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 가득' 농구기자가 진지 빨고 하는 ‘더 퍼스트 슬램덩크’ 리뷰
[사진]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송태섭의 미국진출? 과연 말이 될까.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한국에서 관객수 200만 명이 넘는 히트를 치고 있다. 볼 사람은 다 봤다는 가정하에 스포 가득한 리뷰를 해본다. 한 번 더 볼 사람은 이 기사를 읽고 새로운 시각에서 봐주시길 바란다.
기자는 슬램덩크를 보면서 농구기자의 꿈을 키웠다. 중학생시절 능남고의 ‘체크맨’ 박경태처럼 농구는 못해도 농구를 좋아하는 소년이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박경태의 누나 ‘주간 바스켓볼’ 기자 박하진을 보면서 농구기자라는 직업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농구기자의 꿈을 이뤘다.
슬램덩크를 보고 자란 기자도 농구의 본고장 미국에 대한 꿈이 있었다. 그래서 미국유학을 다녀왔다. 또 미국에서 대학을 다닌 최진수, 이현중, 양재민을 모두 현장에서 취재한 유일한 기자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마지막 장면에 정우성을 미국에서 취재하는 일본기자가 나온다. 기자의 모습을 본 것 같아서 ‘피식’ 웃었다. 슬램덩크의 마지막 장면은 기자가 가장 잘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마지막에 송태섭이 미국으로 농구유학을 떠나 미국고교리그에서 정우성과 맞대결하는 장면이 나온다. 원작에는 없던 파격적인 설정이다. 원작에서는 서태웅이 안 선생님에게 “미국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상담하고, 정우성에게 “나도 간다”면서 여러번 의지를 피력한다. 안 선생님의 옛제자 조재중이 미국에서 선수로 실패하며 사고로 죽는 장면도 있다. 하지만 송태섭이 미국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장면은 전혀 없었다.
[사진]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산왕공고의 롤모델은 일본인 최초 NBA 선수 타부세 유타
이노우에 다케히코 작가가 송태섭을 미국유학 시키는 이유는 일본의 어린이들에게 꿈을 주기 위해서다. 키가 작아도 부단히 노력하면 NBA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 꿈을 실제로 이룬 선수가 바로 산왕공고의 실제 모델 타부세 유타(43, 우츠노미야 브렉스)다. 신장이 175cm에 불과한 타부세는 노시로공고시절 3년간 무패우승의 전설을 쌓았다. 산왕공고의 유니폼이 노시로공고와 똑같다.
이후 타부세는 일본대학을 마다하고 브리검영대학교 하와이캠퍼스(NCAA 디비전2)에 진학한다. NBA 서머리그와 트레이닝 캠프를 거친 그는 2004년 피닉스 선즈 정규시즌 로스터에 합류해 ‘일본인 최초 NBA선수’가 됐다. 비록 그는 NBA에서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2년 만에 일본프로농구에 진출했다. 하지만 ‘일본인 최초’로 불가능의 벽을 뚫었다는 의미는 대단했다.
타부세가 미국유학을 가서 NBA에 간 시점은 이미 슬램덩크 연재가 종료된 시점이었다. 하지만 타부세는 이노우에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향후 작품에서 송태섭의 유학까지 이어지게 됐다. 나중에 이노우에와 타부세가 실제로 일본 TV프로그램에서 만나서 대담을 한다. 이노우에는 “만화보다 더 만화같은 사람”이라고 타부세의 업적을 칭찬한다.
타부세는 아직도 양재민의 소속팀 우츠노미야 브렉스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다. 양재민은 “타부세는 일본농구 전체가 존경하는 선수다. 선수로서 경험이 많고 미국경험도 있어 영어를 잘하다보니 이것저것 많이 챙겨준다”고 밝혔다.
슬램덩크 장학제도에 영감을 준 선수는 다름 아닌 최진수
현실적으로 송태섭의 미국유학은 쉽지 않다. 미국유학은 돈이 많이 든다. 오키나와의 작은 섬 출신인 송태섭은 어머니 혼자 키우는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다. 일본 내에서도 해남 에이스 이정환, 상양 김수겸, 산왕공고 이명헌 등 송태섭보다 뛰어난 가드들이 많다. 168cm에 불과한 송태섭이 미국에 진출해서 주전으로 뛴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넌센스다. 더구나 송태섭은 의사소통이 중요한 포인트가드 포지션인데 영어도 못한다.
이노우에는 슬램덩크 연재가 끝난 뒤 한동안 미국에서 생활했다. 어느날 이노우에가 미국고교농구를 보다가 흑인들 사이에서 뛰는 동양인 선수 한 명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 선수가 바로 사우스켄트고교에서 뛰는 한국인 최진수였다.
이를 계기로 이노우에는 일본농구협회와 협력해 2006년 ‘슬램덩크 장학제도’를 개발했다. 일본최고 농구유망주 1-2명이 매년 미국으로 유학갈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제도다. 2008년 나리사토 나리가 첫 장학제도 수혜자가 됐다. 최근 이쿠에 로이 히데키가 16회 장학생으로 선발돼 오는 2023년 9월 9개월 일정으로 미국에 건너간다.
한국에서도 최진수의 뒤를 이어 미국무대에 도전하는 선수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이현중이 데이비슨대학에 진학해 3학년까지 주전으로 뛰면서 지난해 NBA 드래프트까지 도전했다. 이현중은 올해 재활을 마치고 G리그에 도전한다. 양재민은 미국 주니어칼리지리그에서 뛰었다. 최근 여준석이 곤자가대학에 입학해 화제가 됐다. 여준석은 2023-24시즌부터 경기에 출전할 수 있다.
기자가 미국에서 뛰는 선수들을 현장에서 취재하면서 느낀 공통점은 타지에서 너무 외롭고 한국에서 지원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농구협회 차원의 지원은 언감생심이다. 최진수 역시 매릴랜드대 재학시절 학사일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무리하게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대표팀 합류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오는 항공권 역시 제공되지 않아 사비로 해결했다. 결국 최진수는 학사문제로 2학년 시즌을 마치지 못하고 국내로 유턴했다. 당시 기자가 매릴랜드 현장에서 이 소식을 처음 국내로 전했는데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슬램덩크를 보고 NBA 꿈을 이룬 하치무라 루이, 와타나베 유타
‘슬램덩크’는 농구선수라면 누구나 한 번쯤 봤을만한 교과서다. 어렸을 때 슬램덩크를 보고 농구선수가 됐다는 선수들이 많다. 일본은 현재 NBA 선수를 두 명이나 배출했다.
하치무라 루이는 곤자가대학을 거쳐 2019년 NBA 드래프트 9순위로 워싱턴에 지명됐다. 하치무라는 최근 LA 레이커스로 트레이드 돼 르브론 제임스의 동료가 됐다. 레이커스에서 “구단 최초로 일본선수를 영입했다”며 하치무라 영입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와타나베 유타는 조지워싱턴대학을 거쳐 NBA 드래프트 낙방 후 서머리그와 G리그에서 계속 도전했다. 잡초처럼 살아남은 그는 멤피스, 토론토를 거쳐 브루클린과 계약했다. 올 시즌 와타나베는 3점슛 성공률 48%로 리그 전체 1위(현재는 랭킹제외)에 오르는 등 전성기를 맞고 있다.
지난 2월 1일 브루클린 대 레이커스전에서는 두 명의 일본선수가 맞대결을 펼쳐 화제가 됐다. 레이커스로 이적한 하치무라가 16점을 올렸고, 벤치에서 나온 와타나베가 12점으로 활약했다. 일본언론은 두 선수의 활약을 대서특필했다. 한국기자 입장에서 매우 부러운 장면이었다. 한국은 역대최초 하승진 이후 NBA선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슬램덩크’는 만화고 판타지다. 일본고교농구에 서태웅처럼 수비수 두 명 놓고 덩크슛 할 수 있는 선수 없다. 덩크슛을 할 수 있는 2미터 이상의 선수도 손에 꼽는다. 오히려 얕은 선수층에 비해 재능있는 장신선수들은 한국에서 많이 나온다. 하지만 한국은 체계적인 육성&지원 시스템이 없다.
한국의 재능있는 선수들이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지금 한국의 어린이들에게 ‘슬램덩크’를 보여주면서 ‘너도 커서 송태섭 같은 선수가 돼라’고 무작정 권유할 수 없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OSEN=서정환 기자]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