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혁 "5.18 역사 알고 나니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뮤지컬 '광주'
광주 파견 특수부대 편의대원 '박한수' 역
"악마같은 존재 인간적인 모습 배제했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뮤지컬 '광주'에 출연하는 배우 민우혁이 1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0.14.kkssmm99@newsis.com |
"뮤지컬 '광주'를 연습하면서 '딛고 일어서야 한다'가 가장 큰 목표였어요. 계속 말이 안 나올 정도로 슬픔을 느꼈거든요."
민우혁도 힘이 부쳤다. 뮤지컬계에서 '힘'하면 빠질 수 없는 배우다.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내에서 타이틀롤이 내리치는 아크릴판을 처음 깬 배우가 그다.
그럼에도 뮤지컬 '광주'는 쉽지 않았다. 민주주의 상징곡으로 자리잡은 '님을 위한 행진곡'을 소재로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
최근 삼청동에서 만나 민우혁은 "5·18민주화운동은 어릴 때 어렴풋하게 듣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번 작품 때문에 (역사를) 찾아보면서 마냥 행복하지는 않더라"고 털어놓았다.
그런데 '진실을 진실로 알고, 진실 되게 행하는 자만이, 진실 속에 영원히 머문다'는 극 중 대사가 민우혁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뮤지컬 '광주'에 출연하는 배우 민우혁이 1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0.14.kkssmm99@newsis.com |
'광주'는 국가 공권력의 계략에 굴복하지 않는 시민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편의대 대원의 고뇌를 그린다. 편의대는 군의 투입을 정당화하기 위한 왜곡 논리를 생산·유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우혁은 극 중 마지막 임무를 위해 광주에 파견된 특수부대 편의대원 '박한수'를 연기한다. 그는 혼란을 야기하려는 목적으로 시민들 틈에 잠입한다. 그러나 시민들이 폭행 당하고 연행되는 참상을 목격하면서 이념의 변화를 겪게 된다.
민우혁은 처음에 '악마 같은 존재'로 캐릭터를 설정했다. 극단의 상황에서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세뇌를 당하는 것을 떠올렸다. "박한수가 군인 본분에 충실하고, 본인도 악마가 되는지 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는 하지 않았다. '박한수를 용서해주세요'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 모습이 비쳐지면 안 되는 상황이거든요. 그런 부분이 어렵고 혼란스러웠어요. '피해의식'을 보여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뮤지컬 '광주'에 출연하는 배우 민우혁이 1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0.14.kkssmm99@newsis.com |
'광주'는 캐릭터 해석뿐만 난제가 아니다. 음악도 어렵다. 극의 주요 테마곡은 '님을 위한 행진곡'. 지난해 홍콩 송환법 반대 집회 현장에서 등장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현지에 5·18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노래로, 영화 '변호인' '택시운전사' 등을 통해 알려졌다.
'님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2월 윤상원·박기순 열사의 영혼 결혼식 이후 같은 해 4월 황 작가를 중심으로 지역 문화운동가 10명이 추모 노래극 '넋풀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만들어졌다. 작곡가 김종률의 멜로디에 백기완의 '묏비나리' 일부를 차용한 황석영 작가의 가사가 더해졌다.
이 무게감 있는 곡을 중심으로 뮤지컬 넘버를 작곡한 작곡가 최우정의 음악은 어렵다. 미국 뮤지컬 거장 스티븐 손드하임 풍의 불협화음이 곳곳에 배치됐다. 고음이 난무하는 뮤지컬들을 소화해온 이성준이 음악감독이다.
민우혁은 처음에 음악을 듣고 "제가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래서 연습 들어가기 10일 전부터 음악 연습을 자청했다. "제게는 엄청 큰 도전이었어요. 이제 '이 세상에서 못할 뮤지컬은 없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음악으로 고생할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죠."
[서울=뉴시스] 뮤지컬 '광주'. 2020.10.14. (사진 = 라이브·마방진 제공) photo@newsis.com |
무엇보다 마지막 장면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면서 "광주 사람이 된 것처럼 뜨거워지더라"고 힘 주어 말했다. "당시 시대에 광주에 태어나 이 감정을 가지고 있었으면 큰 용기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연극 '푸르른 날에', '나는 광주에 없었다'를 통해 이미 5·18 민주화운동을 톺아본 고선웅이 이번에 연출이다. 따듯한 리더십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에 대해 민우혁은 "왜 고선웅 고선웅 하는 줄 알게 됐다"고 했다. 고 연출과 처음 작업인 민우혁은 "배우 각자가 생각하는 걸 모두 들어주시고, 어색하지 않게 반영을 해주신다"면서 "큰 그림을 유지하는, 멋있는 선장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187㎝의 훤칠한 외모를 자랑하는 민우혁은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선수 생활을 했다. 2000년대 중반 그룹 생활을 하며 가요계에 몸담기도 했던 그는 2013년 말 '젊음의 행진'때부터 본격적으로 뮤지컬배우 생활을 시작했다.
특히 2015년 국내 첫 야구 뮤지컬 '너에게 빛의 속도로 간다'에서 잊혀진 투수 김건덕을 맡아 직구 같은 연기로 호평 받았다. 이후 '레 미제라블'의 학생 혁명군 리더 '앙졸라', '위키드'에서 초록 마녀 엘파바를 통해 진정한 사랑을 깨닫는 피에로, 디즈니 뮤지컬 '아이다'의 남주인공인 이집트 장군 라다메스 그리고 '프랑켄슈타인'의 타이틀롤, '벤허'의 메셀라와 벤허 역 등을 맡으며 뮤지컬계 주축 배우로 성장해왔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뮤지컬 '광주'에 출연하는 배우 민우혁이 1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0.14.kkssmm99@newsis.com |
그는 투수로 치면 이미 좋은 구질을 갖고 있었다. 공이 무거운가 가뱌운가, 빠른가 느린가 등의 성질을 가리키는 구질은 투수의 신체적 또는 피칭 메커니즘적 특징이 강하게 반영된다. 민우혁은 단연 돋보이는 피지컬로 자신의 구질을 만들어왔다.
그 구질을 바탕으로 이제 다양한 구종을 던지를 경지에 이르렀다. 구종은 직구, 커브, 슬라이더, 포크볼 등을 가리킨다. 민우혁은 '광주'에 대해 너클볼 같다고 했다. 이 작품을 잘 소화하면 이제 처음 너클볼 구종도 갖추게 된다.
너클볼은 홈플레이트에서 예측 불가능하게 변하는 변화구의 일종이다. "뮤지컬 '광주'는 '너클볼'이에요. 캐릭터 관계가 많다 보니 작품이 어디로 튈지 모르거든요. 같은 역할의 배우더라도 해석, 뉘앙스가 달라지면 그 차이가 커서 어렵죠."
뮤지컬 외에 KBS 2TV '불후의 명곡' 등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려온 민우혁도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러다 다른 공연 관계자들처럼 코로나19로 뮤지컬 '영웅본색'이 조기 종연되면서 한동안 쉬었다. "몇년 간 일중독이었거든요. 다시 무대에 서지 못할까봐 두려웠어요."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뮤지컬 '광주'에 출연하는 배우 민우혁이 1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0.10.14.kkssmm99@newsis.com |
또 민우혁에게 두려움을 안겨준 건 성대 상태였다. 극한의 고음이 난무하는 뮤지컬에 많이 출연해온 그는 당연히 성대도 혹사시켰다. 근데 성대도 근육이라, 거기에 적응이 돼 있었다. 쉼이 성대를 건강하게 만들어줄 거라 생각했는데 고음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공황 장애와 같은 공포를 느꼈어요. 밤마다 홀로 차 안에서 그동안 불러온 넘버를 부르면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죠. 무대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이번 '광주'를 통해 또 무대의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고 나니 무대를 통해 정말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레미제라블'을 통해 묵직한 감동을 안겨준 주인공인 민우혁은 "'광주'는 한국의 '레미제라블"이라면서 "주연들을 위한 뮤지컬이 아닌, 무대에 오른 모든 배우들의 작품이에요. 억울하게 돌아가신 분들이 어떤 각오와 어떤 마음으로 희생을 하셨는지를 알게 됐고 그것을 표현하고 싶어요. 사명감을 갖게 됐습니다."
한편 '광주'는 문화체육관광부와 광주광역시가 주최하고 광주문화재단과 제작사 라이브㈜가 주관한다. '2019 님을 위한 행진곡 대중화 세계화 사업'의 하나로 기획됐다. 박한수 역은 민우혁, 그룹 '비투비' 서은광, 가수 겸 뮤지컬배우 테이가 나눠 맡는다. 오는 11월8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realpaper7@news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