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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표의 휘뚜루마뚜루] 김응룡 감독의 마지막 주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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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결혼식 주례를 맡게 된 김응룡입니다. (…) 아시다시피 신랑 아버지 선동렬 감독은 저의 제자이자 야구 감독이었습니다. 제 인생의 첫 주례도 선 감독의 딸 민정 양이었고, 아들(민우) 의 결혼식 주례까지 맡고 보니 선 감독과의 인연이 대단하다 싶어 새삼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 주례이자 인생 선배로서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골프 얘기를 할까 합니다. 골프 지도자인 신랑이 사랑하는 골프도 조화가 중요합니다. 골프는 서로 지킬 것은 지키고 배려하는 매너의 스포츠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서로를 위해주고 배려하는 행복한 결혼생활을 꾸려가길 바랍니다(…)”


2분 남짓, 간단명료한 주례사가 끝나자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예식장 안을 가득 채웠다. 지난 4월 16일 선동렬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의 아들 주례를 선 김응룡(83) ‘감독’의 주례사를 간추린 내용이다.


김응룡 감독이 또 주례를 섰다. 김응룡 감독은 삼성 라이온즈 사장과 대한야구협회 회장도 역임했으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에 빛나는 그의 이름 뒤에는 ‘감독’을 붙이는 게 오히려 자연스럽다.


굳이 ‘또’라는 부사를 사용한 것은, 김 감독이 무려 4차례나 주례를 섰기 때문이다. 선동렬 전 감독의 딸을 시작으로 삼성 라이온즈에서 인연을 맺은 오승환과 양준혁에 이어 선 감독의 아들까지. 얼핏 어눌하고, 대중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그로선 아주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당사자들의 간청에 못 이겨 단상에 나선 일이기는 했으나 겉과는 달리 제자들을 아끼는 마음만은 그런 ‘행사’를 통해 유감없이 드러낸 셈이다.


그날, 김응룡 감독은 노련한 승부사답지 않게 주례 단상에 오르기 전 은근히 긴장한 모습이었다. 선 감독 딸 결혼 때는 미리 와인 한 잔을 가득 따라 마시고 속을 진정시킨 다음 올라갔으나 이번엔 결혼식장 측이 미처 와인을 준비해놓지 않아 조금 초조한 기색마저 내비쳤다. 결국 와인 한 모금을 든 다음에야 단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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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감독은 막간에 주례사가 적힌 종이에 눈을 바싹대고 계속 들여다보았다. 제자들은 “우리 감독님이 긴장하셨네”라며 키들거렸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돋보기를 챙기지 못하는 바람에 강렬한 조명 아래에서 글자를 판독하는데 애먹었다는 얘기였다.


식사 자리가 파할 무렵, 김응룡 감독이 제자들이 있는 자리로 와 “아이고, 다리가 후들거리데”라며 큰 소리로 웃으며 주위와 포도주 잔을 나누었다. 자리는 유쾌했으나, 목청 돋운 그의 얼굴에는 어쩐지 쓸쓸함이 느껴졌다. “앞으로도 누가 부탁하면 주례를 서실 건가요”라고 묻자, “이젠 당뇨도 오고, 이번 주례가 마지막이야”라며 손사래를 쳤다.


김응룡 감독의 해태 타이거즈 전성기를 함께했던 장채근(홍익대 감독), 박철우(타이거즈회 회장), 정회열(동원대 감독) 등 제자들이 옛 일화 한 토막씩 끄집어냈다. 1991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로 빛났던 장채근 감독은 (포수로) 대수비로 나갔다가 타석에 들어서 보지도 못하고 교체되자 술을 잔뜩 마시고 김응룡 감독 숙소로 새벽 4시에 쳐들어가 대놓고 따지다가 치도곤을 맞은 일을, NC 다이노스 포수 박세혁의 아버지인 박철우 전 두산 코치는 “(해태에서 4번 타자로 뛰던 때) 다른 선수들한테는 말하지 말라”며 김응룡 감독이 일부러 불러내 고기를 사주던 숨은 얘기도 털어놓았다. 거칠어 보이는 ‘감독 김응룡’의 이면에 스며있는 따스함 마음을 그들은 그렇게 자랑했다.


‘김응룡과 선동렬’, 두 야구인의 인연은 단순히 명가 해태 구단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스승과 제자의 틀을 넘어선다. 한 번 맺은 질긴 인연의 끈은 딸과 아들의 처음과 마지막 주례로도 연결됐다.


손님들이 주섬주섬 행장을 챙겨 일어날 즈음 이상국 전 해태 단장이 정회열 동원대 감독에게 넌지시 손짓을 했다. 하객들이 가져갈 수 있는 꽃을 포장해와 김응룡 감독에게 드리라고.


김응룡 감독이 짐짓 못 이기는 척, “집사람이 꽃을 좋아하기는 하지”라며 제자가 챙겨온 꽃다발 한 아름 가슴에 안고서 예식장을 휘적휘적 빠져나갔다.


지나간 시간,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추억의 그림자가 그의 휘어진 어깨 뒤로 길게 끌려가고 있었다.


글/사진. 홍윤표 OSEN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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