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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위한 전시

자연도 사람도 한 해를 접으며 고개를 숙여봅니다. 문득 눈에 보이는 것은 내 두 발뿐, 이럴 때 우리는 쌀쌀해진 바람만큼 혹독한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가끔은 이것을 위로로 털어내는 게 아니라 한 번 음미해보고 즐기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나뭇잎을 떠나보내며 홀로 설 준비를 하는 늦가을의 나뭇가지를 닮은 호젓함과 외로움을 감상해보고 싶은, 여러분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해줄 수 있는 그림들을 소개합니다.

서금앵, 'Room#9'

외로움을 위한 전시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 130x162cm (100호) | 2008

사람의 온기를 느끼기 어려운 집에 혼자 있으면 때때로 외로움이 우리의 곁을 찾아옵니다. 흰 천에 싸인 의자와 창문에 드리워진 커튼, 사람이 자주 사용한 것 같지는 않은 탁자 위 물건들이 이곳의 오래된 적막함과 인적 없음을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차갑다기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이 드는 색채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묘한 외로움이 풍겨 나오는 이유겠지요.

전혜림, '무제'

외로움을 위한 전시

종이에 아크릴채색, 콩테 | 90x72cm (30호) | 2014

탁한 하늘, 진홍빛 마른 땅 위에는 앙상한 나뭇가지와 툭 튀어나온 바위밖에 없습니다. 메마른 자연마저 간신히 숨을 쉬는 곳, 작품은 이처럼 사람이 찾아갈 리 없는 황무지를 직설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공허함과 외로움을 이야기할 때 황무지가 빠질 수는 없지요. 단조롭고 무덤덤한 분위기는 인간 내면의 고독까지 건드리는 것 같습니다.

이은지, 'Snow Walk'

외로움을 위한 전시

캔버스에 유채 | 146x112cm (80호) | 2014

곧 다가오는 겨울이 조용하게 캔버스 위에 펼쳐져 있습니다. 이 작품을 마주하고 있자면 어둡고 추운 어느 겨울 밤에, 옷 속으로 스며드는 찬바람을 맞으며 눈이 내린 길을 걷는 기분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낮에는 이 길을 걸은 사람들이 있는 듯 양쪽으로 발자국들이 찍혀 있지만 모두들 건물 안 불빛 속으로 숨어버리고 바깥에서는 나 혼자 얼어붙은 숨을 쉬고 있을 때 찾아오는, 일상적이지만 가볍지는 않은 외로움이 연상됩니다.

최보배, '여행'

외로움을 위한 전시

캔버스에 과슈 | 61x73cm (20호) | 2014

작품의 제목은 ‘여행’이지만 화폭 안에 담긴 것은 맑은 하늘 아래 펼쳐진 풍경이 아니라 창문을 가린 블라인드입니다. 때로는 안을 들여다보는 여행도 있기 때문이지요. 새벽의 서늘한 어스름이 깔린 것 같은 분위기와 그것을 파고드는 얇게 나뉜 빛줄기는 사색적이지만 고독한 개인의 영역에서 펼쳐지는 의식의 여정을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김윤희, '쌀쌀겨울'

외로움을 위한 전시

장지에 먹, 아크릴채색 | 139x90cm (80호) | 2012

겨울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주는 눈 덮인 산의 정경이 먹으로 담담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래쪽을 봤더니 아크릴 물감으로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작은 집들이 있어요. 색상의 대비뿐만 아니라 섬세함과 단순함의 대비가 더해져 독특한 매력이 느껴지지만 그 모든 것을 끌어안은 배경이 설원이라는 점에서 조금은 다른 고요함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경하, '걸어가는 사람'

외로움을 위한 전시

캔버스에 목탄, 유채 | 97x130cm (60호) | 2014

어디인지 알 수 없는 새카만 배경 속에서 묵묵히 누군가가 어둠을 헤쳐가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 그림으로부터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내는 인간의 힘이나 용기를 읽어내고 의지를 다질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또 누군가는 어떠한 도움도 기대할 수 없는 막막한 암흑 속을 힘겹게 헤쳐나가는 사람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발견하고 눈을 지그시 감게 될 수도 있습니다.

김수연, '기억'

외로움을 위한 전시

혼합재료 | 19x33cm (4호) | 2013

짐수레를 끌고 있는 사람은 허리가 구부정한 것으로 보아 아마 노인일 것입니다. 삶이 서서히 저물어가는 시기에 가벼워 보이지 않는 짐을 끌어야 하는 노인의 등은 조금은 씁쓸하면서, 한편으로는 쓸쓸합니다. 그 농익은 쓸쓸함과 홀로 됨이 불현듯 가슴을 파고들면서 금방이라도 눈시울이 뜨거워질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작품입니다.

서재민, '가로등'

외로움을 위한 전시

캔버스에 유채 | 227x162cm (150호) | 2014

기울어진 나무 옆에서 가로등은 덤덤하게 길 위에 빛을 비추며 자신의 본분을 다합니다. 만일 내가 서 있는 장소 건너편에 그림과 같은 광경이 펼쳐져 있다면 아마 완전한 정적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적과 소리의 부재는 내가 혼자 남았다는 불안과 연결될 수도 있지만, 부스스 잠에서 깨어 커튼을 걷어보았을 때 보이는 풍경에서 만날 수 있는 차분한 쓸쓸함을 떠올려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송, 'Between0030'

외로움을 위한 전시

캔버스에 유채 | 97x130cm (60호) | 2009

어느 공간에 사람들이 앉아 있습니다. 이들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있지 않은 그들의 모습은 현대인들이 자주 직면한다는 ‘군중 속 고독’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듯합니다. 온화한 색채를 배경으로 두고 있음에도 단절되었다는 감상이 머릿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는 가운데 감상자는 조금은 다른 외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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