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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 소리 나는 오르막 끝 악! 탄성…눈길마다 동양화

월악산국립공원 수산리~영봉~덕주골 12.2㎞…끝없는 계단과 사투

영봉에 서면 소박한 정상석…소나무 사이로 터지는 충주호 풍경 '황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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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 정상 영봉으로 오르는 천국의 계단. 수많은 ‘지옥의 계단’ 끝에 있다 © 뉴스1

산을 타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로 ‘악’자가 들어간 산을 가면 “악!소리가 난다”고 한다. 설악산, 치악산, 그리고 월악산이 그렇다. 그중에서 설악산과 치악산은 워낙 유명하고 접근이 쉬워서 가본 사람이 많지만, 월악산은 아직 소문으로만 악!산으로 들은 사람이 많다.

월악산(月岳山)은 높은 산에 달이 걸린 모습이 신비스러워 붙인 이름이다. 월악산 일대가 고려의 수도로 거론되다가 개경에 밀려 와락 떨어져서 와락산이라 했는데, 이를 한자로 월악산으로 표기했다는 설도 있다.


월악산 인근의 남한강 유역 일대를 중원(中原)이라 부른다. 축구경기에서 중원(미드필드)을 장악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국토의 중심인 중원은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월악산을 중심으로 한 백두대간 축이 천연요새와 같은 방벽 역할을 하면서, 남한강이 교통수단이 되고, 강 유역으로 비옥한 들판이 펼쳐진 곳이 중원이다. 또한, 수없이 중첩된 산 안에 많은 마을과 농토가 점점이 박혀 있어 은신하기에도 좋다. 그래서 강과 벌판에서는 전쟁이 많았지만, 산은 피난처로 이용되어 역사적인 유적과 사연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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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월악산(1097m)은 송계계곡과 용하계곡 사이에 우뚝 솟은 ‘독립된 산’이다. 월악산을 주산(主山)으로, 제천의 하설산(1034m), 북바위산(772m), 단양의 금수산(1015m), 도락산(964m), 문경의 대미산(1115m), 황장산(1077m), 포암산(962m) 등을 아울러 국립공원으로 지정했다. 정상인 영봉은 주변 산들의 기운이 이곳으로 몰려 하늘을 찌르는 듯한 기상이 웅장하고 비범해서, 혼이 깃든 봉우리(靈峰)라는 뜻이다.


영봉을 오르는 길은 동서남북으로 나 있다. 그중에서 수산리에서 영봉에 올라 덕주골로 내려가는 길은 충주호와 월악산 풍경의 진수를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종주코스다. 거친 오르막과 철계단에서 ‘악!’하는 비명을 내지만, 기가 막힌 풍경을 내려다보며 ‘악!’하는 탄성을 지른다. 내려가는 급한 계단에서도 ‘악!’해야 한다.

◇ 수산리-보덕암-하봉-중봉-영봉 6.3㎞ “끝없는 오르막 끝에 절경의 하봉, 영봉”

산악회 버스가 내려준 수산리는 평범한 농촌이다. 마을에 들어서며 구판장(購販場)이라는 간판을 오랜만에 본다. 생활용품이나 식재료를 싸게 파는 곳이다. 승용차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좁은 시멘트길 주변에 망초, 애기똥풀, 기린초 등의 들꽃이 드문드문하고 밤나무 꽃향기를 담은 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경사가 만만하지 않아서 30분 후 보덕암 주차장에 오르니 땀이 흥건하다. 제대로 워밍업을 한 셈이다.


보덕암 앞 전망대에서 충주호를 짧게 바라보고, 검은 숲으로 들어서니, 워밍업을 했으니 제대로 열을 받으라는 듯, 처음부터 계단과 거친 오르막이다. 각오는 했지만, 이토록 가파르고 이토록 계단 투성이인가? 두런두런 하던 대화는 어느새 사라지고, 악악, 헉헉, 으으, 모두들 자신과의 전투에 몰입한다. 간간이 나타나는 멋진 소나무들, 시루떡처럼 층층이 쌓인 바위를 바라보며, 그 핑계로 잠깐잠깐 쉬어간다.

이 코스에서 반가운 것은 이정표다. 대략 500m마다 나타나 영봉까지 500m씩 거리를 좁혀 준다. 어떤 사람에겐 이만큼이라도 왔다는 위로가 되고, 어떤 사람에겐 이만큼밖에 못 왔냐고 낙심이 되는 500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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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봉 밑 전망대에서 바라본 충주호. 고난 끝에 충분한 보상이 되는 산수화 풍경이다 © 뉴스1

얼마나 고도를 높였을까, 기다랗게 쭉쭉 뻗은 소나무들 사이로 풍경이 터지기 시작하며 드디어 하봉 밑 전망대에 선다. 헉헉대며 올라선 사람들 앞에 굉장한 풍경이 펼쳐진다. 야~아~, 백두산 천지를 길게 풀어놓은 듯, 초록 산자락에 담긴 푸른 호수가 시야에 가득하다. 오랜 가뭄으로 테두리가 허옇게 드러났지만, 저 밑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산과 물과 하늘이 어우러진 산수화 풍경이다. 충주호 풍경은 여기서가 최고다. 중봉과 영봉이 더 높지만, 거기서는 수면의 비율이 좁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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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 아찔한 구름다리. 오른쪽 하봉, 중봉 © 뉴스1

철계단을 몇 굽이 더 올라, 구름다리 끝의 작은 봉우리에서 여기가 하봉인지 잠깐 머뭇거리고(표지가 없음), 다시 기다란 내리막을 내려간다. 어떻게 올라온 길인데 내려선단 말인가, 그러나 복종할 수밖에 없다. 내리막 끝에서 길은 다시 하늘을 향해 거칠고 사나워진다. 아찔한 암릉에서 옆을 내려다보고 뒤를 돌아다보며 ‘풍경의 위로’를 받는다. 여러 개 계단을 꾸역꾸역 올라 중봉의 전망데크에 선다. 기다란 벼랑 아래에 하봉이 있고, 그 밑에 충주호가 유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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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계단 옆 절벽 사이에 낀 바위. 사진포즈를 잡으려는 사람이 위험스럽다 © 뉴스1

또 내려선다. 건너편에 빤히 보이는 영봉이지만, 이렇게 길게 내려서서 또 얼마나 용을 쓰고 올라야 할지, 내리막과 평지가 오히려 원망스럽다. 영봉 직전 300m부터 ‘신물이 나도록’ 계단이 이어진다. 오르고 올라, 다 왔지 않았을까, 수직 계단에서 고개를 들면 코앞에 또 계단이다. 체념의 끝, 체력의 끝에 영봉이 있다.


영봉에서 바라보는 광활한 풍경은 정말 악!소리가 난다. 가까이 북바위산, 포암산, 하설산 등 월악산제국에 속한 봉우리들이 첩첩하고, 멀리 소백산에서 속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뚜렷하며, 그 뒤로 주흘산의 윤곽이 아득하다. 가까운 산과 계곡은, 엎어진 그릇 위에 엎어진 그릇이 계속 포개져 있는 것처럼, 누구든 그 안에 들어가면 살 수 있는 공간이 있을 법하다. 그러나 멀리 겹쳐진 산과 능선들은, 장대하고 험준해서, 누구든 저 안에 들어가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느낌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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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봉에서 바라본 육중한 ‘월악산 제국’과 멀리 백두대간 능선들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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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봉-덕주사-덕주골 5.9㎞ “산신령 영봉 지나, 덕주공주와 마의태자 애환 깃든 하산길”


영봉은 둘레 4㎞, 높이 150m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인데, 정상과 정상석은 의외로 소박하다. 천신만고 끝에 올랐지만, 올라와서 보니 계단을 이용해 너무 쉽게 올라왔다는 생각이다. 계단과 데크로 덮여, 그만큼 신령스런 분위기도 덮여 버린 영봉이 아닐까, ‘죄송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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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봉 정상. 왼쪽 아래 송계계곡과 한수면 소재지 © 뉴스1

영봉의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깨는 다른 요소는 단체산행객들이다. 정상석에서 인증사진을 너무 오래 찍어 뒤에 선 사람들을 화나게 하더니, 정상 건너편 데크를 독차지하고 술 파티를 한다. 국립공원 정상에선 음주금지다. 더구나 이렇게 난이도 높은 등산로에서 음주는 사고로 연결될 확률이 높다. 등산로 중간에 난간 밖으로 나가 희귀식물들을 깔고앉아 식사를 하는 단체도 있었다. 드론순찰을 해서라도 다 벌금을 매기기 바란다.


이곳 영봉 주변과 월악산 일대에 산양이 서식하고 있다. 산양은 200만년 전에 출현한 이래 외형적인 변화가 없어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 진귀한 동물이다. 험한 산악의 바위지대에 서식하고 있는데, 그런 지역이기 때문에 천적과 사람을 피해 ‘용하게’ 생존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다 지나간 영봉에 날카로운 두 뿔에 갈기를 휘날리는 산양이 당당하게 선 모습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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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위기종 산양. 월악산국립공원의 깃대종(상징종)이다 © 뉴스1

이제 하산이다. 올라왔을 때보다 더 많은 철계단을 내려선다. 암벽 바깥으로 6-7개 계단이 겹쳐 보이는 수직계단을 올라서는 사람들이 “이걸 어떻게 만들었지! 공중에 뜬 것 같아! 중국 잔도(棧道) 같아!” 한마디씩 하는 와중에, 어떤 사람은 사색이 되어 기어 올라온다. 급경사 계단을 내려서는 것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앞으로 고꾸라지지 않기 위해 옆으로 비스듬하게 발을 디디며 철난간을 단단히 잡고 내려선다.


영봉 밑을 뺑 돌아, 덕주사 방향 능선의 부드러운 오솔길을 한참 가서, 구름다리 건너, 960봉 전망대에서 영봉과 중봉의 하얀 실루엣을 올려다본다. 격동의 역사를 지켜보며 중원과 월악산을 수호해 온 위풍당당한 피라미드, 백발의 산신령, 영원한 레인저다. 오른쪽으로 만수봉 방향의 능선에, 마그마가 솟구치다 굳은 하얀 화강암 절벽이 계곡으로 흘러내리며 햇빛에 빛나는 풍경도 바라본다. 혹독한 비바람과 모진 바위틈에서 굵고 장대하게 자란 ‘대한민국 소나무’들의 기상이 하늘을 찌른다. 여긴 바라보는 곳마다 동양화인 ‘월악산 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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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0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영봉과 중봉이 위풍당당하다. 왼쪽에 구비구비 충주호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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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봉으로 이어지는 화강암 능선. 출입금지구역이다. 멀리 소백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보인다 © 뉴스1

여기서 내려서는 급경사 계단과 돌길도 만만치 않다. 무릎보호대를 두르고 스틱을 단단히 박으며 내려서지만, 무릎이 화끈거려 이따금 옆으로 뒤로 내려선다. 단차가 높은 계단에는 디딤목을 설치해 주기 바란다.

지나온 암릉 곳곳에 공사자재들이 많았다. 계단과 데크는 최소한으로 했으면 좋겠다. 완벽하게 안전한 등산로를 만들 수는 있으나, 그러면 결국 국립공원다운 풍경이 사라지고, 국립공원을 지정한 목적이 사라진다. 현재도 안전시설이 충분한 장소에서 사고가 난다면, 그것은 국가의 책임이 아니다. 안내표지판에 등산로마다 난이도 표시를 했으니 거기에 사람이 맞추어야 한다.


마애불(磨崖佛/바위에 새긴 부처)에 도착한다. 거대한 바위에 조각된 부처가 덕주공주라고 하는데, 지긋이 눈을 감고 우수에 젖어 있는 모습이다. 마애불 왼쪽으로 올라서면 바위 틈에 고인 감로수(甘露水)가 있다. 무릎 꿇고 팔을 길게 내밀어야 뜰 수 있다. 정말 달고 차다. “가뭄이라 물을 아껴달라”는 표지에도 불구하고 몇 바가지를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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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 마의태자를 그리는 덕주공주의 우수에 젖은 표정이다 © 뉴스1

내려왔던 길에 비하면 평탄한 돌길을 터벅터벅 걸어 덕주사에 도착한다. 덕주사는 덕주공주의 절이다. 신라가 패망한 후 덕주공주와 마의태자는 월악산에 들어와 8년에 걸쳐 절을 지으며 신라백성들의 혼을 달래는 기도를 했다. 이후 공주는 덕주사에서 스님이 되었고, 태자는 금강산으로 떠났다고 전설이 전한다.

또 하나의 버전으로, 신라의 부활을 두려워한 왕건이 태자와 공주를 월악산에 가두고 서로 떨어뜨려, 태자와 공주가 서로를 그리워하는 불상과 마애불을 서로를 향해 세웠다는 전설도 있다.


덕주사에서 아스팔트 길을 잠깐 내려서면 곧 음식점과 펜션이 들어선 덕주골 마을이다. 12㎞, 약 6시간의 산행이었다. 산행결과를 요약하면 “힘들어 죽는 줄 알았지만, 풍경도 죽여줬다”이다. 식당에서 막걸리 한 사발을 음미하고 있는데, 하루 종일 참고 있었던 비가 장맛비처럼 쏟아진다. 오랜만에 샤워를 하는 월악산이 악!하며 시원해하는 느낌이 바로 전해왔다. 마른 계곡에서 숨죽이고 있던 물고기들이 일제히 펄떡거리는 모습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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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 농촌풍경. 누구에게나 고향같은, 그림같은 풍경이다 © 뉴스1

월악산은 ‘산’국립공원이지만 ‘물’국립공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보다 물을 찾는 방문객이 더 많다.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송계계곡, 용하계곡, 선암계곡, 그리고 내륙의 바다라고 불리는 충주호와 남한강에 구담봉, 옥순봉, 악어봉 등의 명소가 많다. 계곡마다 야영장도 많고 자연관찰로도 있어 가족여행으로 그만인 곳이다. 인근의 수안보도 ‘물’이 좋아 유명한 온천이다.


육중한 산들이 겹겹으로 겹친 산들의 제국, 푸른 소나무와 하얀 암반이 어우러진 계곡, 육지 깊은 곳에 잠긴 호수와 강, 고향풍경이 푸근한 농촌과 산촌, 그리고 천년의 역사와 사연이 숨쉬고 있는 중원의 땅, 월악산국립공원이다.


(서울=뉴스1) 신용석 기자 =​ stone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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