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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처]by OSEN

‘더 글로리’ 송혜교, “연진아! 인과응보도 제법 중요하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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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자신을 이용하려 접근했음을. 그런데도 말했다. “정말 잘 쓰여야지 마음먹었다”고.


이 남자는 그렇게 처음부터 위험했다. 온 몸에 남은 고데기에 지져진 흉터를 처음 보고 놀란 그에게 “흉하죠. 흉터?”라고 물었었다. 그 때 그는 정정해 주었다. “상처요!”라고.


흉터는 상처가 아물고 남은 자국이고 과거형이다. 하지만 상처는 부상이 지속되는 진행형이다. 그는 내 생채기가 아직 아물지 않았음을 알아줬고 순간 아찔하게도 위로를 받아야 했다.


내가 그를 떠난 이유도 물었었다. “피해자란 이유로 무슨 맘을 먹었던 건가? 이 사람도 피해자였는데...”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자 그가 대꾸했다. “어휴 다행이다. 난 또 진짜 내가 별로라서 떠난 줄 알았죠. 그럼 후배는 날 써먹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 이제. 날 거절하면 사랑인 거죠. 복수가 아니라.”란 답이 돌아왔다. 갑자기 사랑을 들먹이는 그 당황스런 대꾸에 “그럼 도와줘요. 끝까지.”라 간신히 선을 그을 수 있었다.


학교 폭력을 다룬 화제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가 10일 공개됐다. 문동은(송혜교 분)의 복수는 제 손에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깔끔하게 마무리 됐고 주여정(이도현 분)의 복수가 시작되는 것으로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신파도 없었고 주인공의 파탄이란 복수의 쓴 맛도 남기지 않았다. 선한 피해자 누구도 다치지 않은 채 카타르시스만 안긴 결말을 위한 제작진의 노고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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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목 글로리(glory)는 영광, 찬란한 아름다움 등의 의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드라마는 ‘찬란한 아름다움’ 쪽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박연진(임지연 분)이 말했었다. “난 잘못한 게 없어. 동은아! 네 인생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지옥이었잖아!” 맞다. 열 아홉 살에 멈춘 동은의 인생은 객관적으로 지옥이었고 본인도 절감했었다.


더는 힘내서 살아볼 자신이 없어 주저앉기로 결심한 적이 있다. 강물로 들어갔을 때 동은만큼이나 지옥을 살던 누군가가 앞서 있었다. 동은이 힘겹게 그녀를 건져올렸을 때 그녀가 말했다. “물이 너무 차다. 우리 봄에 죽자!”


죽기만 바라며 지옥을 버티다 지쳐, 죽을 힘을 다해 죽기로 결심한 사람에게 살라고 응원하는 것은 잔인한 짓이다. “따뜻한 봄에 죽자”는 제안은 그 마음까지를 감싸 안는 따뜻한 배려였다. 그날 동은은 마음의 멍울을 실컷 울음으로 풀어냈다.


그렇게 동은의 지옥에도 그저 몰랐을 뿐, 찬란한 아름다움은 드문드문 존재했던 것이다.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라 자평하는 강현남(염혜란 분)의 헌신적인 모정, 동은의 피학대를 감싸주던 보건교사 안정미(전수아 분)의 의분, 동은을 연민 아닌 동경의 눈으로 지켜봐 준 구성희(송나영 분)의 응원, 현관에 신발을 벗어놓고 방에 들어서는 하도영(정성일 분)의 예의, 그리고 주여정의 사랑 등등.


안타까워하며 응원은 하지만 현실을 바꿔주지는 못한다고 의미없는 존재들인 것은 아니다. 아프다고 말할 용기를 내는 것도 죽을 힘을 다해야 되는 사람들에겐 그들이 이웃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응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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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 찬란한 아름다움도 있다. “이 악물고 팔자 고칠 기회준 게 죄야? 왜 없는 것들은 인생에 권선징악·인과응보만 있는 줄 알까?”라며 한 치의 반성 없는 박연진을 비롯한 악역들의 한결같음도 문동은의 복수극에 쓴 맛을 빼주는 순기능을 했다.


드라마는 로맨스 대신 연민과 의분을 가득 담았다. “어떤 증오는 그리움을 닮아서 멈출 수가 없다.”는 문동은의 대사처럼 복수극이란 테마에 충실했다. 그리고 ‘더 글로리’란 제목에도 충실함으로써 세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 내 살아볼 만하다란 메시지도 안겨주었다.


“연진아, 네가 틀렸다는 건 아냐. 인생에 권선징악·인과응보가 다는 아니니까. 하지만 지금의 너를 보렴. 제법 중요해 보이지 않니?”


[OSEN=김재동 객원기자]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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