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엔 독설, 미국엔 미소…두 얼굴의 김여정
북미대화 선 그으며 미국 비판했지만 절제된 어조로 유화 제스처
'독립기념일 DVD' 언급, 파격 행보…美에 호의적 이미지 노린 듯
문 대통령에 '철면피한 감언이설' 말 폭탄과 딴판…양면전술 구사
미국과는 장기전 포석 접근, 한국엔 강경 톤으로 합의 이행 재촉
(이미지=연합뉴스) |
최근 문재인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대남 강경론자로 변신한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미국에는 절제된 언사로 유화 제스처까지 보내는 이중전략을 구사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10일 담화에서 미국이 국내 정치적 이유로 북미대화에 나서려 한다고 비판했지만 전반적 수위는 낮고 어조도 차분했다.
김 부부장은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우려하는 11월 대선 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도발 따위는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우리는 미국에 위협을 가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이에 대해서는 (김정은) 위원장 동지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분명한 입장을 밝히신 적이 있다"면서 "우리를 다치지만 말고 건드리지 않으면 모든 것이 편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타방(미국)의 불가역적 중대조치'라는 전제조건을 달긴 했지만 비핵화 의지도 명시적으로 확인했다. 북한의 2인자로 불리는 김 부부장의 공개적 발언이란 점에서 평가할 만한 하다.
김 부부장은 또 공식 직함을 사용한 담화로는 극히 이례적으로 미국에 대한 개인적 소회로 해석되는 언급을 덧붙여 눈길을 잡아끌었다.
그는 "끝으로 며칠 전 TV보도를 통해 본 미국 독립절 기념행사에 대한 소감을 전하려고 한다"면서 "가능하다면 앞으로 독립절 기념행사를 수록한 DVD를 개인적으로 꼭 얻으려 한다는데 대하여 위원장 동지로부터 허락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 부부장이 미국 방송을 모니터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하지만 이런 사실을 스스럼없이 공개하고 더 나아가 DVD 소장 의사까지 밝힌 것은 북한 체제에선 상상하기 힘들다.
북한은 미국과 남한 등 '자본주의 퇴폐 사조'를 금기시하며 이를 전파하는 DVD 등을 엄단하고 있다.
백두혈통 등 특권 계급은 예외일 수 있지만, 엄연히 적대국인 미국을 향해 이런 '사생활'을 밝힌 것은 전례 없이 파격적이다.
7월 4일 독립기념일은 미국의 최대 경축일 가운데 하나로 해마다 화려한 불꽃놀이 행사 등을 통해 영국 식민 압제로부터 해방된 날을 기린다.
김 부부장의 독립기념일 DVD에 담긴 구체적 메시지는 알 수 없지만 대미외교 데뷔전에서 미국인들에게 호의적 인상을 심어줄 것임을 분명하다.
(일러스트=연합뉴스) |
그는 담화 말미에 "나는 원래 남조선을 향해서라면 몰라도 미국 사람들을 향해서는 이런 글을 쓰기를 원하지 않았다"고도 말했다.
이어진 문장이 독립기념일 소감이란 점과, 전체적 맥락으로 볼 때 미국에 대한 개인적 선호를 간접적으로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김 부부장의 말마따나 최근 남측에 180도 표변한 태도로 독설을 퍼부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다.
그는 지난달 17일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는 제목의 담화에서 문 대통령을 겨냥해 '뻔뻔함과 추악함' '요사스러운 말장난' 등의 말 폭탄을 퍼부었다.
대남관계에 이어 대미관계에까지 전면에 나선 김 부부장은 앞으로도 이런 양면전술을 통해 한미 양측에 분리 대응함으로써 이득을 극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에는 대선 이후와 미국 조야의 기류까지 염두에 둔 장기적 포석으로 당분간은 유화책으로 임하되, 한국에는 강경 어조로 기존 합의 이행을 채근하며 활동 공간을 넓히려는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 교수는 "(이번 담화는) 대남관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으며 핵문제는 철저히 북미관계라는 입장 아래 기술하고 있다"며 "반대로 우리에 대한 비난을 자제하면서 자신들이 이러한 입장을 냈으니 한국도 역할을 하라는 간접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