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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by OSEN

클린스만과 박종환, 33년 만에 재현된 평행이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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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만 감독-박종환 감독

“2023 카타르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우승을 첫 과녁으로 삼으려 한다. 더 나아가 한국 축구가 이루고 누렸던 월드컵 4강 영광을 재현하고 싶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새로 이끌게 된 위르겐 클린스만(59) 감독이 내세운 목표다. 지난 9일 오후 파주 NFC(축구 국가대표훈련원)에서 열린 첫 공식 기자회견에서, 클린스만 감독은 명확하게 지향점을 밝혔다. 감독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논란을 인식하고 이를 잠재우려는 의식이 엿보이는, 야망을 담은 출사표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맞히고 싶은 과녁일 뿐이다. “일은 사람이 꾸며도, 이뤄짐은 하늘에 달려 있구나.” 제갈량의 이 같은 한탄처럼, 자신의 뜻하는 바가 그대로 실현될 리 없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이 어떻게 지닌 역량을 펼쳐 보이느냐에 그에게 도래할 운명의 모양새는 달라질 수밖에 없어, 관심이 가는 목표요 출사표다. ‘태생적 한계’를 안고 첫걸음을 내디딘 국가대표 사령탑이 과연 제대로 길을 밟아 갈 수 있을지 염려된다면 단순한 기우(杞憂)에 지나지 않을까?


그래서인지 불현듯 33년 전 일이 오버랩되면서, 새삼스레 씁쓰레한 감정이 밀려옴을 어찌할 수 없다. ‘쉽게 구한 건 쉽게 내버린다’는 생각은 과연 비약일까?


‘독배’를 움켜쥔 클린스만, KTA가 만든 허방의 운명 피해 갈지


1990년 8월 8일, 대한축구협회(KFA)는 ‘느닷없이’ 국가대표팀 감독 교체를 발표했다. 박종환 일화 천마(당시) 감독을 1990 베이징(北京)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선임하는 ‘깜짝 발탁’이었다. 불과 닷새 전, 제1회 다이너스티컵에서 3연승을 지휘하며 한국을 초대 챔프로 이끌었던 이차만 감독을 해임하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격 경질이었다. 귀국 후 휴식할 틈도 없이 아시안 게임 금 전략 구상에 골몰하던 이 감독에겐 맑게 갠 하늘에서 치는 날벼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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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A로선 숱한 구설에 오르내리는 곤혹스러움을 자초한 셈이었다. 당시 박 감독이 처했던 상황이 이를 부채질했다. 그해 4월 말 구단이 내린 ‘한시적 퇴진’ 조치로 야인처럼 지내다가 일화 사령탑에 복귀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던 박 감독이었다. 프로팀 사령탑으로서도 깊은 늪에 내몰렸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왔을 만큼 백척간두의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국가대표팀 사령탑으로 선임됐으니 어쩌면 충분히 예견됐던 발탁이었다. “제5공화국 1기 정부의 최고 권력자가 뒷배여서, KFA로서도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었다“라는 말은 공공연한 비밀로 회자했다.


그때 박 감독이 국가대표팀 사령탑에 앉으며 일성으로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을 노리겠다”라고 장담했음은 물론이다. 그 대회에서, 한국은 3위에 그쳤다. 이란과 벌인 준결승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일격(0-1)을 당했다. 태국과 맞붙은 동메달 결정전에선, 황보관의 결승골에 힘입어 1-0으로 이겼다. 당연히, 체면치레에 그친 박 감독은 국가대표 사령탑에서 물러나야 하는 운명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강산이 세 번씩이나 바뀌었다. 그렇지만 KFA 행정은 단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 듯하다. 세월은 KFA에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지 아닌가 싶다. 여전히 ‘인치(人治) 행정’과 ‘밀실 행정’이 득세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KFA는 “체계적으로 편성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라고 항변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번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불거진 난맥상에서 알 수 있듯, 그 완비된 시스템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합의체인 전력강화위원회가 가동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 마이클 뮐러 전력강화위원장과 위원 간에 공감대 형성을 위한 교감 작용 시도가 한 차례도 없었다는 데선, 실로 아연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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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구나 뮐러 위원장의 유체이탈식 변명 화법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전술만이 축구의 다는 아니다. 팀워크와 스타플레이어 관리가 더 중요하다”, “실력보다 인간적 면모와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향한 관심을 고려해 선임했다”, “벤투 감독의 축구 철학을 따라갈 수는 없다” 등은 의문을 부풀려 논란을 증폭시킨 도화선이 됐다. 오죽했으면 일각에서, “뮐러 위원장도 모르는 상황에서, 고위층 뜻대로 따라간 게 아니냐? 그저 방패막이가 된 그의 신세가 딱하다”라는 조롱까지 터져 나왔겠는가.


클린스만 감독도 어쩌면 희생양으로 전락할지 모르겠다.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라는 속담처럼,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덥석 움켜쥐었으나, 언제 어느 운명에 맞닥뜨릴지 알 수 없다. 한 나라 국가대표팀 감독은 곧잘 ‘독이 든 성배’로 표현되지 않는가.


KFA는 별달리 고심한 흔적 없이 국가대표팀 감독 인선 작업을 끝냈다. 인선 과정에 대해 일절 설명이 없다가 클린스만 감독이 갑작스레 후보로 급부상하자, 서둘러 낙점하고 발표한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노력과 정성을 다했을 때, 그 성과물이 더욱 값지게 느껴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쉽게 들어온 건 소중함을 느끼기 어렵다. 아까운 줄 모르고 별다른 생각 없이 내버릴 때가 비일비재하다. 그렇지만 이때 간과하기 쉬운 건 자신이 만든 허방에 자신이 빠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내년 1,2월에 걸쳐 열릴 카타르 AFC 아시안컵에서, 클린스만 감독은 자신이 삼은 64년 만의 우승 과녁에 화살을 명중할까? 한국 국가대표팀이 거둘 전과가 그의 운명을 좌우하지는 않을지 모르겠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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