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아서 도망쳤다" 성폭력에 노출된 농어촌 외국인 노동자
성추행·성희롱 피해 반복되지만 강제출국 두려워 '침묵'
추근대는 한국인 고용주… 이웃 주민 역시 성폭력 가해자
피해 사실 알려질까 사업장 이탈하거나 고국으로 돌아가기도
※ 농어촌에서 일하는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은 각종 성추행·성희롱 피해를 당하고 있지만 강제 출국이 두려워 신고조차 못하고 있다. 광주CBS 기획보도 '농어촌 외국인 노동자의 '눈물' - 코리안 드림은 없다' 여섯 번째 순서로 최소한의 잠금장치도 없는 곳에서 성폭력 위험에 그대로 노출된 상태로 지내는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의 실태에 대해 보도한다.[편집자 주]
성추행·성희롱 피해에도 강제 출국될까 두려워 '침묵' 하거나 '도주'
외국인 노동자가 일하는 광주 한 토마토 비닐하우스(사진=독자 제공) |
"지옥 같아서 도망쳤다"
지난 2018년 전남 담양 한 토마토 비닐하우스에서 일하던 캄보디아 국적 20대 여성 A씨는 60대 고용주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고용주는 엉덩이와 가슴 등을 만지는 성추행을 반복했지만 혼자 지내며 휴대전화까지 없었던 A씨는 누군가에게 이 같은 털어놓을 수 없었다. A씨는 뒤늦게 해당 농장에서 벗어났지만 사업장 무단이탈로 처리되면서 불법 외국인 노동자 신분이 됐다. A씨는 "지옥 같아서 도망쳤다"며 고용주의 상습적인 성추행을 떠올리며 진저리를 쳤다.
해당 고용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당한 외국인 노동자는 A씨뿐만이 아니었다. 과거에도 캄보디아 국적 외국인 여성 노동자 4명을 고용한 적이 있는 고용주는 외국인 여성의 상의를 벗기는 등의 성추행을 일삼아 문제가 됐지만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처벌받지 않았다. 이들 피해 여성들은 모두 제대로 된 잠금장치도 없는 비닐하우스 안에 만들어진 방 등에서 지내야 했다. 이처럼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성추행·성폭력 피해가 반복되고 있지만 재발 방지책은 마련돼 있지 않다.
추근대는 한국인 고용주…이웃 주민도 또 다른 성폭력 가해자
외국인 여성 노동자(사진=박요진 기자) |
외국인 여성 노동자들은 고용주들로부터 신체 접촉은 물론 "잘해줄 테니 나랑 만나자" 등의 추근대는 듯한 성희롱성 발언에 일상적으로 노출돼 있다. 일과가 끝난 뒤 술자리에 참석할 것을 강요받거나 숙소로 찾아오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 때문에 성추행 피해를 당한 외국인 여성 중 일부는 계약기간까지 일하지 못하고 고국으로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전북 익산의 한 딸기 비닐하우스에서 일한 동티모르 국적 20대 B씨는 마을에서 200m 이상 떨어진 조립식 건물에서 홀로 지냈다. B씨가 혼자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고용주의 지인은 여러 차례 밤늦게 찾아오다 결국 성폭행까지 시도했다. B씨는 가해자를 경찰에 신고하기 위해 관계 기관과 상담했지만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될 경우 강제 출국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고용주가 외국인 노동자가 아닌 가해자의 편에 설 경우 혐의 입증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서 결국 신고조차 할 수 없었다.
고국에 알려질까 두려워 혼자 끙끙 앓는 외국인 노동자
고국에까지 성폭력 피해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운 여성들은 피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불법 외국인 노동자 신분인 여성들의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하다. 지난 2017년 경기도 화성시 한 비닐하우스에서 일한 인도네시아 국적 20대 여성 C씨는 50대 고용주로부터 인근 밭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당시 C씨는 크게 소리쳤지만 범행 장소가 마을과 떨어져 있어 아무런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소문이 날까 두려웠던 C씨는 광주로 내려와 뒤늦게 다른 나라 출신 이주민 여성에게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별다른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 법무법인 동행 이소아 변호사는 "외국인 노동자 중에서도 여성 노동자는 성추행과 성폭력 등의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된 상태에서 일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들 피해자들이 상담할 수 있는 기관조차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애초에 처벌을 기대하긴 힘든 상황"이라고 말했다.
광주CBS 박요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