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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형 세단의 몰락 : 쏘나타는 왜 단종될까?

현대 쏘나타가 단종된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얼마 전, 국산차 업계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바로 '국민차'라 불리는 현대자동차의 중형 세단, 쏘나타가 단종 수순을 밟는다는 것입니다. 그 위상이 과거에 비하자면 다소 약해졌지만, 그럼에도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모델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깜짝 놀란 소식이었는데요.


쏘나타는 1985년 처음 출시돼 올해로 37살이 된, 국산차 중 최장수 모델입니다. 출시 이래로 단 한 번도 이름이 바뀌지 않고, 한국과 미국 시장에서도 출시 이래 쭉 동일한 이름을 쓸 정도로 상징성이 강합니다. 수십 년 간 중형 세단 1위를 독차지하며 '국민차'로 불렸고, 오죽하면 인기 수입차인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나 BMW 5 시리즈를 "강남 쏘나타"라 부를 정도였죠.


사실 쏘나타 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국내 시장에서 쏘나타를 비롯한 중형 세단 시장은 전성기의 절반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 위축됐고, 글로벌 시장을 기준으로 살펴보더라도 중형 세단은 비주류로 전락했습니다. 한때 자동차 시장의 허리였던 중형 세단은 왜 이렇게 위축됐을까요?

SUV의 끝날 줄 모르는 인기

SUV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중형 세단은 멸종 위기를 직면했습니다.

중형 세단 시장의 몰락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시작됐습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SUV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기존 세단의 역할을 모두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을텐데요. 최근 SUV는 경차, 소형차는 물론이고 세단 고유의 영역이었던 대형·고급차 시장까지 넘보며 모든 세그먼트의 자동차 수요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습니다.


SUV는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의 약자입니다. 더 큰 범주로는 RV(레크리에이션 차량)의 일종으로 분류되기도 합니다. 즉, SUV는 원래 유틸리티나 레크리에이션, 레저 활동을 위한 차량의 개념으로 탄생했습니다. 승용차의 일종인 왜건의 바디를 트럭의 플랫폼에 올려 만들어졌으니, 승용차의 편의성을 어느 정도 누리면서 험지를 주행하거나 레저 활동을 하기 적합한 차였던 셈이죠.

SUV의 성능과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일부 시장에서는 SUV의 점유율이 70%에 달하기도 합니다. ⓒMotorTrend

하지만 자동차 제작 기술이 발전하면서 SUV는 승차감이나 주행 성능, 운전 편의성 등 여러 면에서 세단을 비롯한 승용차의 상위 호환으로 진화했습니다. 이에 따라 2010년대 중반부터는 SUV가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면서, 미국 시장의 경우 전체 신차 판매량 중 70% 이상을 SUV가 차지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SUV 열풍의 가장 큰 피해자가 바로 대중차 브랜드의 중형 세단입니다. 소형 세단은 경제성을 앞세워 나름의 영역을 지키고 있고, 준대형급 이상의 세단은 고급 승용차를 원하는 수요층이 탄탄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반면 기존 패밀리 카 수요가 많았던 중형 세단은 보다 실용적인 SUV에게 완전히 자리를 빼앗기게 됐죠.

이미 주요 글로벌 제조사들은 중형 세단을 단종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사진은 미국에서 단종된 포드 퓨전.

이 때문에 주요 글로벌 제조사들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중형 세단의 단종 수순에 들어갔습니다. 포드 퓨전, 쉐보레 말리부, 크라이슬러 200 등 미국 빅3의 중형 세단은 이미 몇 년 전 단종됐고, 폭스바겐도 북미형 파사트를 단종하고 유럽과 중국 시장에서만 판매를 이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미국보다 중형차 수요가 더 적은 유럽 시장에서는 아직까지 중형 세단이 명맥을 잇고 있지만, 그마저도 언제 단종될 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국내 시장에서도 이런 추세는 마찬가지입니다. 쏘나타의 국내 시장 월간 판매량은 한때 1만 대를 가뿐히 넘겼지만, 2022년 1분기 들어서는 월 3,500대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마저도 택시 전용 모델로 팔리는 구형 모델 판매량을 제외하면 월 평균 2,711대에 그칩니다. 동급 경쟁 모델인 기아 K5, 르노코리아 SM6, 쉐보레 말리부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중형 세단을 몰아내고 판매 상위권을 차지한 건 대부분 SUV입니다.

전동화 시대, 설 곳 잃은 내연기관차

전동화 열품도 중형 세단 감소에 일조했습니다.

SUV 열풍도 모자라, 최근 자동차 업계에서는 전동화 열풍도 뜨겁습니다.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해 여러 제조사들이 앞다퉈 전동화에 나서고 있죠. 아예 내연기관차 생산을 중단하고 전기차 회사로 전환하겠다는 제조사도 적지 않습니다. 


아직까지는 내연기관차와 전기차가 공존 중인 만큼, 현재 시판 중인 전기차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내연기관차와 같은 차체에 전동화 파워트레인을 탑재한 공용 전기차와, 전기차 전용 플랫폼으로 제작된 전용 전기차 등 두 가지인데요. 대다수 제조사들이 각자의 전략과 기획에 따라 이 두 가지 전기차를 모두 제작하고 있습니다.

많은 제조사들은 브랜드 전략에 따라 전용 전기차와 공용 전기차를 골고루 활용 중입니다.

그런데 이런 과도기 상황에서, 제조사 입장에서는 내연기관 시대를 달려 온 기존 모델을 대체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공간과 성능 측면에서 최적화가 이뤄진 전용 전기차를 포기하고 공용 전기차만 만들며 기존 라인업에 전기차를 '곁다리'로 남겨둘 수도 없는 일이죠.

현대의 아이오닉과 같은 전기차 서브 브랜드는 주로 전용 전기차 라인업을 위한 것입니다.

때문에 많은 제조사는 기존 라인업과 별개로 전용 전기차 라인업을 만들고 있습니다. 폭스바겐의 ID, 현대의 아이오닉, 기아의 EV, 메르세데스-벤츠의 EQ 같은 전기차 전용 서브 브랜드가 그 예시입니다.


기존 라인업에서는 인기 모델에 공용 전기차를 추가하고 비인기 모델을 순차적으로 정리하는 한편, 더 많은 개발 및 생산 역량을 전용 전기차에 쏟아부어 전기차 회사로의 전환을 가속한다는 것이 많은 제조사들의 전략입니다.

아이오닉 6의 출시가 임박한 시점, 쏘나타의 단종은 전기차를 위한 선택과 집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령 현대차의 경우 중형 세단 타입의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6' 출시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 시점에 쏘나타를 단종한다는 것은, 이미 SUV에 밀려 파이가 작아진 중형 세단 시장에서 굳이 쏘나타와 아이오닉 6 등 두 가지 모델을 판매하느니 전기차 쪽에 힘을 싣겠다는 의중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현대차는 전기차 분야에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연구소의 조직 개편을 통해 전기차 개발 부서를 대폭 강화하고, 2030년까지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하는 신차 중 30%를 전기차로 채우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비록 쏘나타의 상징성이 크다고는 하지만, 이미 판매가 위축되고 과거와 같은 위상을 갖지 못하는 모델인 만큼 선택과 집중을 할 것으로 보입니다.

사이에 낀 쏘나타, 부활 가능성은 없을까?

대외적 환경 변화를 배제하더라도, 내수 시장에서 쏘나타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글로벌 시장의 트렌드나 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배제하고, 내수 시장만 두고 봤을 때 중형 세단의 인기가 크게 떨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은 중형 세단이 "사이에 낀" 세그먼트가 됐다는 점을 살펴봐야 합니다. 국내 자동차 시장이 고도화되고 신차 수요층의 소득 수준이 향상되면서 중형 세단의 수요는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물가 상승과 기본 사양의 고급화 등 여러 이유로 신차 가격은 꾸준히 상승세입니다. 중형 세단의 경우 2,000만 원대 중반에서 최고 4,000만 원대에 달하는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데요. 생애 첫 차나 경제적인 데일리카로 구매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러운 가격대가 되면서, 경제성과 실속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경차나 소형차, 소형 SUV, 준중형차 등으로 이동하게 됐습니다.

소비자의 수요는 소형차나 더 큰 차로 갈라지고, 심지어 택시마저 SUV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반대로 패밀리 카를 고려하는 신혼부부나 중년층 입장에서는 애매한 크기의 중형 세단을 사느니, 차라리 현대 그랜저·기아 K8 등 준대형 세단이나 중형 SUV, 미니밴 등을 구입하는 것이 훨씬 유용합니다. 심지어 중형 세단 판매량의 큰 축이었던 렌터카와 택시 업계에서조차 SUV나 RV가 늘어나는 중이죠. 결국 여러 이유로 중형 세단의 설 자리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중형 세단이 다시 인기를 되찾기는 어려울까요? 미래의 자동차 시장이 어떻게 바뀔지 현 시점에서 섣불리 예상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세단이 SUV로 완전히 대체될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SUV가 진화하더라도 태생적 한계로 인한 주행 감각의 차이, 세단 만의 날렵한 스타일 만큼은 대체할 수 없을테니까요.

디자인과 성능의 강점을 살린다면, 쏘나타의 부활도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가장 현실적인 세단의 '생존 플랜'은 더 멋지고 잘 달리는 틈새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시장의 주류는 SUV와 전기차에게 내주되, 경쾌한 주행 성능과 디자인적 강점을 앞세워 과거 스포츠 쿠페가 차지했던 자리를 노리는 것이죠.


실제로 세단의 구매층은 점차 젊어지는 추세입니다. 쏘나타만 하더라도 2030 구매자 비중은 무려 35%에 달해, 과거 '아버지 차', '패밀리카' 포지션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젊고 스포티한 차로 탈바꿈했죠. 그에 맞춰 스타일도 점점 젊어지고는 있지만, 보다 과감한 변신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푸조 508, 폭스바겐 아테온 같은 중형 세단들은 4도어 쿠페 스타일을 입고 주행 성능을 강조합니다.

이미 유럽에서는 폭스바겐 아테온, 푸조 508과 같이 젊고 스타일리시한 4도어 쿠페 스타일의 세단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형태로 젊은 감각의 수요층을 노린다면, 중형 세단 역시 급변하는 미래 시장에서 나름의 포지션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현재로선 쏘나타의 단종은 거의 확실시 된 모양새입니다. 현대차 내부적으로는 내년께 현행 쏘나타(DN8)의 페이스리프트 버전을 출시하고, 후속 모델인 DN9는 따로 개발하지 않는다는 계획입니다. 앞으로는 SUV와 전기차에 집중하겠다는 것이죠.


쏘나타라는 이름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쏘나타에 얽힌 추억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입니다. 누군가에겐 첫 차였고, 어느 가족의 아버지가 운전하던 차였으니까요. 그런 쏘나타가 현실적인 이유를 들며 사라지는 건 개인적으로는 매우 아쉽고, 안타까운 대목입니다.

추억이 많은 그 이름, 쏘나타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훗날 쏘나타는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요? 비록 지금의 쏘나타와는 많이 다른 모습이겠지만, 전기차든 4도어 쿠페든 쏘나타라는 이름이 끊기지 않고 이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나간 과거이기 이전에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국민차'였으니까요.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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