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우 "강박에서 벗어나 스스로 가치를 높이고 싶어요"
기사내용 요약
'나의 해방일지'서 싱글대디 '조태훈' 역 맡아"욕심내 연기하지 않으려 노력"
"상대역 이엘 털털한 성격…쉽게 친해져"
삶의 쉼표이자 느낌표는 반려견 '테디'
[서울=뉴시스]배우 이기우. 2022.05.27.(사진=네버다이 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
배우 이기우(41)의 목표는 타인의 시선과 물질적 강박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20년 넘게 연예인으로 살아오며 화려한 삶 이면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가령 '이 정도의 차는 타야 하고, 이런 신발은 신어야 하고, 여행을 가려면 이런 데는 가야지' 하는 것들. 불편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벗어나기 쉽지 않았다. 2년 전 나고 자란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이사하며 조금씩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소하지만 편안했고, 겉으로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서울에 살 때 자동차 운전대를 잡고 두세 시간 도로에서 버리는 게 일상이었어요. 그때는 낭비라고 생각 안 했는데 지금은 너무 아깝더라고요. 예전에는 남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했어요. 몇 년 전부터는 그것으로부터 탈피하려고 노력 중이에요. 2014년부터 몰던 차가 자꾸 고장 나는데 고쳐 쓰는 분이 있어요. 가족이 함께 타고 미국 횡단했던 차여서 의미 있대요. 충분히 바꿀 수 있는데 그러지 않는 이유를 어떻게 멋있게 설명하는지가 그 사람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 같아요. 40대 초반인 지금은 스스로 가치를 높일 방법을 고민해요. 일상 중 소확행을 꾸준히 찾으려고 노력해요."
지난 29일 종영한 JTBC 주말극 '나의 해방일지'는 그런 이기우의 삶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이 드라마는 경기도 산포에 사는 삼남매 '염기정'(이엘) '염창희'(이민기) '염미정'(김지원)의 행복소생기에 관한 이야기다. 각 인물은 자신을 짓누르는 고통에서 벗어나 저마다의 해방을 꿈꾼다. 이기우는 기정의 연인이자 싱글대디 '조태훈'으로 분했다. 이혼 후 사춘기 딸, 누나 둘과 살고 있다. 무기력하고 지친 삶 속 유일하게 자신을 쉬게 해주는 기정에게 끌렸다. 그는 친한 친구의 모습을 통해 태훈을 구체화했다.
"친구들이 회사에서 태훈과 비슷한 직급이에요. 맥주 마시면서 자문도 구하고 태훈이 같은 상황에 놓인 친구도 있어요. 예전에 비해 표정이 많이 없어지고 에너지도 줄어들고 체념하고, 책임감으로 살아가는 느낌이었어요. 싱글대디의 삶을 경험해보지는 못했지만 무채색에 가까운 느낌을 입히려고 노력했어요. PD님도 저의 원래 색보다 옅은 느낌으로 간결하고 담백하게 디렉팅했어요."
[서울=뉴시스]배우 이기우·이엘. 2022.05.27.(사진=JTBC '나의 해방일지' 제공) photo@newsis.com*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
기정이 태훈에게 고백을 거절당하고 반하는 장면, 기정이 결혼하자고 했을 때 태훈이 바로 "그럽시다"고 답하는 신이 많은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기정과 태훈의 애정 서사는 치열한 고민과 노력 끝에 탄생했다. "기정이 태훈에게 LP판을 건네주며 고백할 때 태훈이 표정이 무척 안 좋다.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듣고 미안함이 생겼을 때 그런 표정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거절의 농도를 정할 때 PD님과 현장에서 많이 상의했다"고 털어놨다.
"그간 태훈이는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거나 주위의 자극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았어요. 묵묵히 참는 게 습관화됐는데 엄마를 잃은 기정이가 청혼했을 때 바로 '그럽시다'고 간결하게 대답하죠. 원래 태훈이가 감동한 표정이 있었는데 실제 방송에는 더 짧게 나왔어요. 주어진 대사가 짧다 보니 표정으로 살을 붙여야 해서 연기 공부를 많이 했어요. 제가 너무 욕심내 버리면 작가님이 설정해놓은 캐릭터에 부합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극 중 달콤쌉싸름한 연애를 이어간 이엘과 호흡은 완벽했다. 캐릭터가 아닌 배우 이기우와 이엘로 소통했다. 술 먹는 장면에서 실제로 술을 마시고 촬영한 적도 있다. 주고받는 시선까지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이엘 씨가 기정 같은 면이 있다. 현장에서도 털털하고 실제 나이 차도 얼마 안 나서 쉽게 친해졌다. 작품에 관한 이야기보다 사담을 더 많이 한 것 같다"며 웃었다.
실제 이상형도 기정처럼 솔직한 사람이다. 기정은 사람들이 때때로 감추고 싶은 진심도 모두 내보인다. 생각한 것을 바로 말로 내뱉는 성정 때문에 곤란한 일을 겪기도 하지만, 덕분에 태훈과 갈등이 깊어지기 전에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기우는 "불편한데 참는 걸 안 좋아한다. 못마땅한 게 있으면 바로 이야기해줬으면 한다. 사소한 거라도 담아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정이가 이모티콘과 문제를 보내는 말투가 귀엽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고 밝혔다.
태훈은 같은 회사 직원 미정, '박상민'(박수영), '소향기'(이지혜)와 '해방클럽'을 결성해 벗어나고 싶은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해방클럽의 강령은 스스로에게만 정직하면 되고, 남을 위로하지 않는 것이다. 그는 "자기 스스로를 존중하고 가치를 높이는 데에 그만한 강령은 없다. 태훈은 약해진다는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다. 해방클럽을 통해 인간 이기우도 얻은 것이 분명히 있다"고 전했다.
[서울=뉴시스]배우 이기우. 2022.05.27.(사진=네버다이 엔터테인먼트 제공) photo@newsis.com*재판매 및 DB 금지 *재판매 및 DB 금지 |
2003년 영화 '클래식'으로 본격적인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드라마 '이 죽일놈의 사랑'(2005) '스타의 연인'(2008) '꽃미남 라면가게'(2011) '미스코리아'(2013~2014) '기억'(2016) '품위있는 그녀'(2017) '18 어게인'(2020), 영화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2004) '해변의 여인'(2006) '두 사람이다'(2007) '웨딩드레스'(2010) '추적자'(2014) '시간이탈자'(2015) 등에서 열연했다. 1년에 한 작품 이상 꼭 출연하는 다작 배우다. 누구보다 열심히 연기해왔지만 처음부터 배우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오는 데 가족의 힘이 가장 컸어요. 저는 연극영화과를 다니는 학생도 아니었고 원래 공무원이 꿈이었거든요. 배우가 된다는 말을 듣고 (부모님이) 놀라거나 반대할 수도 있는데 제가 즐겁게 일하는 걸 무척 좋아해요. 제 이름 박힌 영화 '클래식' 간판을 보고 기뻐하는 모습은 한 10년 치 뿌듯함이었죠. 작품 할 때마다 가족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제 이야기하는 게 큰 에너지예요. 가족뿐 아니라 배우 생활하며 좋은 영향을 주는 분들을 많이 만나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회의적인 느낌이 든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20년간 수십 편의 작품에 출연했지만 인생 캐릭터가 '클래식'의 '태수'라는 말에 공감한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다그치는 말이기도 하다. "2, 30대를 태수로 버텨왔어요. 40대 초반에 만난 '태훈'은 제가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크고 친절한 이정표 같아요. 그래서 고마워요. 인생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로서 얻은 것보다 함께한 사람들로부터 얻은 게 더 많은 작품이었어요."
이기우에게 안식을 주는 쉼표이자 새로운 영감이 되어준 느낌표는 반려견 '테디'다. 펫로스를 경험한 뒤 유기견 테디를 만났다. 종일 밖에서 시달리다 녹초가 돼 들어와도 테디 꼬리 흔드는 것을 보면 피로가 다 날아간다. 큰돈을 쓰지 않더라도 테디와 바람 쐬러 떠나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키우던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 저와 가족한테 해줬던 것에 비해 많이 못 해준 게 마음에 남았어요. 한 30년 후의 일이면 좋겠지만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덜 미안하고 우리 참 아름다웠다고 생각할 정도로 테디한테 잘하고 싶어요."
[서울=뉴시스]박은해 기자 = peh@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