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열도 다른 느낌! 취향따라 읽는 일본 소설4
안녕하세요. 저는 일본 소설을 즐겨읽는데요, 일본 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정서와 감성이 참 좋습니다. 개성 넘치는 작가들도 많고요. 오늘은 일본 소설이 생소한 분들을 위해 뚜렷한 색깔을 가진 일본 작가 4명과 그들의 캐릭터가 잘 드러나는 작품을 소개해드릴게요.
1. 흥미진진 서스펜스 무라카미 하루키 『기사단장 죽이기』
제일 먼저 소개해드릴 책은 하루키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입니다. 일본에서의 ‘매국노’ 논란부터 우리나라에서의 판권 경쟁까지, 연일 뜨거운 감자였던 책이죠. 그런데 책을 읽고 나니, 그런 이슈들 때문에 책 자체에 대한 평가가 묻힌 것 같아서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상당한 분량의 책 두 권을 며칠 만에 다 읽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스토리거든요.
『기사단장 죽이기』는 한 남자가 ‘의문의’ 그림을 발견하며 시작되는데요, 그림을 발견한 후 새벽마다 ‘의문의’ 방울 소리가 들려옵니다. 방울 소리가 자신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그는 소리의 근원지인 ‘의문의’ 구덩이를 파헤치고, 그 후 그림 속 인물의 형상을 한 ‘의문의’ 무언가가 나타나죠. 그 후로도 이야기는 의문투성이입니다. 이 책은 주인공과 함께 하루키표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그 의문들을 풀어가는 여정이죠.
‘돈 지오반니’ @ The Met. 사진=메가박스 제공 |
의문의 그림은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지오반니>의 한 장면을 모티브로 그린 그림입니다. (바람둥이의 고유명사 ‘돈 후안’이라고 하면 아시죠? ) 오페라는 돈 지오반니가 돈나 안나라는 여인에게 반해 그녀의 방에 몰래 침입했다가 쫓겨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요, 돈 지오반니는 집 앞에서 돈나 안나의 아버지인 기사장과 맞닥뜨리고, 결투 끝에 돈 지오반니가 기사장을 죽입니다. 돈 지오반니가 기사장을 칼로 찔러 죽이는 장면이 『기사단장 죽이기』를 아우르는 큰 그림이죠.
하루키 소설을 읽다 보면 평소에 듣지도 않던 클래식을 듣고 싶고, 잘 마시지도 못하는 술도 한잔하고 싶어집니다. (이번 소설에서는 ‘발랄라이카’라는 칵테일이 너무나 궁금해졌다는… ) 작은 요소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치밀하게 묘사하는 하루키의 문장력 덕분이겠죠?
『기사단장 죽이기』는 하루키 소설에 자주 나오는 코드가 모두 집약되어 ‘하루키 소설의 총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하루키 초심자도, 하루키 마니아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합니다.
스케치를 보여주었다. 그녀는 그림이 마음에 든 눈치였다.
“엄청 생생하네.”
“네가 생생해서 그래.”
내가 말했다.
저자 무라카미 하루키
출판 문학동네
발매 2017.07.12.
2. 나른 우울 요시모토 바나나 『바다의 뚜껑』
저는 기분이 안 좋을 때 더 우울한 소설을 읽어서 우울함의 끝으로 빠지곤 합니다. 그럴 때 딱 좋은 책이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입니다. 소중한 사람의 죽음으로 ‘상실’을 경험하는 주인공, 그들을 이끄는 주술적이고 신성한 힘, 딱히 드라마틱한 사건은 없는 다소 심심한 전개, 서로를 의지하며 상처를 치유하는 결말. 대개 이런 원형을 벗어나지 않다 보니 그녀의 소설이 자기복제 같다는 여론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시모토 바나나 작품 특유의 나른하면서도 ‘아름답게’ 음울한 분위기에 한 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가 힘들어서 꼬박꼬박 신간을 찾아 읽게 되죠.
영화 '바다의 뚜껑' 스틸컷 |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바다의 뚜껑』입니다. 북적거리는 도시의 삶에 지친 주인공 마리는 고향으로 돌아와 바닷가에 작은 빙수 가게를 차립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친구의 딸 하지메가 그 마을에 찾아옵니다. 하지메는 그즈음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심신이 지친 상태이죠. 그녀는 마리의 빙수 가게 일을 돕게 되고, 둘은 특별할 것 없는 소소한 일상 속에서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웠던 여름을 보내며 상처를 치유합니다.
하지메는 어릴 때 화재로 인해 얼굴에 심한 흉터가 있는데요, 마리가 그 흉터에 대해 말하는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플루트를 멋지게 부는 사람이 그 소리로 사람을 매료하는 것처럼, 손재주가 많은 사람이 인기도 많은 것처럼, 풍만한 가슴이 사랑받는 것처럼, 그 흉터가 하지메의 좋은 점을 부각시키고 있는걸, 어쩔 수 없잖아.”
누군가 나의 치부에 대해 이렇게 담담하게 말해준다면 코 끝이 찡해질 것 같아요. 이 소설은 일본에서 영화로도 제작됐다고 하는데요, 요시모토 바나나의 담담하고 나른한 문체를 영상으로 어떻게 표현했을지 궁금합니다.
저자 요시모토 바나나
출판 민음사
발매 2016.07.15.
3. 긴장 미스터리 아리요시 사와코 『악녀에 대하여』
범죄 스릴러, 추리물을 좋아하는 분들께 추천하는 소설입니다. 이런 유의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 저도 순식간에 빠져든 작품이에요. 일단, 내러티브가 독특합니다. 빌딩에서 떨어져 의문사한 여자. 각 장이 그녀에 대해 진술하는 주변인 27명의 인터뷰로 이루어졌습니다. 중요한 점은, 분명 모두 같은 사람에 대해 진술하는데 저마다의 이야기가 다 다르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는 한없이 순진하고 여린 여자로, 누군가는 천하의 요물로 그녀를 묘사하죠. 그녀가 정말 희대의 악녀였을 수도 있고, 27명 중 몇 명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교묘한 심리전을 간파하는 것이 이 소설을 읽는 포인트입니다. 까도 까도 깔 게 나오는 양파 같은 기미코의 정체와, 그녀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추리하며 진실을 파헤치다 보면 심장이 쫄깃해지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저자 아리요시 사와코
출판 현대문학
발매 2017.02.15.
4. 유쾌 시니컬 오쿠다 히데오 『최악』
기발한 발상과 유머러스하면서 유쾌한 문체가 시그니처인 작가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가볍지만은 않습니다. 교묘하게 사회병리 현상과 부조리를 고발하기 때문이죠. 오쿠다 히데오는 꾸준히 다작을 하는 작가인데요, 늘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면서도 타율이 좋아서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합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최악』에는 인생이 영 안 풀리는 세 사람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하루하루 출근이 고역인 은행원 미도리, 소음 문제로 주민들의 민원에 시달리는 공장장 가와타니, 파친코와 강도질로 연명하며 되는 대로 사는 가즈야. 전혀 인연이 없을 것 같은 세 사람은 우연히 어떤 사건에 연루되고, 인생 ‘최악’의 날을 맛보게 됩니다. 더 나빠질 수 없는 인생인 줄 알았는데, 운 나쁜 세 명이 뭉쳐서 시너지 효과를 낸 걸까요?
분량이 상당하지만 가독성이 뛰어나서 100페이지가 후딱 넘어갑니다. 억지 부리지 않고 능숙하게 스토리텔링을 풀어내는 데는 오쿠다 히데오를 따라갈 자가 없을 듯해요. 그 속에 날카로운 메시지를 담고 있어서 더욱 놀랍고요!
저자 오쿠다 히데오
출판 북스토리
발매 2017.07.05.
평소에 일본 소설을 읽지 않는 분들도 일본 소설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