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비 "연예인이 그렸다고 1000만원 이상 주고 살까?"
개인전 ‘리얼 리얼리티, 불편한 진실’
가수 솔비(35·권지안)는 2009년 동영상 루머에 휩싸였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당시 SNS를 통해 ‘솔비 동영상’이라는 제목의 음란물이 급속도로 퍼졌다.
경찰 조사 결과, 영상 속 여자는 솔비가 아니었다. 고등학생 등이 재미삼아 또는 상술 등의 이유로 유포한 것이 드러났다. 솔비가 아무리 아니라고 얘기해도 믿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나 하나 없어지면 되지 않을까’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솔비는 여자 연예인으로서 겪는 아픔과 상처를 미술로 승화했다. 2010년부터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고, 2012년 첫 개인전을 열었다. 2015년 음악과 미술을 결합,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펼쳐 주목 받았다. ‘2019 대한민국 퍼스트브랜드 대상’에서 아트테이너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3년여 만에 개인전 ‘리얼 리얼리티, 불편한 진실’로 돌아왔다. 23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2017년부터 작업한 70여점을 선보인다. 하이퍼리즘 ‘레드’, ‘블루’, ‘바이올렛’이란 이름으로 제작했다.
“아름다움 이면의 우리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번이 4번째 개인전인데, 3년 공백이 짧게 느껴졌다. 원래 하이퍼리즘 시리즈는 1년 계획으로 세웠는데 음악, 안무, 영상을 만들고 그림 마무리까지 작업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내 자신을 꺼내서 스스로 상처를 건드리고 치유하는 과정을 담았다. 이번 작업을 통해 성장한 것 같아서 뿌듯하다. 2017년 레드 작업을 하고, 1년 동안 창고에서 작품을 꺼내지 못했다. 블루 작업을 하면서 다시 레드 작품을 꺼내 봤다. ‘내가 알던 솔비가 아닌 것 같다’고 하는데, 나의 진짜 모습과 상처를 대면하면서 많이 아팠다.”
레드는 상대적 약자로서 상처 받고 있는 여성의 삶을 주제로 그렸다. 2006년 혼성그룹 ‘타이푼’ 멤버로 데뷔, 10년 넘게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SNS 세상에 무분별하게 퍼진 루머·악플 등과 싸워야 했다. 자연스럽게 여성인권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이야기들이 퍼지는 것을 내가 막을 수 없지 않느냐. 작업을 통해 상처를 공감하고 싶었다”며 “레드 작업을 하면서 투쟁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동안 상처 받으면 혼자 숨곤 했는데, 많은 여성들이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고, 여성인권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커졌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블루는 계급사회의 진실을 주제로 사회계층 간의 불평등을 담았다. 갑질 횡포들이 계속 일어나는 상황 속 계급사회를 상징하는 오브제로 수트를 떠올렸다. 퍼포먼스로 페인팅된 캔버스를 재단해 수트 재킷으로 작품을 만들었고, 디지털 싱글 ‘바이올렛’도 발매했다. 사랑과 이별을 반복하며 생기는 ‘멍’이라는 주제로 솔비가 작사·작곡했다.
일렉트로닉 장르로 대중 가요와 약간 거리가 멀 수도 있다. 하지만 파리에 머물며 자연을 느끼고, 힐링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다. “마치 숲 속을 걷는 느낌이 들게 악기를 구성했다. 중간에 내레이션도 넣고, 후반부에는 비트가 빠르게 전환되지 않느냐. 퍼포먼스를 염두에 두고 작업했다”며 “대중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모든 음악은 다 마니아적인 특성이 있지 않느냐. 내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래도 바이올렛을 작업할 때 가장 고민이 많았다.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일까’ 고민했고, 아름답게 포장된 사랑의 이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고 마음 먹었다. “내가 가진 모든 힘을 뺀 이유”다.
인간의 최초 사랑과 원죄를 표현하기 위해 ‘아담과 이브’가 하늘 위에서 춤을 춘다는 상상을 하며 퍼포먼스를 완성했다. 레드로 상처를 표현하고, 블루에서 사회 메시지를 전달했다면 “바이올렛을 작업하며 상처가 치유됐다. 내가 가진 모든 힘많은 분들이 내 작품을 보고 치유 받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솔비는 그림을 그리기 전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잘하며,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몰랐다. 그림을 그리다보니 ‘진지한 사람이구나’라고 알게 됐다. 예능에서 엉뚱하고 재미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줘서 “나 조차도 진지하면 안 될 것 같아 어색했다”며 웃었다.
“재미있는 모습만 보여줘야 할 것 같았지만, 내 자신을 꺼내서 이야기하다보니 솔직해졌다”면서 “재미있는 모습도 나의 장점이라서 버리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 안에 여러 자아가 있다. ‘솔비 나와’ 하면 언제든 꺼낼 수 있다. 대중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어떤 방식도 좋다”며 행복해했다.
솔비 그림은 경매에서 2000만원~3000만원대에 거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예인이라서 높게 평가 받는 것 아니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들도 많다.
“나는 이번에 작업한 작품 가격도 모른다. 가격 리스트도 보지 않고, 어떤 분들이 내 그림을 사는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연예인 솔비를 보고 그림을 사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솔직히 1000만원 이상을 쓰는데, 연예인 솔비가 그린 거라고 하면 사겠느냐. 물론 연예인라서 많은 기자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등 혜택도 있지만 다른 부분이다. 그림을 사는 것은 ‘작가의 삶까지 사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많은 분들이 작가로서 솔비를 지켜보고, 내 삶도 주목해서 봐주는 것 같다.”
솔비 외에도 많은 스타들이 작가로서 활동 중이다. 영화배우 하정우(41), 탤런트 정려원(38), 구혜선(35) 등이다. 연예인들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쉽지 않다. 항상 평가 받고, 일과 일상을 분리하기도 쉽지 않다. “그림을 소통의 도구로 삼는 것”이라며 “나의 솔직한 이야기를 그림에 담고 힐링할 수 있다”고 짚었다.
솔비는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는 게 꿈”이다. 아직도 연예인 솔비에게 선입견을 가진 이들이 많지만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다. 인정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고, 꼭 인정받아야 한다는 각오도 크다. 미술을 하는 아티스트들에게 예의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TV 속 연예인이 아닌, 대중들과 삶을 공유하는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내가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나 답게!’다. 손가락질 받을 때도 있었는데, 나에 대한 편견을 깨는 게 평생 숙제다. 권지안 작가라서 호감을 가지고 전시회에 왔다가, 솔비인 걸 알고 실망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이번 전시는 선입견 없이 온전히 작품에만 집중해줬으면 좋겠다. 스스로 아티스트라고 하기는 조심스럽지만, 해외에 나가서 ‘우리나라에 미술과 음악을 결합하는 아티스트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 언젠가는 아티스트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러워지지 않을까.”
【서울=뉴시스】최지윤 기자 = plain@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