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표'에 혁신 외면…입법·사법·행정 모두 '타다'에 등돌려
'타다 금지법' 상임위 일사천리 통과…법원에선 검찰과 법리 공방
1년간 혁신으로 성과 내고도 '사면초가'…이재웅 "할 말을 잃었다"
서울 시내에서 운행 중인 타다. 2019.12.1/뉴스1 © News1 성동훈 기자 |
"혁신경제를 구산업으로 구현할 수는 없다."
차량 호출 서비스 '타다'를 운영하는 브이씨엔씨(VCNC)의 박재욱 대표는 '타다 금지법'이 지난 5일 국회 국토교통안전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하자 "택시 사업자와 동시에 새로운 기업과 이용자 입장도 고려해 주길 바란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10월 '타다'라고 쓰여진 승합차 '카니발'이 거리에 나타나면서 대중교통 시장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승차거부 없는 자동배차, 말을 걸지 않는 운전기사, 담배냄새와 '뽕짝' 대신 공기청정기와 클래식이 있는 차내, 기사에게 사납금을 받는 대신 월급을 주는 서비스로 타다는 순식간에 입소문을 탔다.
타다는 서비스 초기 대기시간이 길다는 약점을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로 차량 운행을 최적화하며 빠르게 보완했다. 그 결과 출시 1년 만에 150만명의 이용자를 모은 타다는 차량을 1400여대로 늘리고 9000여명의 타다 드라이버에게 새 일자리를 제공했다.
혁신을 위해 '새판'을 짜던 젊은 기업가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타다 금지법은 이튿날 국토위 전체회의를 일사천리로 통과했다. 해당 법안이 논의되는 동안 자신의 이름을 걸고 타다의 혁신이나 이용자들의 편익을 옹호한 의원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막강한 '표심'이 걸린 택시산업의 보호를 외치며 타다를 어떻게 단속할지를 논의하는 목소리에만 힘이 실렸다.
브이씨엔씨의 모회사인 쏘카의 이재웅 대표는 이 모습을 두고 "할 말을 잃었다"고 탄식했다. 포털 사이트 '다음'을 창업한 벤처 1세대인 그는 "개정법안의 논의에는 '국민편의'나 '신산업'에 대한 고려는 없이 택시산업의 이익보호만 고려됐다"며 "과거를 보호하는 방법이 미래를 막는 것 밖에 없냐"고 한탄했다.
유권해석 않고 제도화 논의하자더니…결국 '타다 금지법'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대회의실에서 열린 택시산업-플랫폼 실무 논의기구 2차회의에서 택시업계 4개 단체와 플랫폼 관계자들이 김상도 국토부 종합교통정책관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2019.9.26/뉴스1 © News1 오대일 기자 |
여객운수법 개정안은 지난 7월 국토교통부가 내놓은 '혁신성장과 상생발전을 위한 택시제도 개편방안'을 법제화 한 법안이다. 정책명에서 알 수 있듯 애초에 타다와 같은 모빌리티 산업을 현행 택시제도 내에 편입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다.
국토부는 타다가 운영되는 1년 남짓 동안 타다가 합법인지 불법인지 유권해석을 내놓지 않았다. 대신 제도권에 편입시키기 위한 방안을 택시업계와 함께 논의하자며 협의체 참여를 독려했다. 하지만 협의의 결과는 '타다 금지법'으로 돌아왔다.
이재웅 대표는 "국토부와 협의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 협의 중에 저희(타다)가 제안한 내용은 단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고 그럴 리 없다고 하던 타다 금지 조항까지 추가됐다"고 주장했다.
타다 금지법이 통과되면 타다는 시행까지 1년과 유예기간 6개월을 합쳐 1년 6개월의 '시한부' 운명이 된다. 그 때까지 국토부로부터 플랫폼 운송 사업자로 허가를 받아 기여금을 내고 택시면허를 사들여야만 지금처럼 차량을 운영할 수 있게 된다. 택시에 대한 불만을 먹고 자란 타다를 두고 다시 "택시가 돼라"고 법으로 명령한 셈이다.
택시 앞에 무릎 꿇은 '모빌리티 잔혹사'…멍드는 혁신 산업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서울개인택시조합 '타다 OUT! 상생과 혁신을 위한 택시대동제'에서 조합원들이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발언에 환호하고 있다. 2019.10.23/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
사법부는 타다 금지법이 통과되기도 전에 이미 타다를 '불법 콜택시'로 규정하고 이재웅 대표와 박재욱 대표를 법정에 세웠다. 올해 2월 택시단체의 고발을 접수한 검찰은 지난 10월 이 대표와 박 대표를 여객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고, 지난 2일 첫 공판이 열렸다.
행정부·입법부·사업부로부터 동시에 압박을 받고 있는 타다의 모습은 지난 2013년 국내에 진출했다가 같은 모습으로 퇴출 당한 우버의 승차공유 서비스 사례와 겹쳐지고 있다. 이후 카풀과 공유버스 등 각종 모빌리티 서비스가 결국 택시업계의 반발과 규제 장벽을 넘지 못하고 모두 고사하는 '잔혹사'가 이어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타다를 둘러싸고 최근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혁신 산업에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기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정부와 국회, 검찰이 모두 한방향으로 기득권자인 택시산업을 보호하는 데만 치중해 새로운 혁신 서비스가 발붙일 여지를 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가장 먼저 시장을 선점한 기업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승자독식'의 플랫폼 경제 시대에 정책에 사업 속도를 맞추길 타다에 강요했다. 더구나 정책적으로 풀지 못한 택시 감차 문제를 '상생'을 빌미로 새롭게 시장에 뛰어든 사업자들에게 전가했다.
정치권은 조직적인 '표밭'인 택시업계를 의식해 이용자 편익이나 혁신 기업에 대한 신중한 고려 없이 정부가 요구하는 법안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타다 금지법을 대표 발의한 박홍근 의원은 지난 10월 타다를 규탄하기 위해 서울 개인택시 운전자 1만명이 운집한 대규모 시위에 참석해 타다 영업을 제한하는 법안 발의를 약속하기도 했다.
"누가 이 나라에서 사업 할 수 있겠나"…벤처·스타트업 업계 '허탈'
이재웅 쏘카 대표(왼쪽)와 박재욱 브이씨앤씨 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위반 1회 공판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 2019.12.2/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
검찰의 타다 기소 당시 벤처·스타트업 업계는 강하게 반발하며 한 목소리를 냈다. 혁신벤처단체협의회는 성명서를 통해 "신산업들은 번번이 기득권과 기존 법의 장벽에 막혀왔고 이제는 불법 여부를 판단 받아야 하는 서글픈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며 "기술발전 속도와 다양한 소비자 욕구를 따라가지 못하는 행정부의 소극적 행태와 입법 및 사회적 합의 과정의 지연은 국내 신산업 분야 창업과 성장을 후퇴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스타트업 1000여개를 회원사로 둔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정부, 국회, 검찰 모두 한 방향으로 스타트업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며 "택시만을 위한 법이 아닌 새로운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당시 타다를 합법화 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등장해 혁신을 옹호하는 이용자들의 주장이 주목을 받기도 했다.
타다 사태를 지켜보는 벤처·스타트업 업계는 씁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1년 넘도록 합법이다 불법이다 판단도 내리지 못한채 방치하다 법으로 틀어막고 사법처리를 하는 모습을 보고 누가 새로운 사업을 할 수 있겠는가"라며 "네거티브 규제 방식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제2, 제3의 타다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남도영 기자 = hyu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