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새롭게 출시되는 스마트폰 앱 개수가 200만개를 훌쩍 넘는 걸 보면 우리는 ‘앱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고 바도 무방합니다. 이러한 와중 특정 세대를 제대로 공략해 ‘20대 여성이라면 모를 리 없는’앱을 만들어냈다면 정말 대단한 성과를 이룬 걸 텐데요. 10~20대 여성이 옷을 살 때 이용하는 필수 앱으로 자리 잡은 ‘지그재그’는 물리학을 전공한 40대 공대남의 손에서 탄생했습니다. 패션과 물리학은 쉽게 조화를 이루는 단어는 아니죠. 과연 물리학도가 어떻게
패션사업을 벌이게 됐는지 그 발자취를 한 번 따라가 보겠습니다.
여성 패션 플랫폼 지그재그를 만든 서정훈 대표는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개발자로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는데요. 지난 2004년경 병영 특례로 핸드폰 응용소프트웨어 개발업체 디지털아리아에 입사한 그는 휴대폰 개발자로 8년간 일했습니다.
당시 그가 맡은 일은 알람,계산기,캘린더 등의 앱을 설계하는 일이었다고 하는데요. 서 대표는 ”스마트폰은 앱에 문제가 생기면 업데이트할 수 있지만, 피처폰은 그럴 수 없어서 한 번 만들 때 완벽하게 만들어야만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서정훈 대표는 본래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디자인에 깊은 관심이 있던지라 관심사를 살려 취업한 덕분에 일에 더욱 열정적으로 매진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승진을 거듭할 수 있었는데요. 마침내 입사한 지 4년 만에 자회사 대표자리를 맡게 된 그는 7명이던 직원이 50명까지 늘어나고 누적 매출 100억원을 달성할 정도로 승승장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서 대표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스마트폰 시장이 막 열리기 시작할 무렵 그는 ‘나도 내가 만든 제품을 세상에 내놓고 싶다’는 생각으로 창업을 결심하게 되는데요. 서 대표는 ”10년 전쯤 앱들이 본격적으로 막 나오기 시작할 무렵 내가 더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앱을 만들어보기로 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렇게 부푼 자신감으로 그가 2012년 2월경 세상에 처음으로 선보인 앱은 ‘팀에이블’이라는 스포츠 동호회 관리 앱이었습니다. 이 앱은 기대와는 달리 시장반응이 신통치 않았는데요. 이에 굴하지 않고 그는 2013년 단어 암기를 돕는 영어 단어장 앱인 ‘비스킷’을 출시합니다. 비스킷은 나름의 호응을 얻었지만, 본격적으로 이 앱을 키울 자신이 좀처럼 들지 않았던 서 대표는 말랑스튜디오에 앱을 매각하는데요. 이때 당시만 하더라도 직원들이 하나둘씩 떠나면서 서 대표와 공동창업자인 윤상민 CTO 둘만 회사에 남아있을 정도로 회사 규모가 축소됐습니다.
이렇게 두 번의 실패 끝에 세 번째로 개발한 앱 지그재그가 마침내 시장에서, 특히 10~20대 여성 사이에서 열띤 반응을 끌어냅니다. 그는 우연히 방문한 동대문에서 힌트를 얻었는데요. 서정훈 대표는 ”새벽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동대문은 고객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는 업체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며 ”이런 업체들이 만든 옷을 고객의 취향에 맞게 소개해준 게 시장의 반응을 끌어낸 주요 원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그가 처음 지그재그 창업을 준비하던 때만 해도 주변에서 이를 말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심지어 서 대표의 어머니도 ”아들을 그렇게 힘들게 공부시켰더니 동대문에서 옷 장사를 한다“라고 낙담하셨다고 하는데요. 이에 굴하지 않은 서 대표는 한 달간 사용자 1000명을 모아볼 테니 기회를 달라고 했고, 실제로 페이스북 마케팅을 통해 1000명의 이용자를 모으는 데 성공합니다.
지그재그는 국내 패션 플랫폼 업계 최초로 AI 추천 기능을 도입했는데요. 예를 들어 한 고객이 꽃무늬 패턴이 들어간 원피스를 구입했다면, 그 후 다른 아이템을 검색할 때 꽃무늬 패턴이 들어간 옷이 잘 보이도록 상단에 배치하는 것이죠. 이런 알고리즘 시스템을 기반으로 지그재그는 지난해 거래액 7500억원을 돌파했는데요.
지난 2020년을 기준으로 지그재그에 입점한 업체만 4000여개에 달하며, 월 사용자만 해도 300만명에 달합니다. 이렇게 지그재그가 승승장구하는 사이 서 대표를 웃게 할 또 하나의 소식이 오는 7월 예정돼 있는데요. 지그재그는 다음 달 카카오와 손잡고 글로벌 시장에 도전할 예정입니다.
현재 구체적인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업계는 지그재그의 몸값이 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하는데요. 카카오 자회사로 들어간 지그재그의 수장은 계속해서 서정훈 대표가 맡습니다. 카카오 관계자는 ”지그재그의 사업 역량과 카카오의 자산이 만나면 큰 시너지를 낼 것이다”라고 밝히기도 했죠.
한편, 지그재그의 경쟁사로 언급되는 브랜디, 에이블리도 점차 몸집을 불려 가고 있는 데다 유통업계 거물 신세계가 여성 이용 고객이 많은 W컨셉을 인수하면서 여성 패션 플랫폼 업계의 각축전은 한 층 더 치열해질 전망인데요. 이번 합병을 토대로 이용자 5000만명에 달하는 카카오 채널을 이용할 수 있게 된 지그재그가 업계 선두로 올라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