공할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사업초기 내 월급은 불과 90달러정도였고, 15~6년 전에는 직원들 월급만 제때에 줄 수 있기를 바랐다. 성공을 이룬 현재 알리바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알리페이와 같은 서비스가 아니다. 알리바바가 그동안 이룬 그 어떤 성과보다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알리바바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한 번도 IT, 컴퓨터, 과학에 대한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긴 안목을 가지고 우수한 사람들을 찾았다. 기술을 몰랐기에 기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재무에 밝지 않았기에 재무에 탁월한 사람을 영입했다. 중요한 것은 CEO는 자신의 강점과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인재들과 함께 할 지가 아니라 인재가 어떻게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 할지를 파악하고 그에 맞는 비전을 제시할 줄 알아야 한다.”
마윈의 리더십은 서유기에 나오는 삼장법사 리더십에 비유되곤 한다. 능력이 탁월하지만 실수가 잦은 손오공과 게으르고 능력이 부족하지만 대장부의 호탕함과 유머를 지닌 저팔계, 개인주의인데다 포부 없이 주어진 만큼만 성실히 일하는 사오정을 아우르는 것을 말한다. 마윈은 손오공처럼 탁월한 능력은 없지만 각양각색의 구성원에게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고 이들을 온화한 리더십으로 이끌어 최종 목표를 달성해 내는 것에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다. 그는 비록 기술 지식이 어둡지만 최고의 인재를 발굴하고 설득하여 자신이 방향키를 잡은 배에 태우는 능력이 있다.
그는 삼장법사 리더십을 사업 다각화 전략에서도 발휘한다. 온라인 결제 시스템과 모바일 서비스, 물류 시스템 등 알리바바그룹의 부족한 역량을 채우기 위해 분야의 전문 기업을 발굴하여 M&A와 지분 인수를 결정한다. 그가 내린 그룹 다각화 전략은 빠르게 변화하는 IT 시장 흐름에 적중하여 알리바바그룹은 거대한 인터넷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 ⓒ플래텀 |
마윈은 단지 돈을 버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반복해 이야기 해왔다. 아울러 기회를 대중이 불평하는 것에서 찾았다.
“부유한 사람들에게 돈을 버는 것은 쉽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서는 어떻게 돈을 벌수 있을까?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돈을 벌려면, 먼저 그들을 부유하게 만든 후, 그 다음에 돈을 벌면 된다. 가난한 사람들도 모두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그들을 부자로 만들어준다면, 기업에게 엄청난 가능성이 생긴다. 좋은 사업가는 5달러 가진 사람에게 50달러를 갖게 만든 뒤 그에게서 2달러를 버는 사람이다.”
‘혁신’이란 기존의 현상을 변화시키는 파괴력을 가진 ‘무엇’이다. 단, 단발성 문제 해결이나 일시적 현상, 잠깐 뜨고 지는 것을 혁신이라 일컬을 수 없다. 중장기적으로 하나의 현상 변화를 시작으로 연쇄반응처럼 산업 전체로 확산되는 확장성과 파괴력을 지닌 것이어야 한다. 마윈은 구조적 난제들이 산재한 중국 유통시장을 알리바바닷컴이라는 B2B 전자상거래 플랫폼으로 ‘혁신’하는데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알리바바 기업의 사명을 ‘중국의 희망인 중소 기업들의 새로운 비즈니스 판로를 알리바바로 열어주고 그들이 성장하도록 돕는 선순환 생태계 구축’으로 삼았다.
마윈은 인문학적 소양을 가진 창업가답게 기업가의 역할을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경제적 난제와 정치적 갈등, 부의 문제 등 여러 사회적 갈등이 존재한다. 경제적 발전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갈등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기업가는 그 갈등 가운데서 기회를 발견하는 사람이다.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이다. 기업은 타인을 위해 그리고 사회를 위해 변화를 갈구해야 한다. 기업은 사회에 대한 고민과 문제 인식을 바탕으로 사회에 이바지 할 수 있는 방안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준비가 되어 있다면 기업가는 필요치 않다. 기업가는 어떻게 해나갈지 판단하는 사람이다. 오늘을 노력하면서 10년의 시간을 써보라. 지금 준비가 안돼 있는 상황이 우리에게 노력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향후 세계 시장은 기업가정신으로 무장한 청년들이 변화를 이끌것이다. 결제든, 물류든, 국가의 정책이든 간에 누군가는 추진하고 진보해야 하며 지불해야 한다. 알리바바는 이런 노력과 염원으로 변화해 왔다. 알리바바는 기업이 아니라 하나의 경제체제에 가깝다. 마치 캘리포니아가 하나의 경제 체제이고, 주장삼각주(珠三角)와 창장삼각주(长三角)가 경제 체제인 것과 같다. 알리바바 체제는 공중에 있고 창조에 있으며 이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이 체제는 세계를 넘고, 시공간을 넘는 것이 될 것이다.”
또 그는 ‘스타트업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나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라 ‘가장 좋아하는 일’에서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스타트업에게 있어 수익모델도 중요하고 사업 아이디어도 중요하겠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못견디게 즐겁고 좋아하는 일을 하게된다면 거기에서 ‘혁신’이 탄생한다. 처음부터 그림을 크게 그릴 필요가 없다. 작게 시작해서 가장 쉽게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이는 연애와 같다. 그 무엇보다 하는 일이 사랑하는 존재여야 한다”
마윈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이 알리바바그룹의 102년 장수다. 중국에서 한 세기(100년)는 ‘평생’을 의미한다. 마윈은 98년 알리바바를 설립하면서 한 세기(100년) 동안 살아남는 장수 기업을 세우고자 한다고 공공연히 강조했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알리바바그룹은 이제 갖 약관에 접어든 젊은 기업이다. 알리바바그룹은 마윈 부재와 함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자타공인 리더십 귀재가 이탈한 뒤 남은 82년을 채우려면 현상유지만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장융 차기 회장이 ‘영호충’이 될지 ‘악불군’이 될지는 두고봐야 알 일이다. 마윈이 없는 알리바바그룹과 교육자로 돌아올 ‘풍청양 사부’ 마윈의 행보를 주목해 보자.
글: 조상래(xianglai@platu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