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살릴수록 오히려 돈 못 벌고 대접 더 못 받는 의과대 전공
의대 6년+인턴 1년 거쳐야 전공 택해
OO과 전공의? 편차 심한 지원율
'사명감' 갖는 과일 수록 인기 떨어져
기피과, 인기과 의미 없다는 빅 5병원
28시간 동안 수술을 진행한 한 외과 의사가 쪽잠을 자는 모습 |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 생활'. 식사 도중 한 숟갈 뜨기도 전에 콜이 와 수술실로 달려가고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직업이기에 예민할 수 없는 현실감을 제대로 담아냈는데요. 중간중간 감동과 재미를 녹여내 많은 인기를 받고 있죠. 극 중 등장하는 의대 99학번 동기들은 각각 흉부외과, 소아외과, 산부인과, 간담췌외과, 신경외과 이렇게 다른 과에서 고군분투합니다. 그런데 엘리트라고 불리는 이들 다섯 명이 선택한 과가 현실에서는 '비인기과'에 속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오늘은 사람을 살릴수록 대접받기 어렵다는 의과대학의 비인기 전공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의대생들은 어떻게 과를 선택할까?
일반적인 의과대학의 커리큘럼은 예과 2년, 본과 4년으로 이뤄집니다. 이후 필기, 실기로 나누어진 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하면 일반 의사 자격이 주어지죠. 이때, 한의사, 치과의사는 의사와 다른 개념이니 주의해야 합니다. 이후 대형 대학병원 등에서 1년간 인턴 생활을 거치는데요. 의학 드라마에서도 여러 과를 돌아보며 미래를 그리는 인턴들이 자주 등장하죠. 다양한 과의 수술실, 진료 모습 등을 보고 배우며 선택할 과를 정하는 기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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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에 지원한 후 합격하면 3~4년의 레지던트 생활을 해야 합니다. 외과, 내과, 가정의학과, 일반의학과를 제외한 과는 4년을 거쳐야 하죠. 각 병원마다 과별로 채용할 인원이 한정되어 있어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합격 후 레지던트 생활 동안에는 'OO과 전공의'라는 명칭이 붙게 되죠. 이후 전문의 시험을 거쳐 합격하면 'OO과 전문의'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 살릴수록 인기 없다는 기피과
가천대 길병원의 2020년도 레지던트 1년 차 모집 결과.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의 지원자는 없었다. |
주요 수련 병원 2020년도 전공의 모집 결과에서 유난히 저조한 지원율을 보이는 과가 있습니다. 병원마다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흉부외과,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가 눈에 띄었는데요. 모든 과가 누군가의 생사를 책임질 수 있지만 특히 이 과들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 의사 유튜버는 "사람을 살릴수록 인기가 없는 과들이 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는데요. 과거 의사의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과였지만 현재는 상황이 달라졌죠. 환자를 살리지 못해 받아야 하는 유가족들의 원망, 의료 소송, 전공의 기간 동안 주 100시간 이상을 일해야 하는 높은 업무 강도가 공통적인 이유입니다.
<극한 직업>도 인정한 극한 '흉부외과'
흉부외과의 경우 2019년 기준 레지던트가 1명도 없는 대학병원이 한 둘이 아닐 정도로 국내 지원율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과인데요. 심장, 폐 등 생명과 직결된 신체 부위를 다루다 보니 의료 분쟁에 휘말리기 쉽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환자가 중환자로 수술실, 응급실, 중환자실을 왔다 갔다 하며 밤샘, 초과 근무를 기본으로 해야 하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빼곡히 채워진 한 외과 전공의의 시간표(우) |
실제로 흉부외과 전문의는 방송 <극한 직업>에 두 번이나 방영될 정도로 높은 근무 강도로 유명합니다. 흉부외과 이외에도 신경외과, 외상외과 등 수술이 잦은 대부분의 과들 역시 제대로 된 휴식시간조차 가질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한 외과계열 전공의는 병원 근무표 내 근무시간은 주 80시간이지만 실제론 130시간 정도를 일한다고 폭로했는데요. 이틀 동안 2시간 자는 경우도 흔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소아 = 성인 축소판? 소아청소년과
소아청소년과는 소아과로 불리다 2007년 이후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고 출산 시대였던 과거엔 어느 정도 인기가 있었으나 사그라드는 추세입니다. 2020년도 전공의 모집에선 정원의 70%도 확보하지 못했죠. 이에 레지던트 기간을 3년제로 전환할지에 대한 여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소아청소년과 역시 업무 강도를 만만히 볼 수 없는데요. 작년 인천의 한 병원에서 숨진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36시간 연속 당직을 하다 사망하였는데요. 원인이 과로사로 추정되며 지켜지지 않는 근로 시간에 대한 지적이 있었습니다.
성인의 축소판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소아는 또 다른 생명으로 불릴 만큼 신체 기관, 면역력, 체력 등의 면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 응급 환자의 경우 생명을 잃을 수 있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합니다. 사용 약물부터 수술 방법, 진료 과정 역시 성인 환자와 다른데요. 통증에 민감할 뿐 아니라 방사선을 우려하는 보호자 때문에 정밀 검사 역시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방송 <슬기로운 의사 생활>에선 방사선 노출을 우려해 MRI 검사, X-RAY 촬영을 거부하는 보호자가 그려지기도 했죠.
과실이 없어도 보상해야 하는 산부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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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을 다루는 산부인과는 의료 사고와 소송의 위험이 매우 큽니다. 산부인과 지원율이 현저히 낮은 이유에는 '무과실 보상제'라는 법규가 있습니다. 법적으로 분만실에선 과실이 없어도 무조건 위자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은 심적, 경제적 부담을 지게 하죠. 한 산부인과 교수는 "이대로 가다간 산부인과의 미래는 절망적"이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수입만을 따져서 전공의가 되는 것은 비윤리적이나 약 11~12년의 수련과 학업 기간을 고려한다면 합당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게 보이네요.
2020년 처참한 결과, 가정의학과
주요 수련병원 가정의학과 전공의 모집 현황. 빨갛게 표시된 부분이 모두 미달된 병원이다./의학신문 |
최근까지도 인기과로 꼽히다 약세를 보인 과도 있었습니다. 바로 가정의학과인데요. 전국에서 가정의학과를 지원한 의사는 정원 192명에 훨씬 못 미치는 134명이었습니다. 기피과, 인기과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빅 5 병원에서도 미달 사태가 속출했죠. 상급종합병원에서 경증 환자 진료를 줄이는 추세인데요. 그 결과 비교적 경증 환자를 진료하는 가정의학과의 입지가 줄어든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 수련병원에선 단기적으로 사태를 막기 위해 인턴 미수료자에게 전공의 지원 자격까지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3년제 전환으로 희망이 보인다는 내과
3년제로 동일하게 전환했음에도 비인기과에 머무른 외과와 희비가 엇갈린 상황이다. |
외과와 마찬가지로 환자 대다수가 중환자인 내과 역시 비인기과 중 하나였습니다. 비현실적으로 낮은 의료 수가는 높은 업무 강도에 비해 그에 따른 수입을 만들어 줄 수 없었죠. 잦은 의료소송으로 골머리를 앓기도 합니다. 중환자실 환자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과이기에 적극적인 인력 보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는데요. 2017년부터 내과 전공의 기간은 4년에서 3년으로 단축되었습니다. 수련 기간을 줄여 내과 지원 동기를 유발하기 위함이었죠. 결과적으로 내과는 전공의 특별법의 가장 큰 수혜자로 꼽히며 지원율이 상승하는 추세입니다.
"기피과 의미 없어" 지원자 몰리는 빅 5병원
빅 5 병원에선 비인기 과인 외과, 산부인과 등의 지원율 역시 높았다. |
기피과, 인기과의 구분 없이 수많은 지원자가 몰리는 곳도 있습니다. 국내에서 '빅 5병원'으로 꼽히는 가톨릭중앙 의료원,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세브란스병원인데요. 물론 재활의학과, 정신건강의학과, 영상의학과 등의 인기과 지원율에 비해선 떨어지지만 대부분의 과에서 정원을 훨씬 넘는 지원자 수가 눈에 띄었습니다. 해당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면 전공의 정원이 많아 체계적인 수련 시스템은 물론 안정적인 수입을 벌어들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죠. 하지만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등의 과에선 여전히 지원자가 부족해 낮은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병원뿐 아니라 지방 도시 보건소 역시 의사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
반면, 지방 수련병원의 경우 비인기과가 아닌 인기과에서도 정원이 미달되었는데요. 전공의 정원을 채우지 못한 29개 수련 병원 중 18개가 지방에 위치해 있습니다. 비교적 불안정한 시스템과 부족한 전공의 수가 주요 원인으로 보입니다. 영남대병원, 칠곡경북대 병원은 산부인과 지원자가 0명, 울산대병원, 제주대병원 등에선 소아청소년과 지원자가 0명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환자들 역시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병원을 찾게 되는데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에선 국립 공공의료대학원 설립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 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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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의대생들이 기피할 수밖에 없다는 비인기과에 대해 알아보았는데요. 무작정 성형외과, 피부과 등의 인기과를 택하는 현상을 비난할 순 없습니다. 그들 역시 의사가 되기 위해 오랜 기간을 버텨왔기 때문이죠. 다만, 다가올 미래를 생각한다면 기피과 전문의의 중요성이 더욱 대두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책임지는 과인만큼 적절한 처우 개선이 이뤄져야 점진적으로 인력을 보강할 수 있지 않을까요?
글 이선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