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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오면 물이 차는 반지하 살던 시골 출신 만년알바생, 지금은...

반지하에서 연 매출 70억까지, 강태중 대표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한 번쯤 로또 당첨, 인생 역전을 꿈꾸곤 합니다. 획기적인 사업이나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도 있으나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이 주는 편안함을 버리는 데에는 큰 결심이 필요하죠. 오늘 소개할 주인공은 '월급이 보장되는 취업'보다 말 그대로 신분 상승을 목표로 공대를 자퇴했다는데요. 홍대를 비롯한 서울 곳곳에서 총 13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새로운 삶을 그려나가고 있는 위드유의 강태중 대표를 만나보았습니다.

무작정 서울 상경, 반지하부터 시작

과거 강태중 대표의 모습 / 본인 제공

"중 3 때까진 말해도 믿지 못할 만큼 시골에 살았어요. 진짜 아궁이에 불 때고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마셨죠." 어려서부터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강 대표는 20세부터 가난으로부터 탈출해야겠단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한 공과대학 기계 시스템공학부에 입학했지만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평범히 공부해 취업한다고 인생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강했죠. 결국 휴학 후 서울로 상경해 친구 집에 얹혀살면서 그의 서울 살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본문과 관련 없는 이미지 / hani

고향을 떠나 올라온 서울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비가 오면 물이 차는 반지하를 전전해야 했고 가구는 남들이 버린 것들을 주워 사용했죠. "물류, 유통, 방판(방문판매) 진짜 웬만한 알바는 다 해봤어요. 막차가 끊겼을 때에는 돈 아끼려고 지하철 첫 차를 기다려 타고 가기도 했죠." 하루 4시간씩 쪽잠을 자며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지만 돈은 쉽게 모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포기하자'라는 생각으로 군대로 떠났는데요. "나이 먹고 간 군대가 쉽진 않았는데 너무 행복했어요. 삼시 세끼 나오고 잠을 재워주잖아요. (웃음) 운전병이어서 시간적 여유가 좀 남아 책 100권 읽기에 도전했어요. 그렇게 27살에 전역했죠"

제대 후 첫 사업 도전, '영상 제작'

전역 후에도 여전히 취업보단 사업에 관심이 높았습니다. 결국 구상했던 여러 사업 계획 중 하나를 친구들과 실행에 옮기게 되었죠. 그의 첫 사업 아이템은 결혼식, 돌잔치 영상 제작 및 편집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공급이 적어 건당 5~10만 원이라는 쏠쏠한 수익을 낼 수 있었다는데요. "툴 20~30개 정도를 만들어놓고 활용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하락세였죠. 업체들에서 아예 무료 서비스로 제공하기 시작했거든요."라며 당시 사업을 회상했습니다.

서빙으로 4년 반만에 모은 1억 4천

아르바이트 시절 매일 적어둔 메모

첫 사업과 함께 생계를 위해 홍대의 한 술집에서 야간에 서빙 일을 병행했습니다. 사업은 하락세를 탔지만 되려 일하는 동료, 손님, 사장님과 친분을 쌓으면서 외식 사업에 눈을 뜨게 되었는데요. "단골손님들한테 나가는 서비스는 정말 작은 건데도 그 반응이 돌아오는 게 신기했어요. 오묘한 감정을 느끼면서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죠."라며 외식업의 매력에 빠지게 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전역 후 전 재산은 98만 원, 결국 5년 안에 1억을 모으겠단 목표로 밤낮없이 일해야 했죠. 그렇게 아끼고 아끼며 쉼 없이 서빙 일을 한 결과 4년 반 만에 1억 4천만 원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자수성가해 사업에 성공한 당시 사장님에게 가르침을 얻으며 차근차근 사업을 준비했죠.

식당이 아닌 회사를 차리다

직원들과 떠난 워크샵 / 본인 제공

강 대표는 힘겹게 모은 1억 4천을 두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식당 하나를 오픈할 수도 있었지만 이내 생각을 바꿔 동업자 2명과 회사를 열어야겠다고 결심했죠. "식당 일을 하면서 알았어요. 누구나 실패할 수 있다는걸. 1억 4천으로 가게를 열어서 망하면 저는 다시 5년을 그렇게 일해야 하니까 회사를 세워야겠단 생각이 들었죠."라고 이야기했는데요. 롤 모델이었던 가게 사장님은 회사의 주주가 되며 인연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렇게 위드유란 회사가 세워졌고 이후 3개의 매장을 연달아 오픈했습니다. 그중 첫 번째는 망해가는 파스타집을 인수하며 시작했죠. 업종 변경도 생각했지만 결국 메뉴와 매장을 리뉴얼해 그대로 파스타를 팔아보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sns 마케팅을 염두에 둔 덕분에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월 최고 매출 1억 4천을 달성할 정도였죠. 나머지 두 가게 역시 성공리에 오픈을 마쳤습니다.

가게로 번 돈으로 다시 가게 열어

매장 오픈 공사 당시

3개의 가게를 열어 번 돈으로 4번째, 5번째 가게를 열며 현재 총 13개의 가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작년 기준 연 매출 70억을 달성한 회사는 가게를 담당하는 팀장(점장 개념)들을 교육하고 가게 운영을 서포트하는 역할을 맡고 있죠. 강 대표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바로 "왜 그렇게 가게를 많이 오픈하나요?"입니다. 그의 회사를 아는 이들은 '홍대 백종원'이란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죠.

첫 사무실 기념 행사 때의 강 대표

그는 "기업의 사명은 성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매장을 늘리고 있으며, 질적인 성장에도 물론 집중하고 있지만 양적으로도 성장해야 회사의 많은 분들에게 성장의 기회를 주고 회사가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답변을 했습니다. 이미 성공한 몇 개의 가게만 운영하는 게 더 높은 매출을 달성할 수도 있으나 이런 선택으로 그는 사고 영역은 물론 인적 네트워크를 넓힐 수 있었습니다. 많은 가게를 운영하고 있지만 계속해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어 이전과 생활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고 설명했죠.

폐업률 높은 외식업, 도전해도 될까요?

youtube @ 생존장사

사실 외식업 업종에 있어 블루오션은 굉장히 많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치킨집, 카페가 즐비한 이유에 대해 "찾아보면 없는 업종들이 정말 많아요. 하지만 그만큼 너무 생소하기 때문에 실패할 확률이 높죠. 저 역시 라오스에서 맛본 음식으로 가게 열었다가 망했어요. 평은 좋았는데.. 아마 너무 생소해서가 아닐까요?"라고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이 원하지만 기존엔 없는 것이 외식업 업종 선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했죠. 물론 이 기준이 한 골목이 될 수도, 한 지역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둬야 합니다.

 

그는 외식업이 쉽게 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준비 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업과 달리 국내 외식업은 문턱이 낮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 아무 준비 없이 뛰어들다 보니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죠. "아는 분이 외식업은 종합 예술이라고 표현하시더라고요. 인테리어, 메뉴 개발, 직원, 매출 관리 모든 걸 총괄해야 하는 만큼 저 역시 그 의견에 공감합니다."라며 외식업에 도전해 충분히 성공할 수 있으나 그만큼의 준비가 필요함을 강조했습니다.

서민들에게 '선한 영향력' 전하고파

태국 가맹점 직원들과 강 대표 / 본인 제공

얼마 전 시작한 유튜브는 아직은 수입보다 지출이 큰 상황입니다. '외식업 시장이 얼마나 힘든지 알려주는 것',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보 제공' 두 가지를 생각하며 구독자 5만 명을 목표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죠. 그는 "아직 채널이 진짜 작거든요. 도움이 필요하신 분들이 댓글로 편하게 연락 주시면 좋겠어요."라며 남다른 바람을 이야기했는데요. 현재 강 대표는 또 다른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곧 3~4개의 가게를 한 지역에 열기로 했는데요. 상권이 발달되지 않은 곳에 제2의 익선동, 열정도와 같은 골목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합니다.

그의 최종적인 목표는 많은 이들의 '성장'에 작게라도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제가 됐건 회사가 됐건 누군가의 인생에 있어서 전환점이 되는 게 꿈이에요. 돈에 대한 욕심은 없는데 명예욕이 조금 있는 편이라서(웃음)"이라고 이야기했죠. 본인의 서비스, 노력으로 더욱 많은 이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강태중 대표. 그는 본인을 포함한 서민들이 인생에 희망을 가지고 더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꾸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새로운 가게를 열고 실패하고 또다시 도전하며 누군가의 인생의 전환점을 꿈꾸는 강태중 대표의 앞으로가 더욱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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