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타고 출퇴근! F1 기술이 담긴 로드카 Best.7
자동차 엔터테인먼트의 최고봉인 모터스포츠는 무수히 많은 장르와 경기로 세분화돼 있습니다. 투어링카 레이스, 내구레이스, 랠리 등 다양한 대회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대중적 인지도가 높고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많은 경기는 단연 포뮬러원(F1)일 것입니다.
꿈의 레이스, 지구 상에서 가장 빠른 드라이버들의 대결인 F1은 연간 수억 명의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명실상부한 모터스포츠의 최고봉입니다. 엄청난 스피드도 스피드지만, 전 세계를 통틀어 겨우 20명 내외의 드라이버에게만 운전이 허락되는 희소성이 F1을 더욱 값지게 만드는데요.
다른 레이스 같으면 규정 상 호몰로게이션 로드카라도 있겠지만, F1은 레이스 전용으로 만든 오픈휠 레이스카라 로드고잉 버전이 없습니다. 게다가 돈이 있다고 아무나 출전해 탈 수 있지도 않죠. 때문에 F1의 기술력을 담고 일반 도로를 달리는 로드카들은 언제나 콜렉터들에게 인기입니다. 지상 최고의 레이스, F1 기술이 담긴 로드카 7대를 소개합니다.
맥라렌 F1
레이스로 다듬어진 기술력이 로드카에 반영되는 사례는 과거에도 많았지만, F1 기술로 만든 로드카의 원조라 할 만한 건 단연 맥라렌 F1입니다. 이 차는 맥라렌 최초의 일반 도로용 차량이기도 한데요. F1 그랑프리의 명가로 유명한 맥라렌 팀에서 갑작스럽게 내놓은 로드카는 출시 전부터 많은 화제를 불러모았습니다.
1988년 이탈리아 그랑프리를 마치고 영국으로 복귀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 맥라렌 팀의 설계자 고든 머레이(Gordon Murray)는 팀을 이끌던 론 데니스(Ron Dennis)에게 우발적으로 F1 기술이 담긴 로드카를 제안하고, 그 자리에서 승인을 받습니다. F1 머신처럼 카본파이버로 만든 경량 차체에 V12 엔진을 얹고, 운전석이 정중앙에 위치한 차의 개발이 진행됩니다.
당초 맥라렌 팀에 엔진을 공급하던 혼다에게 엔진 개발을 요청했지만, 혼다가 거절하면서 BMW의 V12 엔진을 탑재했는데요. F1에서 금지된 그라운드 이펙트, 액티브 에어로다이내믹 같은 기술들이 투입돼 최고속도는 391km/h에 달했습니다. 높은 희소성과 상징성으로 오늘날 경매 시장에서는 1990년 이후 출시된 차 중 가장 비싼 100억 원대 이상의 가격에 거래됩니다.
페라리 F50
맥라렌 F1(1992년)보다 조금 늦게 출시된 페라리 F50은 페라리 창립 50주년을 기념하는 모델이었습니다. 10년 전 선보인 F40의 성공 이후 본격적으로 10주년마다 선보이는 페라리 슈퍼카 계보를 잇는 모델로, 현역 F1 머신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이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맥라렌 F1과 마찬가지로 당대의 첨단 F1 기술들이 아낌없이 투입됐습니다. 카본파이버 경량 섀시, 전자식 어댑티브 서스펜션 등인데, 가장 인상적인 건 F1 머신에서 가져온 엔진입니다. 1990년 그랑프리에서 활약했던 641 머신의 3.5L V12 엔진을 바탕으로 배기량을 높이고 회전수를 낮춘 엔진의 최고출력은 519마력에 달했는데요. 배기량 대비 출력으로는 당대 가장 높은 것이었습니다. 엔진 사운드 또한 F1 머신의 그것을 쏙 빼닮았죠.
출시 당시만 해도 F50은 세계적으로 화제를 몰고 온 맥라렌 F1에 가려 크게 주목 받지 못했습니다. 선대 모델인 F40이나 후속 모델인 엔초 페라리에 비해 인기가 낮아 심지어는 '실패작'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최근 재평가를 받으며 빠르게 소장 가치가 치솟고 있습니다.
애스턴마틴 발키리
한동안 뜸했던 F1 기반 로드카는 2016년 애스턴마틴이 발키리의 프로토타입을 공개하면서 다시 등장했습니다. 애스턴마틴과 당시 F1에서 협업 관계였던 레드불 레이싱, 엔진 명가로 유명한 코스워스가 손을 잡고 개발했으며, 레드불 레이싱 팀의 기술 총괄인 아드리안 뉴이(Adrian Newey)가 차량 개발에 참여했습니다.
이후 레드불과 애스턴마틴의 파트너십은 깨졌지만, 발키리는 계획대로 완성됐습니다. F1 머신처럼 설계된 발키리의 차체는 벤투리 효과(Venturi effect)를 통해 무려 1.8톤의 다운포스를 형성하며, 공차중량은 1,030kg에 불과합니다. 마그네슘 휠조차도 가벼우면서 공기저항을 최소화하는 형태로 설계됐습니다.
발키리의 개발이 시작됐을 때 F1은 이미 V6 터보 엔진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발키리 만큼은 "낭만적인" 6.5L V12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을 탑재했습니다. 무려 1만 1,000rpm까지 회전하는 코스워스 제 엔진은 마찬가지로 F1에서 유래한 KERS와 조합돼 무려 1,176마력의 최고출력을 자랑합니다. 판매 가격은 약 40억 원 가량으로, 공개 시점에 이미 완판됐습니다. 트랙 버전 25대를 포함해 총 175대가 생산되며, 2021년부터 고객 인도가 시작됐습니다.
메르세데스-AMG 원(ONE)
메르세데스-AMG 원은 2017년 개발이 발표되고 올해 6월에서야 양산이 시작된 메르세데스-AMG 최초의 하이퍼카입니다. 애스턴마틴 발키리와 마찬가지로 현용 F1 엔지니어링이 개발에 반영됐는데,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발키리와 달리 F1 머신의 최신 엔진을 그대로 양산차에 집어넣었다는 것이죠. 이 점에는 페라리 F50과도 상통합니다.
원(ONE)에는 메르세데스-AMG F1 팀의 2016년 위닝 머신에 탑재된 1.6L V6 트윈터보 하이브리드 엔진이 탑재됐습니다. 레이스카에서는 1만 5,000rpm까지 회전하는 엔진이지만, 일반 도로에서의 소음과 배출가스 규제, 내구성 확보를 위해 최대 1만 1,000rpm까지만 회전하도록 개조됐습니다. 그럼에도 KERS 시스템과의 조합으로 합산 1,063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합니다.
풀 카본 모노코크 바디는 F1 머신처럼 강력한 다운포스를 형성하도록 설계됐으며, 차체 곳곳에 극한의 경량화 설계가 적용됐습니다. 동시에 대형 디스플레이와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 등 편의사양까지 두루 갖춰 일상 주행에도 불편이 없다고 합니다. 메르세데스-AMG 원은 총 275대 생산될 예정이며, 이미 전량 판매됐습니다.
카파로 T1
앞서 소개한 쟁쟁한 브랜드들의 로드카에 비하자면, 영국 카파로(Caparo) 사의 T1은 다소 생소할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게 고작 15대만 생산한 뒤 회사가 사라졌으니까요. 하지만 지금껏 만들어진 여러 F1 로드카 중 가장 F1 머신의 형태에 근접한 차가 바로 T1입니다.
카파로는 맥라렌 F1의 개발에 참여했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가 설립한 회사입니다. 맥라렌 F1보다 더욱 F1 머신에 가까운 로드카를 목표로 삼았는데요. 때문에 법규 상 필요한 헤드램프와 일부 바디 카울을 제외하면 오픈휠 레이스카를 쏙 빼닮았습니다. 공차중량은 겨우 470kg에 불과해 경차의 절반 수준이었죠.
F1 머신과 같은 강력한 다운포스를 형성해 코너링 성능이 탁월할 뿐 아니라, 575마력을 내는 자연흡기 V8 엔진을 탑재해 톤당 마력으로 환산하면 무려 1,223마력/t에 달했습니다. 게다가 출시 당시 판매 가격은 23만 5,000파운드(한화 약 3억 6,900만 원)로 비교적 저렴(?)해 주목받았습니다. 그러나 모기업의 경영 사정으로 회사가 돌연 청산 절차를 밟으면서 최종 판매량은 15대에 그쳤습니다.
야마하 OX99-11
지구 반대편 아시아에서도 F1 로드카에 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바로 일본 야마하의 이야기입니다. 야마하는 오토바이 회사로 유명하지만, 오래 전부터 꾸준히 자동차 제작에도 관심을 드러내 왔습니다. 더구나 1980년대 말부터는 작스피드(Zakspeed), 브라밤(Brabham) 등 유수의 F1 팀에 엔진을 공급하기도 했죠.
야마하는 F1 머신용 OX99 엔진을 탑재한 일반 도로용 슈퍼카를 구상했습니다. 아예 입실론 테크놀로지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영국의 IAD와 함께 이 프로젝트를 밀어붙였죠. 3.5L V12 엔진을 미드십으로 탑재하고, 오토바이처럼 앞뒤로 2명이 탑승하는, 일반 도로용 F1 머신이라 할 만한 차가 만들어졌습니다.
OX99-11이라는 코드명으로 불렸던 이 차는 양산 직전 단계까지 진도가 나갔지만, 의욕만 너무 앞선 나머지 개발비가 치솟아 예상 판매가격이 현재 물가로 약 20억 원에 달했습니다. 게다가 이 차의 개발을 가능하게 했던 일본의 버블경제가 몰락하면서 차를 사 줄 고객도 보이지 않았죠. 결국 출시가 임박한 OX99-11은 3대의 프로토타입만 남기고 전면 취소됩니다.
BMW M5(E60)
앞서 소개한 F1 로드카들은 웬만한 재력 없이는 엄두도 내지 못할 초고가에 거래되거나 아예 구매할 수 없는 차들입니다. 그나마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BMW M5가 가장 현실적인 F1 로드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철저히 F1 화법으로 개발된 차는 아니지만요.
M5는 BMW 5시리즈 기반의 고성능 스포츠 세단입니다. 그 중 4세대(코드명 E60/E61) 모델에는 BMW 역사 상 전무후무한 V10 엔진이 탑재됐습니다. 일반적으로 M 모델의 엔진들도 기본 설계는 일반 엔진과 공유하지만, 이 S85 엔진은 철저한 전용 설계로 제작됐습니다. 앞서 F1에 출전하며 쌓은 엔진 개발 노하우를 살려 만든 엔진이기 때문이죠.
세계 최초의 V10 엔진을 탑재한 양산 세단이자 형제 모델 M6와 더불어 BMW 역사 상 유일한 V10 엔진 차량인 4세대 M5는 507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하며 304km/h의 최고속도를 자랑합니다. 세단과 투어링(왜건) 등 두 종류의 바디 타입으로 제작됐으며, 다른 F1 로드카들보다 저렴하긴 하지만 독보적인 개성으로 높은 소장 가치를 자랑하는 M 모델 중 하나입니다.
글 · 이재욱 에디터 <피카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