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사이에 있는 여성, 누군가 했더니…
이수영 회장의 기부의 첫 걸음은 어머니한테서 배웠는데요. 가난하던 시절 어머니께서 전쟁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힘들어 하니 떡을 나눈 것이었는데요. 어머니는 이 제안은 딸(이수영 회장)이 했다고 동네 사람들에게 말했던 기억이 선명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가난하지만 주는 자가 되어보리라 생각했는데요.
서울대 법대의 다니던 이수영 회장은 대학교 3학년 때 사법고시를 준비하게 됩니다. 고시에서 떨어지고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실패를 맛보게 되는데요. 우연히 영어 학원에서 신문 기자 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됩니다. 이수영 회장은 난생처음 겪은 그 실패가 오히려 행운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녀는 기자 생활을 하며 농업과 공업에 관심을 갖게 되는데요. 때마침 목장을 하던 주간한국 국장으로부터 돼지 두 마리를 선물 받게 됩니다. 아버지가 남겨주신 돈으로 안양에 농장을 차리게 되는데요. 후에는 돼지가 1000여마리, 소가 15마리까지 규모를 키웠다고 합니다. 그녀는 본격적으로 기자에서 목축업자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수영 회장은 우연히 사람들이 목장 부근에 있는 모래를 퍼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을 사업 수단으로 삼아 본격적으로 모래 사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건설 붐이 일어날 때라 사업은 단 시간에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모래와 소를 정신 없이 팔기 시작하면서 이수영 회장은 본격적으로 사업의 큰 손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또한 이수영 회장 기부만큼이나 화제가 된 것은 82세에 이룬 초혼인데요. 서울대법대 동기동창생인 김창홍 변호사와 82세에 결혼을 올렸습니다. TVN 유퀴즈온더블럭에서 이수영 회장의 남편은 이수영 회장의 기부를 끝까지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수영 회장은 과학자를 키우는 것이 국력을 키우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부동산 재산까지 정리하는 중이라 곧 1000억의 기부를 채울 것이라고 했는데요. 이수영 회장이 죽고 나서도 손자가 재단을 운영하여 카이스트에 지원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수영 회장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한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