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돌부처도 떨더라' 400번째에 다시금 대오각성
7년 만에 국내 프로야구에 복귀한 오승환이 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세이브를 기록하며 한미일 통산 400세이브를 달성한 뒤 강민호와 기뻐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
천하의 돌부처도 7년 만의 한국 무대에서 올리는 세이브 앞에서는 긴장했다. 더군다나 한국과 미국, 일본 통산 400세이브가 걸려 있었다.
삼성 오승환(38)이 전인미답의 한·미·일 통산 400세이브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특히 국내 무대에서는 7년 만에 복귀해 세이브를 추가하며 금자탑을 완성했다.
오승환은 1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0 신한은행 SOL KBO 리그' 두산과 원정에서 4 대 3으로 앞선 9회말 등판했다. 1이닝 동안 볼넷 2개를 내줬으나 삼진 1개를 잡으며 무피안타 무실점으로 경기를 매조졌다.
지난 9일 국내 복귀전을 치른 뒤 4경기 만의 세이브다. 오승환이 KBO 리그에서 세이브를 올린 것은 지난 2013년 9월 24일 SK전에서 277세이브째를 따낸 이후 7년 만이다.
이후 오승환은 일본 한신에서 2년 동안 80세이브를 기록했다. 2015년부터는 메이저리그(MLB)에 진출해 세인트루이스, 토론토, 콜로라도를 거치며 42세이브를 올렸다. 개인 통산 399세이브째로 이날 꼭 400세이브를 채웠다. 통산 400세이브는 100년이 넘는 MLB 역사에서도 6명에 불과할 만큼 귀한 기록이다.
이날 오승환의 세이브는 예상 밖이었다. 최고의 마무리였지만 아직 실전 감각이 완벽하게 돌아오지 않았던 까닭이다. 오승환은 지난해 콜로라도에서 자진 방출돼 삼성과 계약했지만 2016년 해외 도박 벌금형으로 72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아 지난 9일에야 1군에 등록했다. 사실상 1년 정도의 공백이 있었다.
때문에 오승환은 그동안 마무리가 아닌 셋업맨으로 등판했다. 지난 9일 키움과 홈 경기에서 1이닝 무실점으로 7년 만에 KBO 복귀전을 치른 오승환은 이후 2경기에서는 모두 실점했다. 10일 키움전, 13일 kt전 모두 홀드를 기록했으나 1이닝 1실점했다.
16일 경기 전까지만 해도 삼성 허삼영 감독은 오승환의 이날 마무리 등판 가능성에 대해 "조만간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일축했다. "공을 놓는 타이밍이 빨라졌는데 이걸 조금만 길게 간다면 내려 찍히는 느낌이 생기는 등 좋은 공이 나오면 마무리로 돌리겠다"는 것이었다.
삼성 오승환이 16일 두산과 원정에서 9회말 등판해 힘차게 공을 뿌리고 있다.(잠실=연합뉴스) |
하지만 오승환은 이날 1점 차로 앞선 9회말 세이브 상황에서 전격 등판했다. 현재 팀 마무리 우규민이 8회 셋업맨으로 나선 뒤였다. 끝판 대장의 귀환을 알린 등판인 셈이었다.
구위는 여전했지만 진땀을 뺐다. 오승환은 첫 타자 정수빈을 삼구삼진, 최주환을 초구에 우익수 뜬공으로 잡아내 기분좋게 출발했다. 그러나 호세 페르난데스와 11구 접전 끝에 볼넷을 내줬고, 김재호와도 풀 카운트 끝에 볼넷을 허용했다. 마지막 타자 이유찬도 파울 4개를 걷어내는 끈질긴 승부를 펼쳤다.
그러나 오승환은 오승환이었다. 결국 6구째 묵직한 돌직구로 이유찬의 방망이를 부러뜨리며 3루수 파울 뜬공으로 처리, 경기를 마무리했다. 2005년 데뷔 후 15년 만에 이뤄낸 400세이브 달성이었다.
경기 후 오승환은 "오늘은 다른 때보다 긴장을 했다"면서 "(400세이브) 기록도 기록이지만 앞선 경기에서 좋지 않아서 긴장이 앞섰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벤치나 선수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서 더 긴장을 했던 것 같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어 "오늘 경기를 통해서 세이브 하나 하기가 힘들구나 하는 것을 더 많이 느꼈다"고도 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오승환이지만 실전 공백은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승환은 "몸 상태와 구위는 100%라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1년 공백 있다"고 최근 고전 상황을 분석했다. 이어 "(코로나19 때문에) 관중이 없는 것도 작용을 하고 있다"면서 "관중이 많은 게 더 편하지만 나만 겪는 상황은 아니다"고도 했다.
7년 만에 국내 프로야구에 복귀한 오승환이 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두산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뒤 동료들의 축하 물세례를 받고 타월로 몸을 감싸고 있다.(서울=연합뉴스) |
그래도 대기록은 기분이 좋다. 특히 팀 동료들의 축하가 더 뿌듯했다. 오승환은 "오랜만이자 400개째 세이브인데 팀이 좋아지는 와중에 올렸다"면서 "팀과 잘 맞아 떨어져 더 기분이 좋다"고 웃었다.
중계 방송 인터뷰 뒤 동료들이 물을 끼얹으며 축하한 데 대해 오승환은 "생각도 못 했는데 물을 뿌려줘 기분이 좋다"고 웃었다. 이어 "동료들이 챙겨준다는 게 팀이 끈끈하게 가는 것 같아서 기분 좋고 항상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오승환은 지난 9일 1군 복귀전에 앞서 "400세이브는 크게 생각하고 있지 않지만 빨리 털고 팀 승리를 위해 나가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이날 대기록을 달성한 이후 오승환은 "팀이 좋아지고 있는데 나만 잘하면 될 것 같다"면서 "(삼성 불펜이) 더 강해지도록 하겠다"고 입을 앙다물었다. 이제 긴장을 털고 진짜 돌부처의 귀환이 이뤄질 것 같다.
잠실=CBS노컷뉴스 임종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