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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리스트 홍진호, 정통 벗고 대중과 호흡하는 이유

인터뷰

'슈퍼밴드'의 우승팀 '호피폴라' 멤버

"초딩 5학년때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듣고 소름..첼로와 인연"

서울대 음대→독일 뷔어츠부르크 음대→오케스트라 활약

8월1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첫 단독 콘서트

"위로가 되는 연주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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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첼리스트 홍진호(사진=크레디아 제공)2020.07.07 photo@newsis.com

"제가 연주할 때 나오는 표정을 싫어한다. 아니, 싫어했다. 그게 컨트롤이 안 된다. 멋있는 표정으로(연주)하고 싶지만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면 표정이 제 영역을 벗어나는 것 같다. 보통 되게 진지한(표정으로 연주하지)않나. 웃는 것도 습관인 것 같다."


지난해 방송된 JTBC 경연프로그램 '슈퍼밴드'에서 우승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밴드 '호피폴라'의 멤버 첼리스트 홍진호. 그의 팬들은 그가 연주에 심취할 때 나오곤 하는 특유의 미소를 머금은 듯한 표정을 사랑한다. 정작 자신은 '트레이드 마크'가 된 그 표정을 싫어했다고 수줍게 고백했다.


대중음악을 추구하는 밴드의 일원인 그는 사실 정통 클래식 음악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첼로에 입문했다. "우연히 듣게 된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3악장을 듣고 무작정 첼리스트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3악장에 오케스트라 리듬을 무겁게 치는 게 나온다. 그걸 듣고 충격을 받았다. 소름 끼쳤다. 이게 무슨 악기냐 하고 부모님께 여쭤봤더니 첼로라는 악기라고 그래서 무작정 첼로를 시켜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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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첼리스트 홍진호(사진=크레디아 제공)2020.07.07 photo@newsis.com

한 달 넘게 반대하던 그의 부모님은 그의 고집에 못 이겨 취미 삼아 해보라며 35만원짜리 저렴한 첼로 하나를 그에게 쥐어 줬다. 그리고 당시 춘천시향 첼로 수석이었던 이상순에게 연이 닿았고, 그에게 첼로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이상순 선생님한테 상담을 가니 제 손을 보고 악기를 해야겠다고 하더라. 그(35만원짜리)악기로 2년 정도 연주했다. 부모님께만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 이상순 선생님과 첼로를 진로로 해 예고를 진학하는 게 좋겠다고 작당 모의를 했다"며 웃었다.


어릴 적부터 공부를 곧잘 했던 홍진호에게 그의 부모가 거는 기대는 상당했다. "부모님은 첼로를 시작한지 2년이 지났지만, 그저 취미로만 배우고 있을 뿐 그것을 전공하겠다고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과학고에 진학하기를 바랐던 그가 예고 입시를 준비하겠다고 하자, 부모님은 또 다시 반대하고 나섰다.


"중2 봄방학 때 서울로 무작정 올라와 예술의전당을 찾아갔다. 그때 정문 옆에 붙은 '음연여름캠프'(클래식 캠프) 전단지를 봤다. 내용을 보니 나오는 선생님들이 대단하더라. 그런데 7박8일 캠프의 참가비 상당히 고가였다. 부모님은 또 허락해 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장문의 편지를 썼고, '캠프에 보내주면 다른 사람이 되서 나타나겠다. 가서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는 평가를 받으면 첼로를 놓겠다'고 하니 허락해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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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첼리스트 홍진호(사진=크레디아 제공)2020.07.07 photo@newsis.com

홍진호는 그곳에서 한국의 대표적인 중견 첼리스트 송희송을 만났다. 그의 연주를 본 송희송은 그에게 "너는 첼로를 전공으로 해야겠다"고 그에게 확신을 주었다. 그 뿐만 아니라 예고 진학을 반대하는 홍진호의 부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설득했다.


우여곡절 끝에 서울예고에 입학한 그는 대한민국 최고 음대인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독일로 향했다. 뮌헨, 베를린 등 대도시에 소재한 학교는 제쳐두고 소도시 뷔어츠부르크 음대에 입학했다. 미국의 명문 예술학교 줄리아드 스쿨의 스카웃 제의도 거절하고, 독일의 소도시로 향할 때 그는 주변인들 모두를 놀라게 했다.


"(세계적인 첼리스트인)니클라스 에핑어가 협연하러 한국에 오셨을 때 그의 연주에 완전 반했다. 에핑어 선생님이 그 대학에 교수로 계셨다. 한국에서는 독일, 뮌헨이 명문으로 통하지만 내가 실력이 느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당시엔 그곳에 한국 사람이 정말 없어 연습에만 전념할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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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첼리스트 홍진호(사진=크레디아 제공)2020.07.07 photo@newsis.com

졸업 후 유수의 오케스트라에서 활약하던 그는 4년 만에 오케스트라를 박차고 나와 솔로의 길을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오케스트라 활동은 많은 인원들과 소리를 맞춰가는 작업이다. 재밌기도 했는데, 제가 귀로 수용해야할 소리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디테일하게 작은 소리를 듣고 싶은데, 쾅쾅 울리니까 나중에는 내 소리도 잘 안 들리더라. 또 좀 더 도전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오케스트라에 있으면 다양한 음악을 하는 데 제약이 있을 것 같았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2016년 귀국 독주회를 시작으로 정통 클래식 연주자로 커리어를 쌓아가던 그는 '슈퍼밴드'에 참여하며 그의 음악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남성 4중창 경연 프로그램 '팬텀싱어'를 보고 클래식에도 경연 프로그램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는 '슈퍼밴드' 참가 조건에 '클래식 연주자'라는 글귀를 보고 참가자에 이름을 올렸다.


그는 높은 순위까지 올라가는 것은 바라지도 않았다. 단지 '첼로'라는 악기를 더 많은 대중에게 알리고 싶다는 소박한 욕심에 출연을 결심했다.


"첼로라는 악기가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첫 라운드가 솔로 경연인 만큼 '슈퍼밴드'를 시청하는 몇 명이라도 첼로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할 뿐이었다."


"현악기군 중 비교하면 바이올린은 날카롭고 귀에 꽂히는 소리를 낸다. 콘트라베이스는 묵직하다. 첼로는 이 둘의 역할을 모두 할 수 있다. 예민한 소리를 내기도 하면서, 받쳐주는 역할도 할 수 있다. 인간의 음역대랑 가장 유사하다."


그의 바람은 경연을 거듭할 때마다 현실이 돼 갔고, 지난해 열린 독주회 때 '작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방송을 통해 저를 좋아하기 시작한 팬들이 클래식 독주회에 많이 오셨다. 레퍼토리를(대중이 익숙지 않은)정통 클래식 곡들로 짰다. 클래식 공연을 처음 보신 팬분들이 낯설어 하시면서도 지루해 하지 않았다. '몰랐던 걸 알게 됐다'고 좋아해주셨다. 너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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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첼리스트 홍진호(사진=크레디아 제공)2020.07.07 photo@newsis.com

그러면서 그는 클래식계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는 현 시대에 너무 정적이기만 한 연주는 쉽게 피로감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고민은 오는 8월16일 열릴 첫 단독 콘서트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2000여 석을 지닌 대형 공연장 롯데콘서트홀에서 '음악으로 정화된 밤'이라는 주제로 열린다.


에릭 사티 '그노시엔', 아르보 패르트 '거울 속의 거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이 지오르니', 피아졸라 '푸가타', '아디오스 노니노' 등 고전과 현대 음악 그리고 팝 음악을 아우르는 곡들을 선보인다.


"기존 첼로 독주회에서 볼 수 없었던 것들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다.


"'첼로 하면 홍진호'라고 제 이름을 떠올릴 수 있는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위로가 되는 연주자', '힘들 때 힘을 주는 연주자'로 기억되고 싶어요."


​[서울=뉴시스] 남정현 기자 = ​nam_jh@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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