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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이상은 보셨죠?’ 한때 품절되던 만화잡지...다 어디로 갔나요

82년 <보물섬> 이후 시작된 만화잡지 전성시대

‘레드문’, ‘리니지’등 명작 만화 탄생

‘슬램덩크’, ‘드래곤 볼’ 등 일본 인기 만화 수입도

9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몰락

좋아하는 웹툰이 업로드되는 요일을 손꼽아 기다리는 분들 많으실 겁니다. 지금은 포털이나 웹툰 전문 플랫폼에서 만화를 연재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만화가로 데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만화잡지에 연재하는 것이었죠. 당시의 청소년들은 잡지가 발간되는 날 설레는 마음으로 모아둔 용돈을 들고 서점으로 향하곤 했는데요. 요즘은 몇 개 남지 않은 만화 잡지, 어떻게 태어나 사랑받고 또 위기를 맞이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만화 잡지의 탄생

한국 최초의 만화잡지는 1948년 창간된 <만화 행진>입니다. 이후 50년대 중후반까지 만화 잡지들이 줄지어 탄생했지만, 열악한 경제환경과 만화방의 등장으로 거의 다 폐간되고 말죠. 만화 잡지가 다시 전국의 청소년을 사로잡기 시작한 것은 80년대의 일입니다. 1982년 월간 <보물섬>이 창간된 이래로 최초의 주간 만화 잡지 <아이큐 점프>, <소년 챔프> 등 쟁쟁한 후발주자들이 등장했죠.

<댕기>, <윙크>,<이슈> 등의 순정만화 잡지 역시 대단한 전성기를 누렸다 ㅣ 출처 네이버 블로그 ‘사쿠라 미캉’

순정만화 잡지의 기세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91년 첫 선을 보인 <댕기>부터 <윙크>와 <밍크>, <이슈>, <나나>, <파티> 등이 연이어 탄생하며 소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죠.

만화잡지의 시초는 일본이지만, 전성기 때의 한국 만화 잡지는 일본 못지않은 호황을 누렸는데요. 10만 부 이상은 기본, 90년대 만화잡지의 최전성기 때 <아이큐 점프>는 60만 부까지 팔리기도 했습니다.

명작의 산실

그렇다면 이들 만화잡지를 통해 탄생한 작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만화 잡지 르네상스를 촉발한 <보물섬>에서는 김수정 작가의 ‘아기공룡 둘리’와 이진주 작가의 ‘달려라 하니’가 탄생했고, <아이큐 점프>에서는 이현세 작가의 아마게돈, 황미나 작가의 무영여객, 슈퍼트리오, 김수용 작가의 힙합 등이 태어났죠. <아이큐 점프>는 국내 작가들 작품뿐 아니라 일본의 만화들도 소개했는데요. 그 유명한 드래곤 볼, 소년탐정 김전일 등이 <아이큐 점프>를 통해 국내 독자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소년 챔프>에는 게임으로도 만들어진 이명진 작가의 라그나로크, 이영일·이우영 작가의 검정 고무신 등이 연재되었고, 폭발적인 인기를 끈 일본의 농구만화 슬램덩크 역시 <소년챔프>를 통해 한국에 소개되었습니다. <코믹 챔프>로 제호를 변경한 이후에는 김태관·임재원 작가의 <짱>이 인기를 끌었죠.

서울문화사의 <윙크>와 <아이큐 점프>를 넘나들며 왕성한 작품활동을 한 황미나 작가

<윙크>에도 명작이 수두룩합니다. 황미나 작가의 레드문, 신일숙 작가의 리니지, 강경옥 작가의 노말시티를 비롯해 천계영 작가의 언플러그드 보이, 원수연 작가의 Let 다이, 나예리 작가의 네 멋대로 해라, 박소희 작가의 궁 등이 연재되었죠.

90년대 후반부터 쇠퇴기 진입

언제까지고 승승장구할 것 같던 만화잡지 업계는 그러나 9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위기를 맞이합니다. 청소년보호법이 제정되면서 작가들의 표현 방식뿐 아니라 만화의 전시·판매에도 많은 제약이 생겼고, IMF 시기에 환율이 높아지자 잉크와 종이를 만드는 펄프, 일본 만화 수입을 위한 비용은 높아진 반면 국민들의 소비 심리는 위축되어 타격을 입었죠.


이어 찾아온 인터넷 시대 개막으로 청소년 층에게는 만화 이외의 오락거리가 많이 생겼고, 그마저도 만화를 스캔 한 스캔본이 돌아다니면서 출판사들은 만화로 수익을 내기 힘들어졌죠. 여기에 일본 만화의 무분별한 수입까지 더해지면서 한국 만화 시장은 점점 힘을 잃어갑니다.

2003년부터 포털의 웹툰 플랫폼이 본격적으로 출범하기 시작했다 l 출처 (좌) 네이버 블로그 ‘대단’ (우) donga.com

물론 만화라는 장르 자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2003~2006년 사이에 다음, 네이버, 엠파스, 야후 등의 포털 사이트가 연이어 자체 웹툰 서비스를 론칭하면서 웹툰의 전성기가 시작되었죠. 출판만화가들 중 일부는 웹툰으로 넘어왔고, 이후부터는 아예 웹툰을 기반으로 하는 작가들이 탄생합니다. 전에는 만화잡지를 통해 연재하던 작품이 단행본으로 따로 발간되었다면, 이제는 웹툰에서 인기를 끈 작품을 단행본으로 출판하는 경우가 흔해졌죠.


포털의 웹툰 플랫폼이 등장할 즈음, 주간 발행으로는 버티기 힘들어진 만화잡지들은 격주간 발행으로 바뀌었고 다수의 잡지들이 폐간하거나 온라인 플랫폼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아이큐 점프>와 <윙크>를 발간하던 서울문화사 역시 온라인으로 <마녀 코믹스>와 <빅툰>을 운영 중이죠.

누가 뭐래도 웹툰이 대세지만, 종이 만화의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분명 있습니다. 편하게 누워 만화책을 볼 수 있는 만화방이 속속 부활 중인 한편, ‘우아한 형제들’은 최근 격주간 온라인 만화잡지 <만화경>을 론칭했는데요. 웹툰 플랫폼인데 굳이 ‘만화잡지’라는 정체성을 부여하고 <만화경>이라는 이름을 붙인 데에는 이유가 있겠죠. 손으로 넘겨보는 만화잡지를 연상시키는 레이아웃과 손글씨 디자인 등 아날로그 한 감성을 녹여 두었다니, 왕년의 만화잡지 팬들의 반응이 어떨지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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